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아래서 가난과 세월을 엮었다"
봉화에서 물야면 소재지를 훨씬 못미쳐 전통사찰인 축서사 진입로를 따라 2km가량 들어가면 태백산 줄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가에 금방 쓰러질 듯한 오두막집이 있는데 이곳이 짚공예(초고)의 맥을 이어가는 박형기옹(83. 물야면 개단리)의 집이다.
지난 여름의 폭우를 어떻게 견디었을까라는 의구심을 안고 폭 5m가량의 개울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박 옹의 집에 들어서니 박 옹과 부인이 손님을 맞이하는데 마당 구석구석에는 짚신과 소쿠리 등 짚공예품이 널려있어 한눈에 박 옹의 집임을 알 수 있다.
『쌀 한 톨 구경 못하는 산골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짚신을 직접 삼아 신고 할아버지 아버지의 일손을 거들기 위해 소쿠리와 멍석 등을 만들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젊은이가 돈 안되는 줄 뻔히 알면서 짚공예 일을 하겠어요』
박 옹의 푸념 아닌 푸념은 나중에 알고보니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던 고 장세인 초고장 사망 이후 박 옹이 유력한 후보였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한을 안고 있는 듯 했다.
짚신은 산간지역인 강원도 지역이 경북에 비해 앞축의 신총이 더 많이 들어가 있다
박 옹이 봉화에 정착한 것은 31년 전 돈벌이를 위해 무작정 남쪽으로 내려온 데서 비롯됐다.
결국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제는 남은 여생을 봉화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박옹은 강원도 지역과 경북북부지역의 짚공예품이 일부 달리 표현된다고 말한다. 짚신의 경우 강원도 지역은 경북에 비해 앞축의 신총이 더 많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강원도가 산간지역이란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50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선대로부터 익혀온 솜씨로 박 옹이 만들고 있는 초고제품은 짚신, 소쿠리류, 멍석, 띠자리, 조루막 등 20여종에 이르고 있으며 솜씨가 정교하고 모양을 인정받아 주위로부터 주문도 이어지고 있다.
취재 차 박 옹을 방문한 날도 영주의 한 젊은 부부가 와서 소쿠리와 조루막 등을 구입해 갔다고 한다. 요즘은 대부분 초고제품을 사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실생활용이 아닌 점포나 가정의 장식용으로 쓰기 위해서다.
하루 밤 늦도록 삼아야 짚신은 두 켤레, 소쿠리는 3일에 한 개 정도 만들 수 있다
박 옹은 틈틈이 만들어 놓은 초고를 친척에게 선물하거나 일부는 판매하고 또 잘 만들어진 제품은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보관하는 작품들은 봉화군이 주관하는 각종 축제행사에 단골 전시품으로 등장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잔손이 많이 들어가고 정성과 기술이 필요한 초고를 계속 만들고 있는 것은 조상들의 애환이 스며있는 우리의 토속적 전통을 계승해 보고 싶어서지요』라며 전통 공예품이 점차 자취를 감추는 현실을 안타깝게 말한다.
이처럼 박 옹이 정성스럽게 만들어 내는 초고제품은 하루 밤 늦도록 삼아야 짚신은 두 켤레 정도, 소쿠리는 3일에 한 개 정도에 불과하다. 초고는 농경문화가 시작된 이래 우리나라 농촌에서 벼는 물론 보리의 짚이나 대나무, 부들, 싸리나무, 칡넝쿨, 삼 등이 일상생활에 결부되어 널리 이용되어 왔다.
짚은 섬유로서는 약하고 풍화되기 쉬우나 부드러워 가공이 쉽고 속이 비어있어 보온력이 높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예로부터 겨울의 농한기는 짚공예가 농가의 중요한 작업이었고 한해 농사와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준비작업이었다.
새끼, 멍석, 짚신, 가마니, 방석, 자리 등은 생활도구로 농가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해 온 제품들이다. 하지만 이 같은 짚공예도 현대에 들어와서는 세간 도구가 모두 규격화, 공업 생산화 되면서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취향에 밀려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전통초고장 맥 잇기 위해 군이 무형문화재 지정을 추진했지만 나이가 많아 무산될 처지에 놓여 있다
모두가 등한시 하면서 잊혀져 가는 전통 짚공예의 맥을 잇고 있는 박형기옹. 4남4녀의 자녀들은 모두 출가해 외지로 나가 살고 있어 짚공예의 전수도 쉽지 않다. 전수자가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윗 마을에 신종선씨(70)와 친척인 박종기씨(62) 등 배울려는 사람들은 있는데 대부분이 60대 이상 노인들이다』면서 『젊은이들은 아예 외면한다』고 아쉬워한다.
실제로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던 고 장세인 초고장이 작고한 뒤 전통 초고장의 맥을 잇지 못하는 봉화의 경우 군이 박 옹의 무형문화재 지정을 추진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무산될 지경에 처해 있다.
박 옹은 『요즘 어느 젊은이가 짚공예를 배우려 하겠느냐』며 『그나마 관심이라도 가진 사람들은 모두가 60대 이상 노인들이다』고 말하며 전통의 맥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조상대대로 토속적이고 서민적 애환을 간직하며 이어져 오던 전통 짚 공예가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세태에 밀려나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함께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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