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의 사령탑 김지영 편집인겸 상무

"영주가 고향이지만 태어나지는 않았고,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아 친구가 없고,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지금도 살고 있지만, 분명 고향은 아닙니다. 제 마음은 늘 고향마을인 무섬에 있습니다. 지금도 쉬고 싶거나 외로울 때는 늘 무섬이 생각납니다”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속칭 무섬마을. 이곳은 안동 하회나 예천 의성포와 함께 한국에 몇 안되는 물돌이 마을이다. 서민마을인 의성포와는 달리 무섬마을은 하회마을처럼 고가들이 산재해 있다. 수도리는 경북 북부지방에서도 유명한 반남 박씨와 예안 김씨 집성촌이다. 이 마을에는 잘 단장된 예안 김씨 집안의 '해우당'을 비롯해 반남 박씨 입향조가 세운 '만죽재', 박재연의 고택 등이 늘어서 있다.

무섬마을은 일제시대에 이미 민족학교가 있었고, 독립운동가들도 많이 배출한 마을로 알려져 있다. 또한 청록파 시인으로 알려진 동탁 조지훈의 처가가 있고, 사회주의계열 국내파 독립운동가로 YS정권 시절 건국훈장을 받은 김화진 선생(1904~1946, 1922년 일본에서 ‘반제식민지운동’을 하다가 1928년 귀국, 독립운동과 농민운동을 했고 징용에 반대하다 6년간 옥고를 치렀다)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안 김씨 집안의 '해우당'이 바로 김화진 선생의 본가이다.

▲ 경향신문 김지영 편집인겸 상무
이곳 무섬마을 예안 김씨 출신으로 '해우당'이 본가인 경향신문 김지영(53) 편집인은 김화진 선생 집안의 후손이다. 조지훈 선생은 그의 고모부가 된다. 어린 시절 늘 고향집이 좋아 방학 때면 큰 어머님이 홀로 계시던 '해우당'을 즐겨 찾았다는 그는 대학 시절 이곳에서 고서를 정리하며 집안의 내력을 공부하기도 하고 친척들과 많은 교류를 하기도 했다.

김 편집인은 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빈집과 거의 소실된 고서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도 들기도 하지만, 문중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으로 '해우당'이 새 단장을 하게 되었고, 소수서원 옆 선비촌에도 자신의 본가인 '해우당'이 똑같이 재현돼 있어 기쁘기만 하다.

김 편집인은 어린 시절 서울로 올라와 가톨릭학교인 동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 국문학과 4학년 때인 1979년 12월에 경향신문에 입사했다. 

우리나라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삶이 대부분 그렇듯 일제 때는 가산몰수나 가정의 풍비박산으로 이어졌고 해방된 뒤에도 굴레였다. 당대 엘리트와 선각자들이었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에게 가난은 대물림되고 배움의 기회도 박탈됐다. 김 편집인이 어린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가끔 선후배들이 농담으로 만일 국회의원에라도 나가게 되면 지역구를 어디로 할 것이냐? 라고 물어보면 저는 그냥 전국구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뿌리인 '무섬'을 두고도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며 한평생 그리움을 가득 키워온 그의 고향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80년 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후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91년에는 노조위원장으로 언론민주화에 앞장을 서기도 했다. 기자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사명감으로 한눈을 팔지 않고 27년간 경향신문을 지켜오고 있다.

▲ 경향신문 김지영 편집인겸 상무
79년 10월 27일, 박정희 서거를 알리는 경향신문 1면 기사의 하단부에 발표된 신입기자 합격자 공고는 그에게 앞으로의 기자 생활이 얼마나 험난한가를 예고하는 일화였다고 회고할 정도로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하지만, 평기자에서 국제부 차장, 논설위원, 경제부장, 편집부국장, 편집국장을 거쳐 2004년 10월부터 편집인겸 상무로 취임해 경향신문 발행에 관한 전반을 지휘하고 있는 사령탑이 됐다.

김 편집인은 "경향신문은 진보적인 색채와 보수적인 색채를 전부 어우르고 사원주주회사로 모두가 주인 되는 신문의 방향성을 잡기 위해 지난 2-3년간 많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현재는 호주제 폐지와 국가보안법 철폐, 민주주의 수호, 평화와 자유 등의 기본적인 이념을 바로 세우고 민주와 집중에 의한 논의와 토의를 거쳐 경향신문을 알차게 만들어 가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영주 사람들은 자주 만나는 편입니다. 언론사 기자로 있다 보니 영주 출신의 정재계 인사들과 자주 만나게 되고, 고향에도 자주 내려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집안 조카가 영주에 살고 있어서 갈 때마다 자주 어울리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어 요즘은 고향 가는 것이 더 즐겁습니다.”

매년 서너 차례 영주를 다녀갔지만 최근 들어 영주행이 잦아졌다는 김 편집인은 “아는 사람도 없고 불러주는 이도 없어 고향사람들 모임에는 아직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지만 앞으로는 시간나는대로 가봐야 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지영 편집인의 가족으로는 방송작가 일을 하고 있는 아내와 대학과 중학교에 다니는 두딸이 있다.

(김지영 편집인 연락처 011-397-45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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