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영주人터뷰[7] 단산면 소백산절임배추 최연순 대표

하루의 시간들이 쌓이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도 더해진다. 우리고장 사람들은 어떠한 삶을 이어왔을까. 평범하게, 때로는 남다르게, 살아온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하려한다.[편집자 주]
 

단돈 30만원으로 정착, 악착같이 지내온 삶
생활 어려움, 건강이상 등 아픔 이겨내며 극복

누구나 힘든 시간들이 있지요. 내 뜻과는 상관없이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고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나도 참 힘들었지만 가족 모두가 말로는 하지 못하는 어려움들이 많았을 거에요. 그래도 다함께 잘 이겨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지난 16일 만난 단산면 구구리에 사는 소백산절임배추 최연순(65) 대표는 최근 색색의 감자수확을 마치고 배추모종심기를 앞두고 땡볕 아래가 아닌 그늘아래서 잠깐(?)의 여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이날도 농사지은 감자, 채소 등을 전국으로 택배를 보내기위해 작업을 하다 왔다는 최 대표에게 바쁘게 살아온 지난 삶에 대해 들어봤다.
 

이겨내고 또 이겨낸 시간들
19년 전 최 대표는 가족과 함께 영주에 정착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보증문제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직장을 그만 둔 남편과 남은 돈으로 시내 외곽에 식당을 임대해 생활하며 자리를 잡아갔으나 가게가 잘되니 주인이 갑자기 나가라고 했단다.

어디에도 갈 곳이 없어 막막했는데 선교활동으로 인연이 있는 베다니교회목사님이 교회 근처에 작은 집이 있으니 오라고 하셨죠. 30만원을 준 집인데 살림이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어요. 그나마도 9개월 정도 살다보니 주인이 갑자기 비우라고 해서 다른 빈집을 50만원을 주고 들어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가족 4명이 간신히 잘 공간밖에 없었고 짐들은 밖에 천으로 덮어놓아 썩어갔다고 한다. 어느 날 지인들이 와서 보고 놀라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300만원을 전해줬다. 그 돈과 200만원은 조금씩 갚기로 하고 500만원하는 콘테이너를 샀다. 지금은 그 콘테이너에 하나를 더 붙여 생활하고 있단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기에 20만원을 받고 장수 성곡리에 있는 식당에서 6개월 정도 일하다 가까운 젖소 농장에서 분뇨를 치우면 한 달에 35만원을 준다는 말에 그곳으로 옮겼어요. 조금이라도 벌어 아이들을 가르쳐야 했기에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지요

중고생 자녀를 둔 최 대표는 어려운 형편에 아이들 교육에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단산면사무소를 찾아갔다. 당시 생활복지계 천순옥 씨에게 울면서 이야기를 전하니 함께 울어주며 한시생계보호대상자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줘 어려움을 조금 덜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후 최 대표는 다른 젖소농장에서 45만원을 받으며 우유 짜는 일을 했고 남편도 그곳에서 우유를 떠서 성분 분석하는 일로 취직하면서 생활이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젖소농장 운영으로 안정되기까지
봉화가 고향인 최 대표는 서울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고향에 내려온 후 남편을 만나 197812월에 결혼했다. 당시 남편의 월급은 162천원.

그 돈만으로 시부모님, 시누이, 시동생, 가족 4명이 함께 살았기에 넉넉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친정부모님이 오셔서 1년이면 6~7개월을 함께 생활할 때는 몸과 마음은 물론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고 회상했다.

부모님을 잘 모셔준 고마움 때문인지 시외삼촌이 우리가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시고 500만원을 주셨어요. 그 돈을 밑바탕으로 젖소를 구입해 키울 수 있었어요. 우리가 밤낮으로 열심히 했더니 시외삼촌은 이후에도 2년 반 동안 15천만원을 도와주셨어요. 고마움을 잊을 수 없어요

최 대표부부가 운영하던 젖소농장은 낙농후계자인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 타지에서 직장에 다니던 아들은 부모님의 노력을 알기에 고민 끝에 내려와 젖소농장 운영에 함께 참여하다 결혼 후에는 올곧이 이곳에 힘을 쏟고 있다.

지인에게 전한 절임배추’, 사업으로
이날 최 대표는 40여개의 택배를 보내기 위해 일하다 왔다. 전국으로 가는 택배는 일주일에 택배비만 7~80만원이 든다. 주로 감자, 절임배추, 알타리 등과 직접 키운 여러 가지 채소들이다.

절임배추가 주 사업이지만 다양한 농산물들이 전국으로 나가요. 옛날에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덜하죠. 옛날보다 안정되고 많이 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렇게 벌어 7~8가족을 먹여 살려요. 몸이 힘들지만 이전에 힘들었던 시기를 생각하며 힘을 내요

최 대표의 절임배추에는 사연이 있다. 시골에서 어렵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최 대표의 친구들이 작은 금액이라도 도움을 주려 했다. 그러나 최 대표는 금전적으로 그냥 주기보다 무언가를 요구해 들어준 후 그 비용을 받기를 바랐다.

친구들에게 두부나 청국장을 해주고 돈을 받았어요. 아침저녁으로 젖소농장에서 일하고 농사일을 하면서 절임배추를 지속적으로 해오던 것이 오늘날에 이르렀죠. 처음부터 이런 사업을 해보자고 의도한 것이 아니지요

조금씩 하던 것은 친구와 지인들을 통해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2박스에서 시작하던 것은 그해 50~60박스로 나가고 이듬해는 배가 늘었으며 이후에는 500~600박스가 됐다. 3년 만에 택배로 보내는 절임배추는 700~1천 박스가 나갔다.

절임배추를 하려고 일꾼들과 일하던 어느 날 단산면으로 가던 길에 농업기술센터 최종호 계장은 큰 고무대야 여러 개에 아주머니들이 배추를 절이고 있는 모습을 본 후 최 대표에게 농민사관학교에 교육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렸다.

생전 처음 내가 하는 일로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가 교육을 신청했어요. 교육생 중에 내가 나이가 가장 많아 어려움이 있었으나 열심히 배웠지요. 그렇게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자리 잡아갔지요
 

색색의 건강 감자, 전국으로
감자도 힘든 시기에 어떻게든 수익을 내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없는 형편에 60만원으로 감자종자를 사서 심었으나 얻은 수익은 30만원이 전부였다. 그래서 특용작물로 눈을 돌렸다. 여러 번 실패 끝에 건강에도 도움 되는 색색의 감자를 심었다. 7가지 중 4가지를 중점적으로 택배를 보내고 있으며 올해도 벌써 감자 한 종류는 완판됐다고 한다.

밭이 없어 배추를 사서 했는데 돈이 많이 들어 시아버지가 계실 때 우리가 산소를 관리하며 밭을 일구겠다고 했지요. 남편과 내가 젖소농장에서 아침저녁으로 일하고 배추를 심어야 했기에 계절을 맞추려 감자를 심게 됐어요. 7월 초순 감자를 수확하고 그 자리에 배추를 심어요

최 대표의 밭은 제초제 등의 약을 치지 않는다. 그래서 감자 밭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자연에서 키우는 밭을 보여준다. 모양이 예쁘지 않아도 좋아한다. 감자 외에도 참깨를 심는데 깨끗이 씻어 판매하면 가격을 더 받는다.

도시사람들은 믿을 수 있으면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바라요. 어떤 때는 토란도 삶아 보내달라고 하고 감자도 까서 달라고도 해요. 너무 바쁘게 살아가니 소포장을 원하는 곳이 많지요. 쓰레기를 최소화시켜 달라고 하면 맞춤으로 소포장해서 보내요. 주문한대로 가지 5, 꽈리고추 500g을 해서 보내면 좋아해요

최 대표는 전통음식만들기카페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이제는 직영방을 받아 마음대로 팔 수 있는 것들을 판매하고 동네어르신들이 팔아달라는 농산물도 위탁해 이웃농가 제품이라고 알리고 판매한다.

이에 최 대표는 여러 가구를 먹여 살린다고 말한 것이라며 이런 것이 좋아 계속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역농사정보 카페에도 가입해 열심히 했던 최 대표는 소비자들에게 나를 알도록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픔 지난 후 고마운 이들에게
어느 날은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나, 그만할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최 대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사장 때문에 우리가 먹고 사니더라는 말을 전할 때마다 그 말 한마디로 힘을 낸다고 했다.

15년 동안 3번의 대수술을 했다는 최 대표는 3년 전 유방암이 발견된 후 다시 살아난 인생 같다고 했다.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는데 다행히도 다친 곳은 많이 없었지만 초음파로 암을 발견했어요. 위치가 쉽게 찾기 어려운 곳이었다는데 그래도 살 운명이었나 봐요. 3년이 지났는데 전이될까 염려가 될 때면 우울증으로 힘들 때도 있어요

최 대표는 살아가는 동안은 나누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에게는 성공한 모습만 보이겠지만 잠을 적게 자고 덜 먹으며 열심히 노력해왔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했다. 최 대표의 다양한 노력에 방송국에서 촬영해 알리고 서울에 있는 유명세프들이 모인 자리에 초청됐으며 경북전문대 교수의 권유로 귀농자들에게 성공사례도 전했다.

이번 기회에 지면을 통해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요. 힘든 시기 도움을 준 옆집 할머니와 시청 공무원 천순옥 씨에요. 정미소를 하던 할머니는 까만 봉지에 쌀도 담아주고 만원도 주시고 옷도 사주셨어요. 천순옥씨는 우리 아이들이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줘 지금까지 고마움을 잊지 못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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