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대학 3학년 때였던가 보다. 불면증으로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3일 정도를 한숨도 자지 못해서인지 거의 미치기 직전이었다. 불면증으로 고생해 본 사람들은 알리라.

정신이 맑을 때는 유리알처럼 맑으며, 만약 내 마음이 걸레라면 퐁퐁으로 깨끗이 씻어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그날도 잠을 자지 못하고 무심천 강둑에서 멍청히 앉아 밤을 꼬박 지새웠다.

잠을 자야 하는데 이 세상의 온갖 잡념들이 머리와 마음에 여지없이 쳐들어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새벽 5시경이 되었을까? 저 멀리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를 혹시 신이 이 불쌍한 모습을 보고 친구 하나를 보내주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그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어둠 속에서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사람은 여자였다. 나는 생각하기를 '이 불쌍한 중생을 드디어 하나님은 구해주시는구나.'하고 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점점 나에게 가까이 왔다. 나는 두렵기도 하고 떨리기도 해서 눈을 감았다. 어찌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신이 보내준 여자를 기다린단 말인가? 더욱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는 거의 다 왔을 즈음에 눈을 떴다. 별처럼 반짝이면서 지긋하게 나를 올려다볼 신의 점지자를 향하여 눈을 돌렸다.

순간, 그녀는 나를 보고 씨익 웃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이런 기가 막힌 일이 다 있을까?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더욱 가까이 왔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머리가 뒤엉켜서 얼굴조차도 알아볼 수 없는 미친 여자였다!

그 후 나는 그리움의 날개를 접었다. 먼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한 10여년 동안 그리움은 나에게 없었다. 그래, 그리움은 허망한 것이다.

찬란한 문으로 들어가서 허망의 뒷문을 소스라치게 빠져나오는 것이 그리움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참 썰렁한 새벽이었다. 불혹(不惑)이 넘은 나이에 불현듯이 그 생각이 나는 까닭은 찬란한 문보다는 허망의 문이 더욱 가까운 탓일까?

[김신중의 생각의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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