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풍기인견 관련 생업으로 삶을 개척해 가다

영주문화원은 ‘풍기인견, 실향민의 절실함이 지어낸 선물’이라는 주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고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추진하는 ‘2023 디지털 생활사 아카이빙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역의 가치 있는 이야기를 주민들의 생애사를 통해 알아보고 이를 기록해 의미 있는 자료로 활용, 홍보하기 위함이다. 이에 본지는 영주문화원과 공동으로 풍기인견의 다양한 분야에서 생업과 경제활동을 하는 전현직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결혼 전부터 재단 배워 옷 제작

풍기 정착해 인견 관련 일 시작

“제가 가장 행복한 건 가족, 식구들이 앉아서 함께 밥 먹잖아요. 이야기도 하고 같이 놀러 가는 게 제일 행복한 거예요”

베트남 하우장성이 고향인 이진주(40)씨는 경찰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국제결혼을 통해 지금의 남편을 만나 2006년 한국으로 온 뒤 귀화한 결혼이주여성이다. 한국에 온 지 17년이 지난 지금 풍기인견 관련 생업으로 누구보다 씩씩하게 한국인으로서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용기 있는 여성이자 어머니이다.

베트남서 직업은 재단사

특산물이 많은 베트남 하우장성에서 나고 자란 진주씨는 한국에 오기 전 베트남에서의 직업이 재단사였다.

17세 때부터 공방에서 미싱을 배웠고 주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남자 남방이나 바지, 손님과 원단을 보고 재단해 제작했다. 원단을 사고 시공하면 비싸니 배워서 만들어 본 것이 시작이었다. 공방에서 재단을 배우며 몇 년을 같이했고 집 한켠에 미싱을 두고 작업하다 아버지가 새로운 공간을 크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작업실을 두고 손님이 옷감을 사서 주문하러 오면 그때그때 받아서 제작했다. 보통 하루에 남방은 2장, 바지는 1장 정도 만들었다. 24세까지 옷을 만든 진주씨는 결혼 전 베트남 가족의 옷을 만들었으며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의 바지를 만들었고 아이들 이불과 원피스도 만들고 있다.

결혼 후 풍기에 정착

2006년 결혼한 진주씨는 남편의 항상 웃는 얼굴과 착하고 자상한 모습이 좋았다고 한다. 베트남어를 배워 온 남편, 그리고 결혼 전에 한국어를 조금씩 배운 진주씨는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알아갔다. 풍기에 정착한 후에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두 딸을 낳았다. 첫째는 시어머니가 미역국을, 둘째는 친정어머니가 베트남 음식을 많이 해줘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진주씨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서 ‘좋은 건 배우고, 좋지 않은 건 버리라’는 말을 따라 하다 보니 고부간에 갈등도 없이 4년을 지냈다. 이후 시어머니는 치매로 인해 요양원에서 10년을 생활하다 돌아가셨다. 2010년 한국으로 귀화한 진주씨는 귀화 전 이름인 ‘누엔티디엠’에서 ‘이진주’로 바꾸며 베트남 국적을 포기했다.

한국문화 적응기

제사상을 직접 만들었던 진주씨는 베트남이 낮에 제사를 지내고 지인이나 동네 사람들을 불러 함께 나눈다면, 한국은 밤에 지내고 가족들이 함께하는 데 차이가 있다고 했다. 제사 음식을 만들 때도 워낙 요리를 좋아해 음식을 만드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고.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만해도 가끔 전화로 목소리를 들으며 그리움을 달랬으나 이제는 영상 통화나 친정집에 설치된 CCTV를 핸드폰으로 언제든지 보면서 마음을 달랜다고 했다.

“지금은 농작물도 직접 심어 먹어요. 1년 동안 먹을 것을 심는데 남편도 도와주고 올해는 남동생이 와서 또 많이 해줬어요. 처음에 시어머니께 배웠는데 지금은 제가 심는 거 좋아해요. 여름 동안은 야채 안 사 먹어요”

진주씨는 집에서 하던 한국어 공부를 영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가서 공부하면서 많은 친구를 사귀고 요리와 예절 등의 한국문화를 배워갔으며,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 데도 도움을 받았다. 처음에는 낯설고 만들기도 어려웠던 음식들이 이제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는 물론 가장 잘하는 음식이 갈비찜일 정도로 한국 음식이 익숙해졌다.

진주씨는 새로 정착한 이주여성들에게 도움도 주었다. 그들이 익숙하지 않은 한국문화와 생활에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통역해 한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또 처음 5쌍의 베트남 부부로 시작된 모임은 30명을 넘어 이제는 필리핀, 중국, 몽골, 일본, 태국 등 말 그대로 다문화 모임으로 이어져 서로 교류하며 결혼 생활이나 육아 정보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새마을부녀회와 2021년에는 풍기여성의용소방대에 가입해 봉사활동과 안전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배우며 직장생활 이어가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긴 진주씨는 일을 시작했다. 풍기에서의 첫 직장은 영주 ‘들풀’에서 계란을 통에 담는 작업이었다. 당시 서툰 한국말도 먼저 근무한 베트남 친구가 통역해줘 힘들지는 않았다. 첫 월급을 받아 진주씨는 남편에게 양복 한 벌을 사줬고 요양원에 계신 시어머니께는 맛있는 음식을 사드렸다. 그러나 둘째 아이를 가지며 한 달 만에 일을 그만두게 됐다.

2011년 당시 진주씨가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주여성들은 풍기인견 생산 공장에서 인견 실 묶는 일을 했다. 다문화 여성 교육으로 캄보디아, 중국, 필리핀 등 20명 정도 한 달간 교육을 받고 6개월 풍기지역 직물업계 인턴사원으로 일을 한 후에도 잘하게 되면 직원으로 일할 수 있다. 이때 진주씨도 교육을 받았지만, 아이가 아파 일을 할 수 없었다. 당시 교육을 받고 일을 시작해 10년 넘게 직장을 다닌 사람들도 있었다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의 인연

진주씨와 영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의 인연은 2008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처음 한국문화를 알아가는데도 센터를 통해 여러 곳을 다니고 체험도 하면서 많은 것을 알아갔다. 이후 센터에서 근무했던 진주씨는 교육과 행사 도우미 역할을 하며 교육 후 남은 원단이 있으면 파우치, 열쇠고리를 만들어 행사가 열릴 때 판매도 했다. 센터의 지원으로 코코패션 디자인학원에서 재단을 배울 수 있었다.

‘풍기인견’을 알아가다

영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연계로 남옥선 대표를 소개받아 2013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진주씨는 미싱을 담당해 옷이나 바지, 스카프를 만들었다. 당시 다른 이주여성들은 주로 인견공장에서 일하며 실을 묶고 끼우는 일을 했고, 개인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진주씨뿐이었다. 남옥선 웰빙갤러리에서 일하기 전까지 몰랐던 풍기인견은 처음에는 조금 거칠거칠한 느낌이 있지만 입으면 시원하고 좋았다.

잠시 웰빙갤러리를 떠나 7개월 동안은 인견이불 판매장에서 일하게 된 진주씨는 홈쇼핑에 나가는 제품으로 원단을 재단해 가져오면 미싱작업을 해 이불을 만들었다. 그해 10월 웰빙갤러리에 다시 들어간 진주씨는 정직원으로 입사해 남옥선 대표의 배려로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었다고 했다.

천연염색을 배우다

진주씨는 천연염색을 하는 것을 돕다 지난해부터 염색하는 방법도 배웠다. 매장 옆 인견천연염색 체험장에서 근무도 하면서 원단을 말리고 빨고 말린 후 감물을 말려 염색하는 등의 과정을 하고 있다. 천연염색 체험이 있는 시간에 맞춰 염료를 준비하고 무늬를 내기위해 천을 묶어 모양낸 후 남 대표가 천연염색에 대한 과정을 설명하면 염색하는 것을 돕는다.

“천연염색에 사용되는 메리골드는 4월에 모종준비해서 5월에 심고 6월말, 7월에 꽃을 따서 건조기에 말려 보관해요. 메리골드가 샛노란색이 나오면 양파에는 조금 진노란색이 나와요. 염색할 때는 몇시간 끓여 염료가 물이 나오면 담갔다가 15~20분에 명반을 넣어요. 100% 손으로 다하죠”

진주씨는 다양한 색의 염료를 만들기 위해 남 대표를 비롯한 동료들과 직접 심고 키우는 것을 함께하며 색깔이 잘 나오는지 비교해 보기도 했다. 천연 염색은 모두 손으로 해서 힘들지만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김태연 생활사 기록가와 함께 촬영하다
김태연 생활사 기록가와 함께 촬영하다

다방면으로 역할 톡톡

지난해는 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에서 패션쇼로 천연염색 전통한복 총 70벌이 무대에 올랐고 다음 날은 선비세상에서 패션쇼와 3일동안 한복 인형 전시회가 열렸다. 그때는 매장을 닫고 전 직원이 함께 참여해 바쁜 시간을 보냈고 선비세상에는 진주씨가 3일 동안 전시장에서 보냈다.

이제는 미싱 외에도 진주씨는 재단, 염색, 판매, 체험장 업무 등 처음부터 끝까지 매장의 많은 일을 알고 맡아 다방면으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6년에는 패션쇼를 위해 남 대표와 베트남 호치민을 함께 방문해 통역과 판매를 병행했다. 또 2018년 풍기인견 서울 페스티벌에서도 현장판매로 수익을 올리고 호치민 대한민국우수상품전 등에도 함께 참여했다.

진주씨는 2019년부터는 웰빌갤러리에서 미싱이 아닌 귀농·귀촌 창업교육에 함께하면서 보다 많은 것을 배우며 즐거움을 찾아가고 있다. 이진주씨는 “앞으로도 풍기에 거주하면서 풍기인견 관련 일을 하고 싶다”며 “식물을 가꾸며 가족들과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활하고 싶은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정리 김태연 생활사 기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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