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출(영주고 교사)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즉, 사고의 수단이 되는 말과 글은 제 뜻에 맞게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언어는 대체로 왜곡·과장되었거나 변명성이 강한 의미로 선택된 것이 많다.
이를테면 일본에서 건너와서 우리 사회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원조교제' 라는 말은 '도와주면서 사귄다' 라는 건전한 뜻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유흥비가 필요한 10대 여학생들이 돈을 지급할 능력이 있는 성인 남성들에게 돈을 받고 몸을 파는 매춘행위' 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컴퓨터와 휴대폰의 급증으로 인한 부작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의 이기가 인간의 윤리를 마비시킴으로써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무감각해지고 있으며 부끄러움을 완화해주는 용어 사용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현장에서도 교육예산은 선진국 수준으로 투자하지 않은 채, 모양만 비슷하게 흉내내고 있는 꼴을 흔히 볼 수 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기적성교육은 보충수업을 무뉘만 바꾸었고, 수행평가는 서술형 주관식 문제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또 대학수학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치르는 수능시험은 어디까지나 자격 시험이므로 대학별고사가 별도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에서 이를 치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아직도 대학에서는 선발고사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수험생들의 수능 점수를 가지고 일렬로 줄을 세우고 그들의 인생을 결정하고 있다는 여론이 들끓자, 최근 몇 년간 사교육비 증가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면서 쉬운 수능을 고집하게 되었고, 급기야 지난해에는 물수능이 되는 바람에 변별력은 상실했다는 비난마저 안게 되었던 것이다.
올해에는 다시 수능이 어려워진다고 한다. 2002학년도 대학입시부터는 한 가지 특기만 있으면 대학을 갈 수 있다고 홍보해 왔으며, 또 무시험전형이 확대된다고 했었다.
그러나 봉사활동이니 특별활동이니 하는 비 교과 영역은 객관성이 확보되기 어려우니 수능이 등급제가 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는 수능 점수에만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만 것이다. 이제 학생들은 더 이상 실험용 쥐가 될 수 없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수험생들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2002학년도부터 대입 전형방식이 달라질 것이니 재수하면 불리할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막상 2001학년도가 되자 다시 과거와 대동소이한 방식으로 되돌아가게 된 것이다.
오히려 수능 이외의 다른 요인에 많이 매달려 왔던 재학생들이 재수생들에 비해 불리해진 형국이 되었는데, 교육부는 모의고사마저 일선 학교의 정규고과 시간에 치르지 못하게 하고 있다.
더욱이 사설 학원에서는 마음대로 칠 수 있다고 했으니 너무나 불공정한 게임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 재학생들마저 학원에 가야만 모의고사를 칠 수 있게 되었으니 일선 학교에서는 대학 입시 준비가 더욱 어려워 진 셈이다.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펴야 바람직한 시점에서 결과적으로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 된 것이다.
이미 과외금지는 위헌 판결을 받은 형편이니 대도시의 고액과외는 춤을 추더라도 단속마저 어려울 것이다.
중소도시나 지방에서는 지금까지 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의 '보충수업' 이나 '야간특별수업' 이라는 이름으로 명문대 입학 가능성이 높은 성적우수자들에 대해 '과외수업'을 해 왔었는데, 이제 자율적으로 공부한다는 '야간자율학습' 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시켜오던 '강제학습' 과 함께 그 모두가 부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널리 쓰이는 일상용어의 의미가 제 뜻에 맞게 사용될 때, 그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공공연하게 왜곡·과장·미화되어 쓰이는 언어가 난무하는 사회일수록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김우출.영주고교사 designtimesp=13657>
[시민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