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영주人터뷰[10] 봉현면 권민혁 가축인공수정사

하루의 시간들이 쌓이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도 더해진다. 우리고장 사람들은 어떠한 삶을 이어왔을까. 평범하게, 때로는 남다르게, 살아온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하려한다.[편집자 주]
 

소의 생체리듬 파악하고 맞춰나가며
경험을 통한 전문적 노하우 쌓아가

소가 재산 목록 1호였던 시대가 있었다. 농사를 짓는데 필요했고 사랑하는 자녀의 공부나 살림 밑천으로도 쓰였다. 지금도 소를 사육하는 축산농가에게는 큰 재산이다.

축산농가에서 웃음 지을 때는 잘 키운 암소가 송아지를 낳아 좋은 값으로 팔려나가 가계에 보탬이 될 때이다. 축산농가의 소득에 큰 역할을 하는 나새미농장과 다산가축인공수정소를 운영하는 권민혁(30) 가축인공수정사. 지난달 31일 그를 만났다.

가축인공수정사의 시작
봉현초, 풍기중, 한국생명과학고(구 안동 농림고), 경북도립대학교 축산과를 나온 그는 어릴 적부터 소와 함께 해왔다. 농사를 지으며 소를 키우시던 할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를 도와 소를 관리하다 졸업 후에는 모든 관리를 맡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다른 일을 하고 계셔서 사료값 등을 지원해주시고 20마리 정도의 소를 제가 관리 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영주축협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다 홀로 소를 키우려니 힘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 일을 시작하게 됐지요

퇴직 후 돈을 벌기 위해 식육점을 창업했지만 간신히 유지만 할 수 있었다. 결혼과 함께 생활의 안정을 찾고 싶었던 그는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경북도립대 축산과를 다니며 수업 중 인공수정교육을 받으며 관심이 생겼던 것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다른 농가의 상황도 보고 축협에서 소 다루는 일도 배우면서 인공수정에만 몰두하기 시작했어요. 2016년에 축산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2017년 가축인공수정사 면허가 나와 일을 시작했어요

경북 가축인공수정사협회에 소속된 그는 인공수정사 중 가장 어리다. 회원 중에는 바로 위 선배라 할지라도 10살 이상 차이가 났다고 한다. 4년이 지난 지금도 그보다 어린 회원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소의 생체리듬 파악하며
그는 축산현장에서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자격증을 취득해 쉽게 일을 시작해도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나이를 불문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단다. 농촌의 경우 축산농가에서는 소득과 직결돼 기존에 맡아온 인공수정사에게 일을 맡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도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고객의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니 일이 없었다. 그래도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성실이 움직이며 소의 생체리듬을 많이 공부하는 노력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노하우는 쌓여갔으나 1년 정도 수입은 없었다.

그땐 힘들었어요.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기에 노력했죠. 불규칙한 생체리듬이나 발정간격 같은 것을 알려고 했어요. 번식장애 등을 고쳐보려고 알아보고 처음에는 몰랐던 손의 감각을 익히려고 돈을 들여 초음파 기계도 구입했지요

그는 난소에 대한 질병과 호르몬 장애, 책에 나오지 않는 부분 등 다양한 것을 공부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그는 호르몬 등의 변화가 이론과 맞지 않을 경우가 많았음을 알았다. 축산현장에서는 책과 다른 것이 많아 최대한 이론과 접목시키기 위해 나름의 노하우를 익혀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손의 감각도 늘어나면서 고객이 늘어나고 농가들은 믿음을 주었다.

난소에 난포나 황채에 대해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난포가 배란이 안 돼 꾸준히 머물고 있는 난포를 구분해 내는 노하우를 익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죠. 난포의 구분은 소의 수태율을 좌우하기 때문에 이를 익히는 것을 지금도 배우는 중이에요

그는 경험치를 올리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능력이 올라가야 농가들의 소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에 어느 정도 암소의 사료조절 등 생체리듬을 맞추는데 중심을 두며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지난 시간을 떠올리던 그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시작하면서 나이 차가 많은 어른들을 상대하다보니 대하는 방법을 몰라 마음의 상처를 받은 적도 많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쉬는 날이 없이 일을 하다 보니 가족과 함께 할 수 없어 그만 두고 싶은 적도 있었다고.

지난해까지 주말에도 하루를 쉬지 못했어요. 명절에도 하루만 쉬었지요. 2년 전에는 그마저도 못 쉬었어요. 농가에서 전화가 오면 가야하거든요. 농가의 소득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발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바쁘게 지낸 시간과 노력으로 그의 실력은 쌓여갔다. 그리고 찾는 곳도 늘어났다. 일이 많아져 갈 곳이 많아지니 농가에서 연락이 와도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 올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가 농가주인에게 다른 인공수정사를 보낸다고 했지만 그를 기다리겠다는 답변을 해온단다.

축산농가가 그를 기다리게 된 것에는 소의 임신여부를 빨리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수정 후 착상이 되기까지 보통 28일에서 32일이다. 그런데 그는 경험을 쌓다보니 손에 감각이 생겨 33~34일만 되도 손으로 임신여부를 판단할 수 있어 농가들이 신뢰를 갖게 됐고 다른 농가들에게도 알려져 찾는 것이다.

최고로 좋을 때는 송아지를 판매해 금액을 잘 받았다고 연락이 오거나 쌍둥이를 낳았다고 기분 좋아하며 고맙다고 해줄 때가 보람이 커요. 농가들이 소득이 많아져서 고맙다고 해줄 때가 최고 보람이죠

영주의 청년으로 바람
그는 5년 전 풍기청년회의소에 가입했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 친한 선후배도 있지만 풍기지역의 어르신을 위한 봉사활동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발전을 위한 취지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좋은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4H에도 가입한 그는 이를 통해 청년자립기반 구축사업으로 시의 보조도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다만 정말 필요한 보조사업으로 청년농업인들에게 지원되는 방법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의 일과는 오전 530분부터 시작된다. 6시쯤 영주나 안동 북부지역의 어느 농가에 도착해 일을 시작하면 오전 10시쯤 끝난다. 그러면 안정면에 위치한 자신의 축사로 다시 이동해 소에게 먹이를 주고 오후 2시쯤 다른 농가로 이동해 인공수정을 해주면 오후 9시 하루일과가 끝난다.

자신의 일보다는 농가의 일을 먼저 생각할 때가 많다는 그는 영주의 자가수정하는 농가를 제외한 젖소농장을 모두 맡고 있다. 젖소수정은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집집마다 달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매년 6~8월이 되면 오전 5시에서 오후 9시까지 더 바쁘게 움직이는 그는 틈틈이 시간을 내서 소 50마리를 키우고 있다. 먹이 주는 시간도 없을 때는 아내가 어린 아이들을 안고 농장에 와서 소먹이를 주고 간다. 홀로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 아내에게 그는 항상 고마움과 미안함이 크다고 했다.

내년에 둘째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아내에게 농장을 승계할 계획이에요.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식육 관련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지금의 농장을 키워 한우를 가공해 판매하고 싶어요. 지금은 바빠 여유가 없지만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고기라든지 숙성방법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싶어요. 우량 암소생산을 위한 방법인데 수정란 이식도 관심이 있어요. 이를 위해 기술적인 면은 선배들에게 배우고 대학기관의 박사들의 자문을 받으며 현장을 다니며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어요

현재 가축인공수정사들 중에는 젊은 청년이 없다는 그는 전문성을 갖고 가축인공수정사라는 직업에 대해 가치와 능력을 가지면서 전문성 있는 직업으로 위상이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쳤다.

고향인 영주가 좋다는 그는 젊은 청년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의 바람도 전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의료문제는 너무 힘들었다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딸이 아플 때면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아내가 일을 하고 딸을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게 됐어요. 보육도 걱정이 됐지만 아플 때면 맡길 곳이 없어 아픈 딸아이를 차에 태워 데리고 다닌 적이 있어요. 열이 나는 아이를 태우고 이곳저곳 농가들을 다니며 일을 했죠

보육문제 뿐만이 아닌 아픈 아이를 데리고 영주가 아닌 안동병원까지 가야하는 불편함이 너무 싫었다는 그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면서 이런 환경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