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s Of Child Soldiers Died In The Korean War.
Survivors Want More Recognition
한국전쟁에서 몇 천 명의 소년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공로를 인증받기 바란다.
미국 국영 NPR 방송은 6.25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소년병으로 참전한 우리고장에 살고 있는 박태승(풍기읍)씨를 지난달 18, 19일 취재하여 한국전쟁일인 25일 보도했다.
NPR 보도 내용 요약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부르지만, 한국에서는 잊혀지지 않았다.
전투는 1950년부터 1953년까지 계속됐으나 평화 협정은 아직 체결되지 않았으며, 남북관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 무리의 생존자들은 여전히 적절한 인정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소년병들이다.
한국 정부는 한국전쟁을 위해 14세에서 17세 사이의 3만 명 이상의 군인을 징집했다고 말한다. 이들 중 약 3,000명이 전쟁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은 90세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중 한 명은 한국의 경상북도 영주에 살고 있는 박태승(87)이다.
박씨는 이틀간의 훈련을 받고 소총병으로 전선에 투입됐다. 그는 매일 주먹밥을 몇 개씩 먹었는데 이것은 50파운드 무기와 탄약, 장비를 지고 언덕을 오를 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주지 못했다. 어린 병사는 적과의 전투보다 자신과의 전투가 더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해 8월 북한군은 미군과 남한군을 한반도 동남쪽 끝으로 밀어냈다. 미국은 150마일의 전선을 방어하면서 부산항을 통해 병력과 물자를 수송했다. 박씨는 9월에 미국, 유엔, 한국군과 함께 부산 방어선을 벗어나 북한으로 진격하고 평양을 점령하며 싸웠다.
그 후 10월 하순에 중국군이 전쟁에 가담했고, 미국과 한국군은 38선을 넘어 다시 후퇴했다. 적군이 바짝 뒤쫓고 있는 가운데 근처에 있던 한 소년병이 유탄에 맞았다.
박씨는 “처음엔 데려가 살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숨이 가빠지면서 그는 자신이 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나에게 총을 쏘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자신이 적군을 죽인 적이 없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의 전우를 고통에서 구해냈다. 그는 “나는 그것이 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박씨의 맑고 강한 목소리는 아픈 기억을 더듬어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
1970년대 박씨는 불교에서 위안을 찾았고, 죽은 소년병들을 위해 매일 예불을 드린다.
박씨는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남지 않았다. 이들은 결혼 전에 죽었기 때문에 자식이 없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은 다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그들의 영혼을 위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참회하기 위해 기도한다. 그는 “매일 기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죽인 전우”라고 말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소년병들이 나라를 구했다고 믿는다.
박씨는 “백선엽 장군은 회고록에서, 8월에 북한군이 낙동강으로 내려왔을 때 소년병들이 없었더라면 부산 방어선이 전복되었을 것”이라고 썼다고 언급하고 있다.
박씨는 정부가 소년병들의 희생과 공헌을 인정하기 위해 사과하거나 공식 기념비를 세운 적이 없다고 분개한다. 박씨는 소년병 출신들을 조직하고 수십 년 동안 국회의원들에게 제대로 인정받기를 로비했지만 허사였다.
박씨는 미국의 도움이 진심으로 감사하고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한다. 박씨는 미국의원들에게 소년병에 대한 편지를 썼지만, 이를 무시한 채 국회로 편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20여 년 동안 운영하던 전국소년병전우회(회장 박태승)를 이끌었으나 돈과 힘이 부족하여 지난 봄 해산시켰다. 그럼에도 매일 새벽 5시 법당에서 기도하고 있다. 흙빛 예복을 입은 그는 한국의 국기와 전사한 소년병들의 위패 앞에 예불을 드린다.
한편 지난 7일 박태승 소년병 기사가 미국 NPR(라디오방송·인터넷뉴스) 방송에 특종 보도됐다는 소식을 듣고 지인 몇 분이 풍기법우회(심우원)에 모였다.
이날 작은 모임에는 백충기 전 시의회의장, 권영순 전 초등학교교장, 권용학 전 순흥향교전교, 이승섭 전 농촌지도소장, 박남서 전 시의회의장, 전풍림 시의원이 자리를 함께 했다.
박 전 의장은 “미국 NPR방송에 박 회장님 기사가 특종 보도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하게 됐다”면서 “현지 미국인들과 교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한미동맹을 더욱 돈독히 하고, 6.25를 다시 기억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현지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권영순 전 교장은 “박태승 회장이 풍기에 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고 풍기의 또 하나의 보물”이라며 “6.25소년병 전사자 3,260위를 모시고 매일새벽 예불을 드리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냐? 하늘이 감동할 일”이라고 말했다.
권 교장은 또 “박회장은 소년병 전사자 외 6.25풍기전투 전사자 영가 248위 위패를 모시고 매일 예불을 드리고 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풍기전투 전사자 위령비를 세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영주시와 지역민들이 뜻을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