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보면 IQ가 20이라는 말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장소를 가리지도 않는다.
이 세상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사는 것처럼 행동한다. 옆에 사람들이 보고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이 도리어 민망할 지경이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의 이러한 행동은 그렇게 추해 보이지는 않는다.
더러는 나이가 든 사람끼리도 사랑한다 하여 IQ가 20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정을 버리기도 한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면서 가정의 범위를 마음대로 넘나든다. 젊은 사람들의 사랑에 비하여 아주 가혹한 비판을 받는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책임감이 없다고도 하며 도덕이 무너졌다고도 한다.
에로스적인 사랑은 삶에 있어서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니이체는 여기에서 창조적인 동력이 생산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든 사람들의 경우에는 창조적인 동력보다는 이기적인 쾌락과 가까워서 아마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것을 꼭 주착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무엇보다 나이가 든 사랑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보다는 유익을 끼치는 그런 사랑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아직도 제 눈에 안경이라고 부르짖으면서 사랑을 고집한다면 그것만큼 꼴불견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을 골고루 바라보면서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랑, 이제는 그런 사랑을 나이가 든 사람의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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