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영주人터뷰[3] 가흥1동 동촌왕겨 김훈섭 대표
하루의 시간들이 쌓이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도 더해진다. 우리고장 사람들은 어떠한 삶을 이어왔을까. 평범하게, 때로는 남다르게, 살아온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하려한다.[편집자 주]
미래의 조언 듣고 배우며 삶을 개척해 나가
1년 계획해 일과 취미 즐기며 알차게 생활
누구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간다. 현재의 환경도 살피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도 있다. 그리고 결정한 일에 대해 후회를 할 때도 있고 다시 힘을 얻어 도전을 하거나 새로운 것을 찾을 때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삶을 살아간다.
지난 22일 만난 가흥1동 동촌왕겨 김훈섭(36) 대표는 자신이 선택한 삶에 충실하며 자신만의 열정 가득한 활동들로 하루를 일찍 열어가는 사람이다.
월급모아 암소 한 마리 구입
김 대표는 풍기에서 태어나 풍기초, 금계중, 과학기술고, 안동과학대를 졸업해 고향인 영주에서 젊은 날을 보내고 있다.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한 그는 헬스트레이너나 수영강사로 직업을 삼고자 했지만 장기적인 비전에 대해 고민하다 친척이 하는 중장비를 배우기 시작했다.
20대 젊은 나이에 두 배 가까운 나이의 어른들 틈에서 일을 배우기 바빴지만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정보들도 들을 수 있었단다.
“28세 되던 해에 월급 받은 돈으로 암소 한 마리를 구입해서 5년을 키웠어요. 그때 생각에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은행에 넣는 것보다 소를 키우는 것이 돈이 될 것 같았거든요. 내가 소를 산다고 하니 아버지가 처음에는 ‘왜 사냐’고 의아해 하셨죠”
건강원을 하며 농사에 대해 잘 몰랐던 아버지는 그와 함께 6개월 동안 소를 키워 팔아 돈을 벌게 되자 생각을 달리 하셨다고 한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젊은 사람들과 일하고 생활했으면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어른들의 조언도 들으며 방법을 배운 것 같다고 했다.
먼 미래 위해 왕겨사업 시작
중장비업을 하던 그는 30대에 들어서서 왕겨사업을 시작했다. 올해로 7년째다. ‘왕겨’로 사업을 하는 업종이 많지가 않다. 영주에서 왕겨사업을 하는 업체가 4개로 영주 외에도 봉화, 예천, 안동까지 활동영역을 두고 있다.
“이 사업은 연계된 정미소가 많이 있어야 사업이 되는데 봄부터 여름까지는 왕겨가 없어요. 1년에 6개월 정도는 없기 때문에 얼마나 모아서 보관하고 있느냐가 중요해요. 그래서 저도 비닐하우스 2동을 크게 지어 저장해놓고 있죠”
그가 왕겨사업을 하면서 중장비를 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기계를 사는데 투자했던 비용도 많이 들었고 다시 팔자니 어려움이 있었지만 왕겨사업을 시작한 후에는 중장비를 보유하고 있어 활용도가 많았다고 한다.
“영주에는 크고 작은 정미소가 40여개 있어요. 작은 정미소는 자체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큰 정미소와 거래를 하는데 정미소의 창고에서 쌀을 빻으면 바로 창고를 비워줘야 하거든요. 이때 왕겨를 빠르게 옮기기 위해서는 중장비기계가 필요한데 빌리자면 비용도 들고 기계가 없으면 어려움이 많아요. 저는 기계가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수월하게 하고 있지요”
가을이 되면 그의 하루는 더 바빠진다. 오전 5시부터 일을 나가 늦은 밤까지 밥도 못 먹고 다닐 때도 있다고 한다. 비수기가 오면 정기적인 농장관리방문 외에도 처음 키우기 시작한 소의숫자를 늘려 돌보고 있다. 현재 상하수도기자재, 건축자재, 종합목재를 하는 ㈜해성산업에 이사로도 활동한다.
“1년을 계획하면서 생활해요. 왜냐하면 우사는 여름과 겨울에 한번 왕겨가 들어가는데 병아리를 키워 닭으로 파는 곳은 한 달에 한번 들어가야 하거든요. 비에 젖으면 안 되니 창고에 저장해 수시로 넣어주고 있죠”
구제역, 조류독감 등이 발생하면 사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그는 농가를 수시로 방문하며 관리하기 때문에 이동차량에 GPS가 달려있다고 했다. 이동제한이 되면 움직일 수 없어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최근 유행하는 코로나19에 김 대표는 다행히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와 연관돼 있는 축산 농가들의 경우, 소비가 줄어들어 어려움이 있다며 걱정의 목소리를 내비쳤다.
내 고향 영주에서 살아가며
“영주에 젊은 세대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대부분 어르신들을 위한 사업들이 이뤄지고 바뀌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천둔치만 봐도 그렇죠. 젊은 세대를 위해 바꿔줬으면 해요”
그는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지속적인 이야기가 있어야 의견이 반영이 될 수 있지만 모두 생업에 바쁘기 때문에 참여하거나 전달하는 것에는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반대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어른 세대는 경로당이나 행사장 등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어지고 지속적인 이야기로 전해지기 때문에 의견이 반영되는게 아닌가 싶단다.
“아이들이나 젊은 세대를 위한 것에 보여주기 식으로 하지 않았으면 해요. 먼 거리의 남는 공간에 만드는 것이 아닌 가까운 장소에 돈을 들여서 제대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봉사하며 다양한 취미 즐기기
그의 좌우명은 ‘오늘을 열심히 살자’이다. 그날그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사업 외에도 하고자 하는 일에는 추진력을 갖고 움직인다.
체육전공자다운 운동실력으로 스쿠버 7년 경력, 영주수상스키클럽 총무로 활동하고 있으며 돌핀스쿠버클럽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겨울 스키를 타다 친한 형이 스쿠버도 배워보자 해서 시작했어요. 스쿠버를 배우려니 초빙강사비용이 많이 들어 회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직접 배웠어요. 밴드 전체인원은 600명이고 영주회원은 150명 정도인데 가까운 울진으로 자주 가서 즐겨요”
올해는 영주체육회 영주수상스키협회 전무이사로 들어갔다는 그는 100명 정도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고 했다. 인터뷰 당일에도 오전 5시 안동댐에 가서 수상스키를 타고 왔다면서 얼마 전에는 뜻이 맞는 3명이 함께 배도 구입했단다.
“주말에는 시간을 맞춰 스쿠버를 가고 평일에는 수상스키를 매일 타러가요. 일과 취미를 적절하게 활용하려고 아침 시간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에요. 아침에 바람이 잔잔해 수상스키를 타기 정말 좋거든요. 평균 2~3시간을 타고 오전 8시 정도 영주에 와요”
올해 그는 풍기청년회의소(이하 풍기JC) 회장으로 취임했다. 2014년 들어온 그는 행정적인 것을 배우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많은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풍기JC에 새로운 젊은 친구들이 들어와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올해 풍기JC의 큰 행사인 어버이날 행사가 코로나19로 취소됐는데 한편으로는 알리는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회원들 모두 적극 나서서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마스크도 기부하고 음식을 나누는 등 기부동참으로 풍기JC를 더욱 알린 것 같아요”
경북에 34개 청년회의소가 있다는 그는 풍기JC의 우호단체로 강원도 한백JC에 이어 올해 경기도 양주JC와 첫 교류를 시작해 지역을 알리고 있다고 했다.
“바쁘게 생활하다보니 부모님과 아내에게는 제가 좋은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는 항상 묵묵히 지켜보고 지지해주셨어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나에게 힘을 주셨죠. 앞으로 가족들과 함께하며 제가 하는 일들이 잘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야죠”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3D업종이지만 미래를 바라보며 잘 가꾸고 유지시켜 나갈 것이라고 다짐의 말을 남겼다. 그리고 일을 찾는 젊은 세대에게 남들이 안하는 업종을 선택해 열심히 도전해보길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