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시조 시인. 본지 논설위원)

코로나19로 답답하고 우울하던 중에 영화배우 윤여정이 제93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자 조연 배우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아카데미상은 미국의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상으로 아카데미상 또는 오스카상으로도 불린다.

이 상은 세계 4대 영화상으로 꼽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권위 있는 상이라 하니 수상자는 세계 최고의 연기자라 할 만하다.

93회가 되도록 아시아 배우로는 일본 영화 ‘사요나라’ 출연 배우 이후, 60여 년 만에 수상 배우가 된다니 이 상이 그간 백인들의 독무대였음을 말해 주고 유색인들에게 얼마나 인색했는지를 말해 준다. 그래서 윤여정 씨의 상은 감격을 더 한다. 정말 대단한 쾌거이다.

생각해 보면 국민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해외에서 활동하던 우리의 아들, 딸들이 뜻밖의 낭보를 고국으로 보내와 잠시 시름을 잊게 해주는 일이 고비마다 있었다.

차범근, 박찬호, 박세리, 김연아, 이세돌 같은 선수와 싸이, 방탄소년단 등 아이돌 가수들이었다. 이들은 청량제 같은 소식으로 우리의 혈통이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임을 느끼게 하는 자긍심을 국민 모두에게 선사했다.

요즘도 유색인이 받는 괄시를 보면 잘 알겠지만, 유럽인이나 아메리칸이 아니면서 세계를 제패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피나는 고행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젊은 시절의 활약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윤여정 씨의 수상은 그녀가 젊지 않고 나이가 많은 배우라는 데 차이가 있으며 그래서 감동을 더 한다.

배우는 상황에 따라 관객을 웃게 해주고 울게 하는 사람으로 연기력만 빼어나면 더할 나위 없으나 미모와 체격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며, 은막 뒤의 생활이나 브라운관 뒤의 생활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보이는 부분이 화려함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는 미안하지만,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너무도 평범하고 소박하다. 또한, 소탈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국민의 마음을 다스리는 국민 배우였다.

젊은 시절 그녀의 캐릭터는 다양하고 강렬하며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생각된다. 나이가 들면서 역할을 가리지 않는다는 그녀는 근래에는 가족을 이끌거나 책임지는 배역을 많이 했는데 보고 있자면 카메라 앞에서 하는 연기가 아니라, 그녀의 행동을 누군가 몰래카메라로 찍은 것을 보는 것처럼 그녀의 일상을 보는 듯하다. 오버 없이 진솔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로 치자면 진작에 수상을 하고도 남음 직하다.

무엇보다 그녀의 매력은 늘 가짜뉴스와 스캔들로 이어지는 화려한 연예계에 살면서도 화려하지 않으며, 자기 관리가 철저하여 칠십 중반의 나이가 되도록 주변에 아무런 잡음이 없었다는 데 있고, 너무도 평범한 모습으로 직업에 충실하고 가정을 건사하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는 데 있다.

혼자 가정을 꾸리면서도 그 누구도 원망하는 모습이나 험담을 언론에 흘리지 않는 대장부 같은 내공을 보여 여자들은 그녀를 참 대단한 연예인이라고들 한다.

그 어려운 수상도 수상이지만 시상식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태도는 저토록 진솔하면서 당당하고 자존심 높은 배우가 우리에게 있었나 싶었고, 그녀의 수상소감 및 인터뷰 내용은 어록으로 남겨도 좋을듯했다.

겸손하게, 우아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말하면서 관중의 긍정과 웃음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의 인터뷰 가운데 가장 그녀다운 말은 언제 가장 연기가 잘 되느냐는 뉘앙스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돈이 필요할 때라고 한 대답이다.

직업을 가진 사람치고 돈 말고 다른 이유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따지고 보면 각자 하는 일이 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 때문이지 않겠는가.

남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서 연기한다거나 연기가 좋아서 연기할 뿐이라고 대답한다면 가면 쓴 얼굴처럼 그럴듯한 가식적인 대답이 되었을 것이다.

소득이 없는 일에 봉사는 할 수 있지만, 직업은 그런 것이 아니다. 솔직한 심정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대답이나 당당함은 수상자에게 빌려주는 명품 옷을 공주가 아니라며 거절해버리는 고매한 인품에서 나온 듯하다. 수상 배우가 시상식 의상 협찬을 마다하다니 그런 결정은 아무 배우나 하는 게 아니다.

저녁 해가 서산을 붉게 물들이면 온 주변이 환하고 따뜻하다. 누가 봐도 인생의 노년인 연령에 아시안으로 유리 천장을 뚫어낸 한 여자가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진정 멋진 여자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녀는 오스카상 외에 최고의 순간에 보여주는 겸손과 고매한 인품으로도 국민 모두로부터 영원히 사랑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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