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 최상호 (시조시인·본지논설위원)
어느 시대에도 나라의 수도는 가장 붐볐다. 정치의 중심지가 곧 문화나 복지의 첨단을 달렸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 편안함을 맛본 사람들은 대를 이어 눌러앉았으니 옛 수도는 아직도 주변보다 도시의 기능을 잘 갖추고 있다.
그러나 기억해보자. 옛 선현들은 은퇴 후에 거의 지방으로 혹은 고향으로 돌아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살았음을....
그래서일까. 현대에서도 도시에 살다가 귀농 귀촌하는 삶을 꿈꾸는 이가 많았다.
선비의 고장, 영주에도 귀농 귀촌한 이들이 꽤 많다.
그들은 도심보다 한적한 곳에 조립식 문화주택을 새로 짓거나 낡은 건물을 고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든다.
건물의 수명이 자신보다 더 오래 갈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품는다.
누가 자신에게 얼마나 오래 살까 하고 물으면 황당할 것이다.
누군들 자신의 수명을 알까? 겉으로 멀쩡하던 주변 인물들이 하루아침에 불귀의 객이 되는 세상살이인 것을.
텃밭 인근에 귀촌한 이들이 깃들었다. 조립식 건물로 희고 단아했다. 집주인은 ‘50년 보장’ ‘반영구적’이라며 주택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업체의 말을 믿었다고 했다. 그런데 4년 만에 집은 철거되고 살던 이도 어디론가 가버렸다.
분명한 것은,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는 말과 같이 건명재인(建命在人)일 것이다.
지금 필자가 사는 집은 38년 전에 신축한 블록 2층 건물인데, 그동안 두 차례 증축을 거쳤다.
골격은 건드리지 않은 채로 외벽을 넓히고 바깥에 적벽돌을 다시 쌓아 보온성을 높였는데 아이들이 자라 집을 떠난 상태라 앞으로 훼손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니 부부가 죽을 때까지 충분하게 견뎌낼 것이다. 지붕에 태양광 발전시설도 설치했으니 개인적인 바람대로라면 이 집은 백수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이나 집이나 나이에 따라 위험신호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혈압이 높아지거나 당뇨와 고지혈증도 걱정되고 관절이 삐걱대고 허리 디스크도 염려되는 것처럼, 살던 집에도 물이 새거나 벽에 금이 간다. 집의 혈관이라 할 수 있는 보일러를 교체하는 집이 많아졌다.
주택이 ‘대수술’에 들어갔다는 말은 그만큼 노후했다는 말이다.
막히고 녹슨 관들을 없애고 녹에 강한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로 바꾸거나 건물의 외관도 정기적으로 관리한다.
보톡스를 맞고 염색도 하듯이 도색도 하고 동네 특유의 카툰들도 그려서 경관을 좋게 하는 것이다.
집집마다 작은 정원을 꾸미거나 실내화단을 조성한다. 여유 있는 모습으로 환골탈태했다지만 과연 얼마나 더 오래 버틸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10년이 될지, 100년이 될 지 알 수 없다.
사람이나 건물의 수명을 단지 ‘안전’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100년 이상 살아남겠지만, 가치로만 따진다면 고작 몇 년 후에 폐기될지도 모르니까.
사람의 수명에 관한 질문이 사는 동안의 행복을 묻는 것이라면, 건물의 수명에 대한 사람들의 질문은 결국 ‘상품성’에 있을 것이다.
‘상품성’은 결국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기간일 것이다.
지금 서울의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고 난리다.
잠실에 살던 막내 동서네는 아파트를 팔고 하남으로 이사했는데 불과 1년 사이에 잠실 아파트 가격이 배로 뛰었다며 두고두고 배 아파한다. 평생벌이보다 수익성이 높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제주도에 살다가 용인으로 이사한 큰딸네는 전세로 집을 얻었는데 집값이 날로 뛰는 것을 겪으며 빚을 내서라도 매입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한다.
집이 거주의 개념에서 교환가치의 수단으로 바뀌면서 사람의 가치판단 기준이 변화한 것이다. 인간의 수명에 대한 기대는 건강한 상태로 행복하게 살다가 일생을 마치는 것이어야 한다.
건물에 대한 기대 또한 이런저런 생활을 편리하게 하다가 노후나 은퇴 후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까지의 머물 곳이면 흡족하지 않겠는가. 모든 것의 수명은 ‘상품성’에 있지 않다.
‘선비의 고장, 영주’ 선비촌과 무섬마을에는 지은 지 수백 년이 된 고가들이 즐비하다.
가느다란 목재로 만들어진 집이 약간의 돌봄으로 백 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왔는데, 단단해 보이는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이루어진 아파트나 주택의 수명을 따져서 무엇 하리오.
무엇으로 지어졌든지 애정을 가지고 고치고 다듬는다면 인생과 맞먹을 만큼 충분히 오래갈 것이고, 상품성에만 주목한다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시한부 목숨에 불과한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