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순(풍기중 교사)

밤잠을 설칠 정도의 무더위다.
집 뒤 서천둑에 나가 걸어 보지만 바람 한 줄기 오지 않는다. 친지들 몇 집 모아 정안동계곡 폭포로 하루 더위 피하러 갈까 생각해 본다.

영주 오던 해 여름, 희방계곡을 찾아갔다. 그때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이었지만,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바위마다 한 가족씩, 아주 살림이라도 차린 듯 아이스박스에, 솥에, 냄비에....

저 무거운 걸 여기까지 어떻게 들고 왔을까 싶게 집집마다 불판에 고기를 지글지글 굽고, 야채를 듬뿍 차려 쌈을 싸서 먹는가 하면, 돌로 막아 물을 고이게 한 웅덩이에는 참외며 수박이 둥둥 떠 있었다.

말할 수 없이 풍요로운 피서였다. 야외에 나가 고기 구워 먹는데 익숙하지 않은 우리 가족도 조용한 곳을 찾아 준비해 간 김밥과 음료수를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풍겨오던 고기냄새가 다소 역겹던 기억이 난다.

때로는 평은 물가에 가서 오후 한나절 아이들 물놀이를 시키고 해 저물 무렵 돌아오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이때 처음 본 영주 사람들의 더위 피하기가 무척 인상 깊었다. 뙤약볕을 피해 물가로 차일을 친 사람들도 혹 있지만 대부분은 다리 밑에다 자리를 깔아놓고 진을 친다.

여러 가족이 가거나 친척이 함께한 경우는 자리에 노인들을 모셔놓고, 젊은이들은 솥을 걸어놓고 밥을 짓거나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이고, 직장에서 함께 나온 사람들은 보신탕도 끓인다.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거나 모래사장에서 공도 찬다. 어딜 가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함께 즐기는 일이 중요한 피서로 보였다. 한 세대 전 고향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우리도 그해 딱 한 번 희방사 초소 아래 다리 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데 초대받아 간 일이 있다.

처음에는 그리로 내려가기가 영 내키지 않더니, 내려가 본 즉 맑고 시원한 물에 연신 땀을 씻어가며, 고기 먹는 맛이 가히 일품이었다.

가끔 머리 위로 차량이 통과할 때의 그 굉음에 약간의 긴장감까지 양념으로 쳐 가며, 다리 밑 피서의 진수를 맛보았다.

영주 사람들은 여름나기 좋다.
하늘이 베풀어준 명산 소백산과 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계곡들이 어딜 가든 지친 심신을 쉬게 해 준다.

희방계곡의 폭포소리와 죽계계곡의 밤을 수놓던 반딧불이, 아직은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정안동계곡-사실 이 계곡만큼 소와 폭포가 많이 숨겨진 계곡은 소백산 인근에서는 본 일이 없다-과, 작년에 물어물어 겨우 찾아간 풍기 옥동의 십리반석 등은 멀리 가지 않고도 가족과 함께 하루를 보내기에 족한 곳이다.

부모는 엎드려 책을 읽고,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보내는 가족의 모습을 본 일도 기억에 남는다.

해거름에 가장이 퇴근을 하면 식은밥과 반찬을 되는 대로 싸서 싣고 이 계곡들 입구 주차장에 가서 -이렇게 하면 입장료를 낼 필요가 없다- 자리를 펴 놓고 저녁을 먹은 뒤, 더위가 가시는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돌아온다는 가족도 있다.

이 무더운 여름 한가운데를 지나며, 풍기 인조를 마름질해 입고 살갗에 닿는 시원한 감촉을 즐기고, 더위를 피하러 몇 시간 더위 속에 운전해 바닷가로 가고오고 하느니 계곡물에 발 담그고 책을 읽든지, 도시에서 내려온 친척 아이들 데리고 문화재 관람 시킨 후 해거름이면 주먹밥이라도 싸 들고 가는 다리 밑 피서 또한 즐거운 일이다.

다만 더위 피하기에 있어 주변 사람들 눈살 찌푸리게 하는 고기 구워먹는 일이 사라져가고 있어 반가운 일이다.

(황영순.풍기중 교사)
[시민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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