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인견 발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다

올해 영주문화원은 ‘풍기인견, 실향민의 절실함이 지어낸 선물’이라는 주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고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추진하는 ‘2023 디지털 생활사 아카이빙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역의 가치 있는 이야기를 주민들의 생애사를 통해 알아보고 이를 기록해 의미 있는 자료로 활용, 홍보하기 위함이다. 이에 본지는 영주문화원과 공동으로 풍기인견의 다양한 분야에서 생업과 경제활동을 하는 전현직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풍기인견의 성장기와 쇠퇴기 거쳐 현재까지 함께해

인견은 화섬에 비해 시간이 지나면 더 시원함 느껴

고급화와 우수성 홍보해 나가며 옛 명성 다시 회복

송세영 루디아대표
송세영 '루디아' 대표

“풍기인견은 내 삶의 전부였지요. 수직기부터 시작해서 동력직기, 워터직기를 거쳐 에어직기에 이르기까지 인견과 화섬의 제직을 주도하면서 60여 년을 풍기인견의 중심에 서서 보낸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갑니다. 풍기인견의 성장기부터 쇠퇴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련없이 달려온 시간들 속에 나와 내 가족의 삶이 오롯이 녹아 있다고나 할까요”

평안남도 덕천에서 태어난 송세영 ㈜루디아 대표(80)는 풍기에 정착한 인견업 2세대이다. 군대를 제대하고 직기 부속품을 파는 가게의 일을 도와주면서 인견업에 첫발을 딛은 이래 풍기지역에서 ‘삼용화섬’과 ‘루디아’라는 두 개의 회사를 운영하기까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적인 삶을 살아오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 내 어려움이 있는 곳마다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으며, 신실한 기독교 생활로 남을 위한 베품을 손수 실천해 오고 있는 풍기지역의 작은 거인이자 직물업계의 산증인이다.

출생부터 청소년기까지의 생활

송 대표의 부모님은 북한에서 풍기로 이주해 왔다. 당시 출산을 하려면 친정에 가서 아이를 낳는 것이 관례여서 어머니는 친정인 평안남도 덕천군으로 다시 들어가 송 대표를 낳아 한 달 만에 풍기로 왔다. 이에 송 대표의 출생지는 덕천군으로 돼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놀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옛날 살았던 집의 바로 옆 교회 마당에서 놀았다고 한다. 송 대표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진돌이라는 야구 형제와 공을 가지고 놀다가 교회 사택 유리창을 여러 번 깼는데, 목사님이 쫓아 나와 ‘요놈들아’하면 도망가다가 다시 또 그 마당에서 놀았던 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며 미소지었다.

송 대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풍기에서 다녔으나 고등학교는 대구에 있는 경북공업고등학교를 나왔다. 그 당시 경북공고에 3개 과가 있었는데 기계과, 방직과, 화학과 중에서 방직과를 선택한 걸 보면 어릴 때부터 편직에 종사하게 될 것을 예견한 것 같다고 했다.

군대생활은 대구훈련소에 입대해 공병학교 전기과 주특기를 받아서 전주를 타는 걸 배웠다. 이후 영등포 노량진에 있는 810공병정비대에 소속돼 발전기, 구레이다, 도쟈 등 특수장비를 수선하기 위해 운반하는 일을 했다.

삼용화섬과 루디아 그리고 풍기인견

1978년 삼용화섬을 개업해 워터제트 직기 40대를 놨다. 그랬더니 주위에서는 그동안 좀 벌어놓은 돈을 한꺼번에 다 까먹는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이유는 워터제트 직기 1대면 일반 셔틀 체인지 기계에 비해 4배 이상을 제직할 수 있으니 160대 기계를 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어 물량을 그만큼 댈 수가 없다는 것에서다.

그러나 송 대표는 당시 풍기나 대구에서 임직을 많이 짜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물량 소화를 시켰다. 전성기에는 150대까지 늘어나 풍기에서 경봉직물과 함께 직물업계의 선두주자로 발돋음했다.

당시 풍기의 상황을 전한 송 대표는 “풍기에는 178개 직조공장이 있었다”며 “종사자 수는 3천명 정도로 풍기와 봉화, 예천, 단양 등지에서 여공들이 풍기 직조공장에 와서 직공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1999년 ‘루디아’라는 공장을 설립한 송 대표는 에어제트 직기 54대를 도입했다. 에어제트는 콤프레샤로 바람을 일으켜 에어로 원사를 날려서 짜는 데 주로 인견, 면, 기타 좀 어려운 직물들을 제직하고, 삼용화섬에서는 워터제트로 화섬지 등을 제직했다. 당시 삼용화섬과 루디아에는 직원이 120명 정도가 근무했다고 하니 풍기읍 지역에서는 가장 큰 규모였다.

풍기직물조합장과 풍기인견발전협의회장으로

송 대표는 루디아 설립 당시부터 6년 정도 풍기직물조합장을 맡았다. 조합에서 하는 일은 주로 직조공장들의 부가가치세 신고를 대행해 주고, 인견사를 구입해 공장에 판매하는 일을 했다. 당시 그는 대구경북견직물조합에 이사도 겸했는데 이 시기가 대체적으로 풍기인견이 전국적인 소문이 나서 판매가 잘 된 때였다고 했다.

대구경북견직물조합에 이사로 있을 때는 이사회를 통상 아침 7시에 열기 때문에 이른 아침 5시에 출발해야 하는데 겨울에는 캄캄해 이동이 힘들었다고 한다. 이에 조합에 풍기지역에 이사를 1명을 더 증원해 달라고 요청해 2명이 되었는데 다음 회의부터는 함께 이동해 훨씬 다니기 수월했다고 회상했다.

“그 때 대구경북조합에 업체가 한 600개 정도 가입돼 있었어요. 이사가 24명이었는데 풍기인견발전협의회장으로 재임시에 ‘풍기인견’이라는 지리적 단체표장 등록을 특허청에 해서 인가를 받은 기억이 납니다”

당시 TV홈쇼핑에 풍기인견발전협의회 회원은 ‘풍기인견’이라는 텍을 붙여서 판매하는 걸 못하게 했었다고 한다. 이유는 풍기에 판매장을 가지고 있는 회원들이 많아 혹시나 홈쇼핑에 판매하게 되면 풍기 매장의 인견 판매에 손실이 우려돼 판매를 금지한 것이다. 그런데 회원 간에 일부 갈등이 있어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고 했다.

베트남에 인견공장 건립의 꿈

송 대표는 베트남에 인견공장을 건립할 계획이었던 후일담도 전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재임 당시 G-7회의를 베트남에서 하게 됐는데 동남아 7개국을 묶어가지고 1차적으로 베트남에 공장을 하면서 생산한 의류를 외국으로 수출하게 되면 관세를 면제해 주는 제도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송 대표는 베트남에 공장을 짓기 위해 땅을 봤는데 당시 이랜드에서 가진 8천평짜리 네모난 땅이 있어 사들이려고 했다. 흥정을 다 하고 나서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에서 생산한 의류를 외국으로 수출시 관세를 면제해 주는 제도를 성사시키면 들어가려고 했으나 성사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그게 성사됐으면 베트남에서 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 수출하게 되어 판매가의 20~30%의 관세가 면제돼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가 될 뻔했지만 이뤄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무엇보다 관세가 면제되더라도 직물공장만 나가서 될 일이 아니고 싸이징 공장도 함께 가야 하고, 염색 가공을 하는 시설까지 다 갖춰야하기 때문에 초기 자본이 엄청나게 들어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공장 내부
공장 내부

풍기에서의 신실한 믿음생활

풍기인견에 열정을 다해온 송 대표는 성내교회 장로로 재임하면서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해왔다. 그는 이웃을 위한 봉사자로서 역할을 해오며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면서 성내교회가 풍기지역에서 이웃을 섬기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데 많은 힘을 보탰다.

송 대표는 아내인 김학란씨에 대해서도 “풍기 성내교회의 장로직에서 은퇴했으나 장로로 시무할 때는 봉사자로 많은 역할을 해왔다”면서 “영주노회 여전도회 회장과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부회장으로 다년간 재임하고 옥합선교회 이사장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고 말했다.

각종 수상과 앞으로의 인견산업 전망

송 대표는 2002년 영주시민대상 ‘지역경제 활성화’ 부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 2012년에는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주최한 ‘제26회 섬유의 날 행사’에서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냉감성이 인견보다 뛰어나다는 화학섬유가 나와서 인견의 판매가 다소 부진했는데 냉감 화섬과 인견을 만져보면 시원한 촉감이 처음 3~5분 정도는 냉감 화섬이 더 시원한데 그 시간이 지나면 화섬에 비해 인견이 더 시원해요”

풍기인견에 대한 우수성을 전한 송 대표는 “앞으로 풍기인견이 TV홈쇼핑 등에서 ‘풍기인견’ 브랜드로 활발하게 판매되고 좀 더 풍기인견을 고급화하고 우수성을 홍보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옛 명성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리 박근택 생활사기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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