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식(소설가)

영주시가 제53회 제헌절을 맞아 사흘간 국기를 게양했다.
TV 뉴스를 들은 이튿날 아침 일찍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을 때, 집앞을 지나가는 젊은이 둘이 "씨발 법도 없는 나라에 태극기는 X할라고 다나" 거리낌없이 지껄이며 지나갔다. 또 초등학교 6학년 손녀가 "7월17일이 무슨 날이에요? 우리반 아이들 중 제헌절을 모르는 애들이 많고요. 또 어른들이 우리 나라는 무법천지라 말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했다.

내 자신이 우리 나라는 "법은 있어도 강자의 것일 뿐, 약자의 법은 아니란" 생각을 하며 살아온 터다. 손녀와 청년 노령의 나, 3대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온 셈이다. 국민이 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 나라 장래는 어떻게 되나 하는 문제다.

광복 55돌, 세월이 흘렀다. 눈물로 각인된 통한의 세월, 동족상잔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민족의 가슴에 못을 박고 피를 흘리며 죽었던가. 누구를 위하여 50여년 세월을 총을 들고 서 있는가. 형제끼리 가슴에 총을 들고 서 있어야 하는가.

공산주의는 큰 이념이 유물론이었기에 인간 존중이 되지 못하고 쓰러져 가고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이기주의에 근원하기 때문에 또한 돈을 기본으로 하는 물신주의에 빠져 인간을 존중하지 못하고 있으니, 인간 존중이 안되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돈을 인간 기본으로 하는 사회, 돈이 모든 가치 기준의 꼭대기에 있는 이상, 도덕도 종교도 교육도 존재하지 않는다. 돈이 신의 자리에 있는 한 모든 종교와 교육은 의미를 잃고, 전쟁은 그칠 날이 없고 범죄 사회는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 나라는 인간은 사라지고 기계(신호등)만 남아 사람을 다스린다. 정보통신이 세계1위라고 온통 핸드폰 천지다. 이것이 우리 실정에 정당하게 맞는 것일까?

일제 식민지, 미국이 가져다준 남북이 성립된 우리 나라가 후기 산업 사회에 진입한 후, 자본주의의 국제 구조 하의 사회현상과 가족이라는 사회집단의 관계, 그 가족이 무너져 가고 있다. 축하할 여성부 탄생과 남녀고용평등법, 남녀차별금지법 등 여성지위향상을 위한 제도 마련에도 불구하고 극빈층 여성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어머니가 아이를 맡고 양육 부담까지 하는 경우가 많은 여성 가장과 부자(父子)가정이 매년19%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족사의 새로운 모형이다. 아내가 집을 나간다. 이 같은 가족 해체는 이념 때문도 아니고 가족의 갈등 때문도 아니고 수난의 민족 때문도 아니다. 다만 경제문제, 돈 때문이다.

우리의 행복은 가정중심이고 가정이 근원이다. 가정중심은 가부장제도인 아버지다. 그 아버지가 역사적 폭력으로 일본 징병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만주 벌판에서 죽고, 미국에 의한 분단의 빨갱이로 죽었다. 가족관계의 희생된 아버지 없음이 문제로 제기된다.

그렇다면 아버지 없음의 무의식적 불안과 그 극복의 내적 동기는 회복될 수 없는 결핍인가. 아버지 없는 자식이 가족 안에서 자라면서 가족을 돌보는 아버지의 상징적 귀환, 또는 스스로 아버지가 되는 오이디프스적 동일시로 인간 존재의 정체성에 귀착한다.

지금의 우리는 그렇게 아버지(50대)가 되기 위해 얻은 직장이 하루아침에 퇴출이란 이름으로 쫓겨난다.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실직, 자녀들과의 대화는 오래 전에 단절되고, 부부 관계는 불가능하고, 얼토당토않은 고혈압, 당뇨, 관절염 등이 발병하면서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다른 경우는 목숨이 살아남기 위해 비도덕적이고 배신, 비겁, 매춘, 사기, 협잡을 예사로 자행하는 인간사회의 아름답지 않은 행위를 자행한다. 그런 사회는 축복으로 태어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욕정의 찌꺼기로 남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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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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