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북쪽 강원도 지방은 소나무 원목의 운송에 어려움이 많아 개발이 늦었고, 남쪽에는 정감록 비결의 한국 십승지 중의 한 곳으로 손꼽히고 예로부터 삼재 불입지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태백산 사고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한 경상북도 봉화군의 춘양면과 소천면을 중심으로 낙동강을 이용한 뗏목이 용이하여 개발이 시작되었다 한다.

당시 육로가 개발되기 전이라 낙동강 상류에서 벌채된 춘양목은 안동지방 및 평야지대로 공급되어 전국적으로 공급되었다 한다.

나라의 관리들이나 삼림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춘양목을 개발하기 위하여 이곳 태백산 근처인 소천면 쪽으로 모여들었는데 그곳이 춘양이었으니 그들의 입을 통하고, 또 적송이 춘양으로 집산된 관계로 『춘양목』으로 이름하게 되었다 한다.

이 태백산 주위에는 일본시대까지만 하여도 춘양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으나, 2차 세계대전 때 군용으로 쓰이면서 대량 벌채로 수난을 당하게 되고 울창하던 삼림은 점차 황폐화되고 해방이 되면서 자유화의 물결과 함께 얼마 남지 않았던 춘양목을 마구 베어내 온통 벌거숭이산으로 만들었다.

현재는 봉화군내 춘양목은 춘양면과 소천면 및 석포면의 일부 지역과 울진군 서면의 일부지역에서 일부 남아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로부터 송, 죽, 매 또는 송죽이라 해서 소나무의 아름다움을 극찬하고 있다. 강인재의 '화목구품'이란 책에는 꽃·나무를 등급화 함에 있어 일품에 소나무, 대나무, 연, 국화를 꼽았다. '화암'이란 책에는 나무 등을 9등급으로 분류함에 있어 1등에 소나무, 국화, 연, 대나무순으로 적고 있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에는 신라시대 선인 술랑 등은 "바람이 불면 솔밭은 거문고를 타는 소리로 변하고 달이 뜨면 솔밭에 황금 모래알을 뿌려 놓은 것 같다."고 한 표현은 소나무 숲의 풍치를 극찬한 것인데 이러한 심성이 우리 민족의 성격을 만들어 갔기에 우리나라 백성은 평화를 좋아했고 속기가 없는 깨끗한 정신 환경을 숭상하게 된 것이라 했다.

그런데 봉화군 전체 면적 1,201㎢의 83%를 임야가 차지하고 있고 군민들은 대대로 소나무와 함께 애환을 같이하며 살아왔기에 군의 나무를 춘양목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봉화군의 발길 닿는 곳마다에는 소나무와 유래된 아름답고 향토색 짙은 지명들이 고을마다 숱하게 남아 이와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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