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일상을 풍기인견으로 가득 채우며 살다

영주문화원은 ‘풍기인견, 실향민의 절실함이 지어낸 선물’이라는 주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고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추진하는 ‘2023 디지털 생활사 아카이빙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역의 가치 있는 이야기를 주민들의 생애사를 통해 알아보고 이를 기록해 의미 있는 자료로 활용, 홍보하기 위함이다. 이에 본지는 영주문화원과 공동으로 풍기인견의 다양한 분야에서 생업과 경제활동을 하는 전현직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직접 제직, 새로운 원단 개발에 노력

인견으로 청바지 만들어 전국 화제도

홍승애 대표
홍승애 대표
'홍승애 풍기인견' 판매점
표서우 생활기록가와 함께
표서우 생활기록가와 함께

“평생을 풍기인견으로 옷만 만들며 살았어요. 남편이 새로운 원단을 개발할 때 눈이 반짝반짝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멋지고 자랑스러워요. 그런 모습을 보면 저도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데에 더 심혈을 기울이게 되죠. 하루를 인견으로 시작해 인견으로 끝냅니다”

‘홍승애 풍기인견’을 운영 중인 홍승애(62) 대표는 생활사 기록가와의 구술 면담 직전까지도 고객에게 인견 옷을 설명하고 추천하느라 바쁜 모습을 보였다. 꼼꼼한 설명과 친절한 응대는 홍 대표가 얼마나 인견 매장 운영에 진심인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소개하고 싶은 옷이 너무 많아 어쩔 줄 몰라 하는 홍 대표의 모습에서 제품에 대한 자신감을 볼 수 있었다.

풍기에서 태어난 홍 대표는 단 한 번도 풍기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풍기 토박이다. 제직 공장을 하는 남편을 만나 인견을 접하게 되고, 사업이 인력난과 화학섬유의 대중화로 주춤하는 시점에 인견으로 옷을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려워진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대책이었다.

홍 대표는 직접 제직하는 남편과 함께 사업을 하며 새로운 원단을 개발한다는 강점을 내세우고 있다. 풍기에서 가장 먼저 시폰 원단을 개발하는가 하면, 인견으로 청바지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골프복 분야까지 진출하여 인견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에 힘쓰고 있다.

공동대표인 남편과 함께
공동대표인 남편과 함께
제직공장을 하던 남편을 만나 인견으로 옷을 만들어 배우던 시절 모습
제직공장을 하던 남편을 만나 인견으로 옷을 만들어 배우던 시절 모습

우직하고 성실함 돋보인 학창 시절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유독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꺼낸 홍 대표는 아버지에 대해 “날마다 빠짐없이 기록하고, 자식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며, 5남매 중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분”이라고 했다. 또 “형제들과 한 이불을 덮고 사과를 먹으며 만화책을 보던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차분하고 성실한 학생으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취직을 위해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배움에 욕심이 많아 2년제 대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졸업 후 바로 한국방송통신대학에 다시 진학할 만큼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것에 진심인 듯했다. “제가 지금 이 일을 할 줄 알았더라면 패션디자인과에 진학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라며 다시 한번 배움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혼, 풍기인견과의 첫 만남

아버지의 소개로 홍 대표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홍승애 풍기인견’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남편의 집안은 제직 공장을 운영했는데, 운영이 어려워지자 제직 이외의 다른 방법을 고심했다. 남편이 홍 대표에게 원단만 팔 것이 아니라 옷을 제작해 제품을 생산하자고 제안했고, 홍 대표는 곧장 영주 여성회관에서 열리는 홈패션 교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봉제를 다시 배우고, 나중엔 패션 학원에 들어가 아예 과외까지 받으며 빠르게 디자인을 배워 나갔다. 동양대에서 개최하는 재취업 교육도 수강했다. 옷을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공부해 나간 것이다. 어릴 적부터 품었던 배움에 대한 홍 대표의 우직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옷을 만들어 팔면서도 옷을 계속 배웠다.

이런 노력에 홍 대표의 매장은 점점 커졌다. 남편은 그때 당시만 해도 함께 일하는 것이 아닌 축산업에 종사 중이었는데, 홍 대표의 요청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함께 인견 사업에 뛰어들었다. 남편은 그때부터 새로운 원단을 개발하는 것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남편이 개발한 새로운 원단과 홍 대표의 꼼꼼한 디자인의 시너지효과는 굉장했다.

인견사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

홍 대표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축 가공 데이터를 쌓는 일이었다. 인견은 세탁하면 줄어들어 치수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열악했던 인견 사업 현황의 실태였는데, 고객에게 옷을 세탁하면 얼마큼 줄어드는지조차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려 만든 제품을 미리 세탁하고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축 가공에 관한 데이터를 쌓았다.

홍 대표는 매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신뢰라고 했다. 고객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없었던 인견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무수히 노력했다.

“남편이 매장에도 걸어놨어요. ‘선우후익(先右後益)’. 올바름을 먼저 생각하고, 후에 이익을 생각해라. 남편과 여기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익만 좇으면 오래가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소비자한테 신뢰를 얻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인견의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

홍 대표의 매장은 풍기에서 최초로 인견으로 시폰 원단을 만들었을 만큼 새로운 원단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인견으로 타올 재질을 만들어 의류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기도 하고,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한 청바지를 인견으로 만들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청바지는 매장의 인기 상품이다.

남편이 원단을 개발하면서 나오는 눈빛을 설명할 때, 홍 대표의 표정에서 사뭇 따뜻함과 자랑스러움이 묻어나왔다. 홍 대표는 남편을 따라 골프를 시작하면서 골프복을 만드는 것에도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는데, 직접 만들어 입고 운동을 해보며 장단점을 몸소 느꼈다. 그렇게 만든 인견의 뛰어난 발수성과 몸에 알맞게 붙는 디자인으로 고객의 마음을 잡았다.

여기에 머물지 않는 홍 대표는 속옷이나 이불은 물론, 두건이나 액세서리까지 인견으로 모두 만들어 판매하며 인견의 한계를 계속해서 깨고 있다. 본인의 이름을 건 패션쇼를 개최하고, 해외 패션쇼에도 참여하는 등 디자이너로서의 활동도 놓치지 않았다. 홍 대표는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한 후에는 잠들 때까지 온종일 인견 생각만 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다른 관심거리가 없어 인견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홍 대표 가족사진
홍 대표 가족사진

풍기인견으로 가업을 형성

현재 홍 대표의 두 아들도 풍기인견 사업에 뛰어들었다. 전국의 각 대리점을 관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쉽고 편리한 사업 운영이 가능해졌다. 홍 대표는 가업을 잇는 것을 원했고, 마침 두 아들 모두 가업을 잇는 것에 긍정적이어서 이제는 가족이 모두 풍기인견 사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쉼 없이 달려왔지만, 지친 적은 없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니 긴장하며 인견을 대했습니다. 몸이 건강했던 것도 한몫하지만, 새로운 원단과 아이디어로 지루할 틈이 없어요”

홍 대표는 언젠가는 남편처럼 두 아들이 원단 개발과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사업을 본격적으로 물려받길 원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브랜드에 애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면담자: 생활기록가 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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