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민(서초입시학원장)

나는 속칭 "숫골"이라는 곳에서 인생의 전반기를 보냈다. 말하자면 제일교회 뒤편과 영광여고 사이의 조개껍질처럼 다닥다닥 붙은 재래식 기와집과 미로처럼 뒤엉킨 골목들이 우리가 어린시절 방목생활을 보낸 목초지였다.

"아버지 돈 벌러 나가고 어머니 또 돈 벌러 나가고" 우리는 비슷한 생활환경과 고만고만한 지능지수로 뒤엉켜 주업은 노는 것이고 부업은 짬짬이 공부하는 것으로 낙을 삼으며 철저하게 "요순시절"을 보냈다. 아니 누렸다!(지금 생각하면).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철탄산에 올라가 단단한 참나무를 꺾어 칼싸움이나 총싸움을 했으며 봄이면 아카시아나 진달래를 입술이 벌겋게 뒤집어지도록 따먹으며 해질녘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짓도 시들해지면 좀 더 먼 성재까지 가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는데 그 때 성재 밑에서 올라오는 노릿노릿한 화장장의 시체 태우는 냄새는 지금 생각해도 좀 오싹하다.

그리고 안정 쪽으로 길게 꼬리를 물고 사라지는 중앙선 완행열차의 긴 기적소리는 나로 하여금 북방을 향한(서울) 알 수 없는 슬픔과 막연한 동경을 키우게 했다.

그런데 고르게 못 살던(?) 우리들의 해방구인 이 "숫골" 중에서도 "수용소"라는 곳은 어린 우리들 눈으로 보기에도 좀 이상한 곳이였다.

짐작컨대 6.25 직후 피난민들의 임시 수용소 정도로 쓰였을 법한 이곳이 그 후에는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의 집단거주지역으로 변해 "수용소"라는 이상한 명칭을 얻은 듯하다.

얇은 슬레트 지붕을 일-자로 죽 이어 댄 지붕에 두부 모처럼 착착 칸을 나누면 자연적으로 한 칸집이 되는 이곳 풍경은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생생하다.

한여름인데도 어디가 아픈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콜록거리며 누워있던 노인. 투덜투덜 혼자돌던 선풍기. 아무렇게나 방안을 나뒹굴던 소주병. 쳐진 발 사이로 희미하게 비쳐 나오던 파란 흑백텔레비젼의 흐릿흐릿한 화면.

늘 도라지를 까던 어떤 굵은 손마디. 하염없이 손을 떨던 얼굴이 시커먼 풍환자. 밥사발과 동시에 문지방을 앙칼지게 넘어오던 여자의 비명소리. 막노동에서 막 돌아와 한잔 걸치고 밤마다 싸워대던 이북 사투리들. 아침에 등교 길에 보면 늘 깨진 유리창이 뒹굴던 점방문. 겨울날 딱 세칸뿐인 공중변소 앞에서 길게길게 줄을 선 채 헌 신문지를 둘둘 말고 동동 발구르던 공돌이, 공순이들. 그 슬픈 7,80년대의 풍경을 밀며 또 다른 그림이 지금 내 눈을 잡고 있다.

"수용소"가 피폐된 한국 기층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극하향점이라면 한국판 천민자본주의의 온갖 상업성과 기교, 테크닉이 바벨탑처럼 견고하게 구축된 "청담동"은 갈 데까지 간 한국적 폐쇄자본주의의 극상향점을 대변하고 있다.

이 브르죠아지들의 해방구에는 해외유학파 자제들의 귀하신 몸들이 휴고보스 정장(800만원)을 걸치고 시가 10억원(한달 관리비 3~5백만원)짜리 집을 나서 BMW Z3(7천만원)를 타고 40만원짜리 "아이그너" 벨트를 맨 채 50만원짜리 "테니토스" 신발을 신고 "카르티에" 손목시계(400만원)나 베르사체 선글라스(120만원)를 끼고 쿠바 아바나 산(産) 개당 2만원짜리 시거를 문 채 수억원대의 인테리어비를 들인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발레 파킹"(벨 보이가 주차시켜주는 행위)을 하며 1잔에 1만원씩하는 인도 산(産) 실론트 홍차를 음미하며 오늘의 주식시세를 점검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 패밀리에 월수 3만불(한화 약 3천만원) 이하짜리의 잡것들이 끼여들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될 수 있으면 자신들의 쇼셜 포지션에 맞는 "끼미끼리"와 놀기를 원하고 타인에게 배타적이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은 개발독재시대부터 누려온 자기들의 부가 금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런 한줌도 되지 않는 1.6%의 브르죠아들에 의해 국민 총소비의 25%가 소진되고 있으며 이것은 하위 20%계층의 연간 소비량의 5~6배에 해당한다.

영양부족으로 세계인구의 12억명이 죽어가는 반면 이 지구의 또 다른 반대편에는 영양과잉으로 또 12억의 인구가 죽어간다. 아프리카 수단에서는 어린이, 여성들이 끌려가 "청담동족"들이 미장원에서 뿌리는 팁에도 못미치는 두 당 2만원씩에 노예로 팔린다고 한다.

외국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라도 IMF 이후 가구당 실질소득이 85만원에도 못 미치는 극빈층 가구가 전체의 17%에 이르며(한국개발연구원조사) 그 혈압계가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긋는 데도 이들은 오늘도 더 좋은 차와 더 좋은 음식과 더 좋은 분위기를 찾아서 청담동 일대를 자기들의 해방구로 삼으며 어슬렁거린다. 이렇게 우리는 똑같은 하늘 밑에서 서로 다른 베개를 배며 살고 있다.

그들은 얼굴만 누리끼리한 몽골리언 계통의 황인종일 뿐 그들의 모국어는 더 이상 한국어가 아니며 정서는 "어메리칸"적이다.

삶의 비극성은 세익스피어가 말한 바 대로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바로 이 순간 또 다른 "수용소"의 후예들은 오늘도 "청담동"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한부 생명을 사는 멍청한 정부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박승민.서초입시학원장)
[시민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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