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미술대학장 이두식 선생

지난 5월말 경남 마산에서 열린 ‘문신미술상’ 시상식에는 무려 1,000명이 넘는 인파가 참석을 했다. 지방 도시에서 열린 미술상 수상식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것을 보면 수상자 이두식 선생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두식은 과히 한국최고의 화가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인물이다.

영주가 낳은 예술계의 거목을 꼽자면 연극에 손진책과 미술의 이두식(59)을 들 수 있다. 두 사람은 영주초등학교와 영주중학교 동창생이기도 하다. 지금도 둘도 없는 친구이고, 누님들끼리도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 마치 형제같다. 3년 전 상처한 이두식 선생은 “요즘은 김성녀(손진책의 아내)가 내 마누라 같다.”라고 농을 할 정도로 두 사람의 우정은 돈독하다.

영주가 낳은 당대 최고의 화가
연극계의 손진책은 나중에 만나기로 하고, 오늘은 홍익대 미술대학장인 이두식 선생을 만나보자. 이 선생은 지난 1947년 영주군청 근처에 있던 ‘영주사진관’집의 오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920년부터 그림을 그리면서, 사진관을 경영해 오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두식은 중앙교회 유치부에 다닐 때부터 인물화를 잘 그리는 화동으로 인정을 받았다. 참혹한 전쟁기에 주변의 꼬마들과 선생님의 얼굴을 그려주던 아이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면서 사생대회에 나갈 때마다 늘 1등상을 받아 가족들을 놀라게 했고, 부모님은 막내아들을 서울예고로 유학 갈 것을 권했다.

서울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던지, 어린 두식은 처음 1년간은 시골 출신의 한계로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그림실력은 2학년이 되면서 모두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하여 졸업을 할 무렵에는 작가와 교수의 양 갈래 길에서 작가가 되기 위해 한국 최고의 미술대학으로 알려진 홍익대 미대에 입학을 결정하게 된다.

미대에 입학하여 4학년 때 대한민국미술대전에 특선을 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졸업하고 ROTC장교로 군에 입대한 이두식은 전방부대 보병소대장으로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사단장이던 안정 출신인 황영시 장군의 도움으로 틈틈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평발이어서 군대를 안 갈 수도 있었지만, 당시 홍익대학의 분위기는 실력이 있고 똑똑한 학생들은 모두가 장교로 군에 가는 상황이라,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이두식은 억지로 우겨서 장교로 입대를 하게 된다.

군을 제대하고, 모교의 조교로 일하면서 대학원과 서울예고 교사, 여러 대학의 시간강사 일을 하다가 보니, 전업 작가가 되기보다는 선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사실 그의 두 형님이 영어와 국어교사를 하고 있어 선생이 되는 것 보다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그도 선생이 되었다. 작가와 교수의 구분이 없어진 요즘에는 별로 의미 없는 판단이지만 말이다. 참, 그의 작은형 인식씨는 고려대학을 나와 영광고의 국어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는 오랜 교사와 강사생활을 거쳐 1984년 모교의 교수로 자리를 잡았고, 일본의 교토조형예술대학에서 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40여 년간 화단활동을 통해 추상미술분야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으며, 개인전을 43회나 열어 왕성한 창작활동을 보여 왔고, 95~97년에는 최연소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까지 재경영주향우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배구를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인 그는 한국대학배구연맹회장을 맡아 일하고 있기도 하다.

▲ 홍익대 미술대학장 이두식 선생
자다가도 영주이야기만 나오면 벌떡 일어나는 사람
그의 고향 사랑은 조금은 남다른 곳이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는 “영주이야기만 나오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라고 그를 지칭할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그래서 향우회 회장도 맡았었고, 은퇴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부석의 ‘소백산예술촌’에 작업실을 마련해 두었고, 순흥 배점에는 집터를 준비해 두었다. 나중에 순흥에 살면서 부석을 오가며 산수화와 배점사람들의 인물화를 그리고 싶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잘 어울린 덕인지 그에는 벗들이 많다. 연극인 손진책씨와 만화가 김판국씨, 이미 세상을 버린 영광교육재단의 강학구씨, 김창근씨의 동생인 김창진씨 등의 영주사람들과 유홍준 문화재청장이나 이상벽씨와 같은 방송인 등 이름만 들어도 쉽게 알 수 있는 인사들이 그의 절친한 벗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보스(두목)이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만능 스포츠맨에 키도 크고, 남자답고, 술을 즐기고, 담배도 골초이고, 친구를 좋아하고, 고향을 잊지 못하고, 그림에 미쳐 사는 예술가인 그에게는 사람을 끄는 그 무엇이 있다. 그래서 친구도 많고 모두가 그를 보스로 모시는 것이다. 한때 수많은 감투와 보스기질로 인하여 ‘정치에 꿈이 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의 가족은 피는 못 속이는지 미술가로 활동 중인 큰 아들 하린(33)이 있다. 그는 예술고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서 뉴욕주립대와 세계최고의 미술대학으로 알려진 알프레드 대학원에서 도예를 공부했고, 현재는 뉴욕주립대 등에서 강사 일을 하면서 미술가의 길을 가고 있다. 구리시에 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는 둘째 아들(26)은 홍익대 경영정보학과를 졸업하고 군 입대를 기다리고 있다.

9월 영주에서 대학 배구 열전 준비중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이 선생이지만, 요즘 고향을 위해 대학배구열전 3차전의 9월 영주유치를 위해 뛰고 있다. 삼 일간 열리는 배구대회를 통하여 영주를 알리고, ‘선비의 고장’이라는 이미지를 홍보하는 전령사가 되길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내년에 한국에서 열릴 예정인 ‘국제대학배구챌런지대회’를 영주에서 유치하기 위해 뛰고 있기도 하다. 이런 모든 것들은 자다가도 영주이야기만 나오면 벌떡 일어나는 그의 고향사랑에 대한 표현방식이다.

(이두식 선생 연락처 011-714-8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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