어안 최상호 (시조시인·본지논설위원)
매일 코로나 감염자 숫자를 발표하면서 백신 접종률까지 발표하는 걸 봅니다. 재확산지수가 1을 넘었다고 걱정하고, 집단면역을 갖추려면 국민의 70%가 백신을 맞아야 한다면서 호들갑을 떱니다만, 백신효과가 100%가 아니어서 70%가 접종을 한다고 해도 고작 56%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반론도 들립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숫자에 얽매여 사는지도 모릅니다. 수치정보는 외견상 매우 객관적이고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현상을 설명하기도 하고, 법적 기준으로도 사용되므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수에 의해 표현되고, 수에 의해 규율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은 수동적인데, 생각보다 객관적이지 않으면서도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기에 각각의 개별상황에서 수가 가지는 의미를 꼼꼼히 따져보아야 합니다.
수는 현실임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것이 통계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통계는 정확해야 하는데, 최근 정부가 경기와 고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통계 왜곡을 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통계는 의도를 가지는 순간 취약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빅데이터 시대에 의도적 왜곡은 이루어지기 쉽지 않으므로 아무리 객관적 통계라도 상호검증을 통해 그 신뢰도를 높여야 합니다. 그래서 접종을 하면 치명률이 확 낮아지고, 치사를 줄이는 효과가 100%라는 발표에 고개를 갸웃하는 것입니다. 한 편으로 수는 허상이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선거공약인데, 선거의 승리를 위해 정제되지 않은 이론적 숫자들을 남발한다는 것은 알만한 이는 다 압니다. 국가 차원의 선거에서는 매니페스토 운동이라는 검증 수단도 있지만 사실 미래의 전망과 계획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공약의 진실성 여부를 걸러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렇지만, 수는 기준이기 때문에 법으로 정해지면 국민과 국가 스스로를 구속합니다. 그런데 법에는 그 숫자가 어떻게 나왔는지 설명이 없어서 현장에서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조차도 기준이 되는 수치가 그렇게 정해진 이유를 모릅니다. BIS 자기자본비율은 왜 8%일까요? 교통신호위반 범칙금은 왜 6만원일까요? 모르면서도 누구도 물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양형기준도 마찬가지여서 소년범의 처벌기준인 연령이 왜 14세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가 최근에서야 촉법소년의 연령을 14세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중입니다. 물론 모든 수에는 의미가 있지만, 때때로 우리는 작은 수는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며 지냅니다.
법적 의미를 갖는 수는 작은 차이가 위법과 적법을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됩니다. 마치 99도에서는 물이 끓지 않지만 1도만 오르면 물이 끓는 것과 같은 이치로 소수점 이하까지 따지는 것이지요.
‘파레토법칙’은 보통 80대20 법칙으로 알고 있습니다. 집단의 성과를 상위 20%가 이끈다는 이론인데,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을 단기적 경기부양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정부가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자하여 지속적 성장잠재력 회복을 위한 ‘투자주도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파레토법칙에 기초합니다.
대부분 국가의 주식시장도 상위 20% 종목이 전체 시가총액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위 20%의 엘리트 집단이 파레토법칙의 주인공이라면, ‘멱법칙’에서는 반대로 80%의 긴 꼬리(long tail)에 주목합니다.
일자리의 90% 가까이가 자본을 독점하는 소수 재벌이 아니라 중소기업에 의해 창출되는 것처럼 하위 80%의 영향력이 크다는 주장입니다. 경제 침체와 성장 둔화의 원인을 내수와 소비 부족 및 소득분배 불균형 문제로 보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고 소득을 재분배해 총수요를 늘려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소득주도성장론’은 바로 이러한 ‘멱법칙’에 주목한 것입니다.
기업이나 개인에게 적용되던 멱법칙을 국가 차원까지 확장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세계적 기업 아마존의 CEO도 로봇과 AI 기술이 진화를 거듭하는 시대에 사회가 지속 가능한 방법은 소득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 말고는 대책이 없다면서 최저소득제를 옹호하고 나섰겠습니까.
자연도 멱함수분포를 싫어해서 대부분의 자연현상은 정규분포를 따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상분포도 정규분포를 말합니다. 평균값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고 그보다 크거나 작아질수록 해당하는 사람의 수가 적어지는 분포가 정상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웹이 우리의 일상을 움직이는 네트워크의 세계에서는 멱법칙을 따르는 드문 예외들이 더 자주 나타날 전망입니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심화해 10%가 전체 부의 90%를 소유하고 나머지 90%가 10%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면 늘어난 고무줄이 결국에는 끊어지고 말듯이 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한정된 자원을 잘 활용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하다 보면 행동 패턴이 멱함수를 따르게 되며, 결국 멱법칙에 따른 폭발성이 필연적으로 증폭될 것입니다. 인위적 조건 없이도 파레토법칙의 사례들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그 영역은 유지되겠지만, 세상에서는 멱함수의 롱테일 영역이 미래지향적으로 확대될 겁니다.
수로 이루어진 세상, 수는 시민적 권리의 기초이자 사회변화의 출발점이라 하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끝없는 변이를 하지만, 어쩌면 평생을 감기 조심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백신으로 100% 코로나를 물리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모두가 백신으로 안전해질 때까지는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은 믿어야 합니다. 수로 인해 머리가 아파도, 우리가 수에 대한 맹목적 신뢰와 수동적 인식을 걷어내고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숫자의 허와 실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