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수의 세상보기
이제 영주도 좀 달라질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아직은 그 기대만큼의 욕구를 충족하기엔 이른 시간이다. 분명히 자신할 수 있는 것은, 느끼지는 못할 뿐 알게 모르게 미치는 영향은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 확신 만큼 김 푹푹 빠지게 하는 것은 시민신문에 일반시민의 참여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잠자는 시민의식이 더 큰 문제이다. 견제와 감시, 비판이 없는 권력은 타락하게 돼 있다. 시민신문에 시민들의 참여가 없으면 족벌언론(조, 중, 동)들처럼 썩어 오만불손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최소한의 참여도 하지 않으면서 '시청 관변지'라 비하하며 어떻고, 저떻고, 왈가불가하는 얘기가 떠돌아다니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영주시민 누구나 시민신문을 비판할 자격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양심적으론 주주 참여 아니면 정기구독자들이 비판할 자격이 더 있는 것 아닌가.
소주 한 잔 값인 일년 구독료와 1만원짜리 주주도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까니까 하는 말이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시민신문이 잘못되면 뭐라 그러는지 아시는가? "그럴 줄 알았어, 처음 시작 할 때부터 알아봤어" 하며 똑똑한 척 꼴값 떤다는 것이다.
시민신문이 그 명성에 맞게 시민의 권력으로 힘을 발휘할 땐, 기웃거리며 아부형 줄대기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이름팔며 표시 내고, 생색내며 행세 좋아하는 토호 지배세력들 말이다. 잘되면 지 잘나서 잘됐고 못되면 조상 탓이란 돼먹지 못한 경우도 있듯이, "뭐 같네!" 라며 욕만 할 줄 알았지, 왜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은 모를까.
동창회, 친목회, 종친회 등, 급할 땐 빽이 되고 경조사 땐 챙겨먹을 수 있는 친목단체에는 회비 꼬박꼬박 내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시민단체에는 후원금 한 푼 낼 줄 모르면서, 세상이 변하길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뽀가 아닐까. 왜 세상은 변해야 하고 세상의 구성원인 나 자신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은 못해 보는 것일까.
'참여 민주주의' '문화시민' '시대정신" 또 이 지역에선 선비정신이란 좋은 이념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이것이 사회의 성숙도, 그 수준이라는 것이다. 창간호를 보라! 이구동성, 아니 십구동성으로 정론직필을 바라지 않았던가? 정론직필 하라 할 때는 언제고,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본다나. 이러면 이런다고 지랄하고, 저러면 저런다고 발광해대니, 미치고 환장하며 펄쩍 뛸 일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 동안 많은 지역신문들이 화려하게 등장했었다. 그 화려한 출발과는 반대로 경영난에 허덕이다 사라져 갔다. 올바른 사회적 공기의 임무를 망각한 일부 사이비기자들은 선량한 공무원들 꼬투리나 잡아 지식사기 쳐, 떨어지는 떡고물에 오염되어 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시민신문은 그 이름 만큼이나 달라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으로, 시민이 주인이 되는 자주경영이 되어야 한단 것이다. 한마디로 상업광고 하나를 해도 시민신문 줘, 우리의 것으로 살려 보자는 얘기다. 그 모든 공동책임은
이 글을 읽는 지금, 영주시민한테 주어져 있는 것이다. 시민신문이 잘못된 선례를 남긴다면, 다시는 영주 땅에선 시민주주참여의 민주적 방식신문은 탄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민신문에도 할 말 많다. "완벽하다" 착각하는 공주 빼고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반성하고 사과하는 사람은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류동수의 세상보기를 쭉 봐왔던 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봄비 내리던 잔인한 4월의..."의 제목이 두 번 나갔다는 것을 말이다.
왜 지면에 공개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는가? 이런 작은 데서 믿음이 생긴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좋다. 명백한 실수니까. 기분 더러웠던 것은 "본 글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편집방향이 정론직필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배운 게 없어 글이 거칠다는 것은 인정한다. 글쓰기 방식에 개성 있으면 안되는 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분명 말할 수 있다. 국민 세금 받아 외세에 빌붙어 제 선량한 백성을 이간질해 사기치는 정치꾼의 못된 짓보다는 더 나쁘지 않다.
또 배상은 고사하고, 사죄와 반성을 모르는 양놈과 왜놈의 오만한 싸갈머리에 대한민국 민주시민으로서 분노하며 열 받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말이다. 한마디 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반만년의 역사를 고난과 시련으로 국난을 헤쳐 온, 이 민족의 저력보다 더 슬픈 자랑스런 민족은 일찍이 보질 못했다.
밤하늘에 북극성은 방향을 잡아 준다 한다. 북극성을 아는 그는 돈도 없지만 학력 또한 상고졸업이 고작이다. 돈 많고 학력 높은 사람들은 북극성을 모르거나 손짓하지 않는다. "보라! 북극성을..." 그런데 그는 미치고 환장하며 펄쩍뛴다. 왜였을까? 보라는 북극성은 보질 않고, 손가락에 신경 쓰는 사람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더 웃기는 일은 검지방향은 안 보고, 엄지 방향을 보며 생트집 잡는 엉뚱함 또한 있었기 때문이다.
정론직필해야 할 이유는? 북극성은 변함없는데, 간사한 인간만 흔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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