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영주人터뷰[9] 영주동 마야미용실 박영수 대표

하루의 시간들이 쌓이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도 더해진다. 우리고장 사람들은 어떠한 삶을 이어왔을까. 평범하게, 때로는 남다르게, 살아온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하려한다.[편집자 주]
 

꼼꼼히 세심한 미용노하우 이어오며
낮추고 배우며 감사의 마음으로 지내

사는 곳마다 그 지역이나 마을에 오래 머물러 있는 터줏대감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빈 공터에 건물이 들어서고, 낮은 건물은 높다랗게 올라가고, 흙먼지가 흩날리던 길은 깨끗한 포장도로로 바뀐다.

이렇게 많은 것이 달라져도 그 자리에서 오랜 시간동안 머물러 사람들에게 아련함을 주며 지난 시간을 회상하게 하는 장소들이 있다. 영주동에는 강산이 4번 넘게 변하는 동안 사람들과 함께하며 사랑방 역할을 해온 마야미용실이 있다.

지난 17일 이 곳을 방문해 많은 사람들과 세월을 함께해온 박영수(69) 대표를 만나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7세 시작해 미용경력 52
지난 13일 오후 4시경 인터뷰를 요청하러 찾아간 미용실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난 17일에도 약속시간에 들어서니 2명의 손님이 박 대표와 직원에게 헤어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러 왔다고 하니 한 손님은 자신은 30년 단골이라며 박 대표에 대해 옛날부터 항상 대충하는 것 없이 완벽하려고 하는 성격이었다뭐든지 꼼꼼하게 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골이라고 말했다.

문수면이 고향인 박 대표는 미용기술을 배우기 위해 17세가 되던 때 구 역전통로에 있는 루비미용실에 들어갔다.

단순 도우미에서 초보 미용사로 한 단계씩 꼼꼼히 배우기를 4, 박 대표를 찾는 손님들도 늘어나고 칭찬도 많이 받으면서 자신만의 미용실에 대한 꿈을 키웠다.

결혼식의 혼주들이 올림머리를 하러 오면 마음에 들도록 잘한다고 칭찬의 말을 많이 했어요. 나름의 노하우도 생기고 기술도 늘어 21세가 되던 해에 지금의 신영주 위치에 첫 미용실을 열었어요. 내 공간이 생기니 기분이 남달랐지요

미용실을 운영하던 박 대표는 다른 미용실에 전문기술자로 다시 들어갔다가 또 다시 자신의 미용실을 열던 중 26세에 남편과 결혼해 지금의 미용실이 있는 자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남편이 7남매 중 맏이인데 시부모님이 사는 집에 들어가 함께 살았어요. 형제자매 중 4명도 한 집에 살았지요. 당시 안쪽에 집이 있었고 미용실은 결혼 후 개조했어요. 이 집도 지은 지는 50년이 넘었네요

42년 한 자리에 터줏대감으로
마야미용실은 현재의 위치에 42년 동안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다. 결혼 후 미용실을 운영하게 되면서 박 대표의 남편은 집안에 걸려 있던 태극기가 들어있는 액자를 가져와 미용실 한쪽 벽면에 걸었다.

손님이 많아져 내부를 좀 더 확대하면서 미용실에는 벽면과 천장을 연결하기 위해 헤어스타일별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를 인테리어처럼 꾸몄는데 이것도 지금까지 그대로다.

이날 한 손님은 이 장소에 대해 옛날에는 지금하고 달랐고 주변에도 건물이 적었다. 미용실 앞도 세탁소였는데 지금은 다른 가게가 들어서서 한다영주역 통로라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오갔는데 역이 옮겨지고 사람들도 줄었지만 미용실은 변함이 없어 단골 고객들이 많이 온다고 했다.

가족을 돌보며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면서 제때 밥을 먹지 못해 위장병도 생겼었다는 박 대표는 왔던 손님이 시간이 없어 가면 다시는 오지 않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생활했던 때도 있었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42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어요. 처음에는 힘들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노련해져 위장병도 없어지고 손님을 놓칠까 걱정했던 마음도 내려놓으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미용실에 오는 다양한 손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그럴 때마다 나를 낮추고 낮추려 노력했어요. 좋은 말을 듣고 배우며 마음으로 받아들이죠. 지금 생각하면 좋은 손님들이 참 많았어요. 나에게 깨달음을 주기도 했거든요

박 대표의 철학은 자신을 찾아주는 손님에게 모두 감사한 마음을 갖고 미용실을 나갈 때 누구나 기분 좋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많은 미용실 중에 이곳을 선택해준 손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한다.

참조은 부모님상 드립니다
2002년 박 대표는 큰 아들인 김태형(43)씨에게 소중한 표창장을 받았다. 군대를 제대하고 타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들은 항상 열심히 일하며 자녀를 키워온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을 느껴 어버이날에 그 마음을 전했다.

한 집안의 맏며느리였던 박 대표는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시부모와 함께 생활했다. 결혼 후 20여년을 살다 시어머니는 75세가 되던 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날 시어머니는 박 대표에 감사함과 미안함을 전하며 걱정 어린 마음을 표했다. 이유는 3년여 치매를 앓고 계신 시아버지에 대한 염려로 자신이 도왔던 일들을 홀로 감당해 나가야하는 며느리가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시아버지는 4년을 함께 지내다 돌아가셨어요. 시어머니는 돌아가실 때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돌아가신 후 묘지에 관을 넣을 때 시어머니께 다짐했죠. 걱정하지 마시라고 잘 모시겠다고 약속했어요

박 대표는 시아버지가 점잖은 치매를 겪어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하며 음식을 드리고 돌봐드리면 항상 고맙다”, “잘먹었다등의 말을 표현해 더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단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대학에 다니던 두 아들들도 집에 오면 할아버지의 대소변을 돕고 돌봐드렸단다.

나라는 사람은 없었어요. 내 가족을 위한 마음으로 남에게 봉사하기 보다는 내 가족에게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가족에 대해 악하게 마음을 먹으면 더 힘들었다고 생각해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모두 불교신자로 가끔 따라갔던 박 대표는 큰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새벽기도를 다니며 108배를 올리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았다고 한다.

불교신자가 된지 25년이에요.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지요. 그동안 만나온 손님들이 좋은 스님이었어요. 때론 손님이 힘들고 괴로워하는 마음을 전할 때는 이야기를 들어요. 그리고 잠시의 어려움에 치우치지 말라고 전하죠. 이후에 위안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마음을 나누며 지금까지 많은 단골손님들이 마야미용실을 찾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박 대표는 돈을 벌기 위해 미용요금을 크게 올리지 않은 것과 변하지 않는 마음이 비결이 아닐까 한다감사하게 지금까지 찾아와준 손님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미용실에 들어온 손님들의 산뜻하게 변화된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마야미용실에는 많은 손님과 함께 전문미용 직원들이 오래 근무해 또 다른 단골손님을 만든다. 지금도 부석, 순흥, 단산은 물론 봉화 현동, 춘양, 소천, 예천 감천 등에서 이곳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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