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재인 풍기인견, ‘젊고 새로운 희망의 미래’를 보다

올해 영주문화원은 ‘풍기인견, 실향민의 절실함이 지어낸 선물’이라는 주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고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추진하는 ‘2023 디지털 생활사 아카이빙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역의 가치 있는 이야기를 주민들의 생애사를 통해 알아보고 이를 기록해 의미 있는 자료로 활용, 홍보하기 위함이다. 이에 본지는 영주문화원과 공동으로 풍기인견의 다양한 분야에서 생업과 경제활동을 하는 전현직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풍기인견 소재, 발전 가능성 많은 아이템

지역 고유성 보호, 품질 유지·향상에 노력

이형근 산들바람 대표
이형근 산들바람 대표

“인견이 좋은 소재라는 건 이미 검증이 돼 있어요. 단지 이것을 마케팅으로 또 제품 개발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이냐가 관건인 거죠. 앞으로도 훨씬 발전할 여지가 많이 있는 아이템이니까 풍기인견을 잘 보호하고 육성해서 좋은 쪽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저희한테 주어진 책임인 것 같아요”

조부모부터 3대째 풍기인견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형근 대표는 현 산들바람의 대표이다. 또 주짓수 도복브랜드 ‘무애’의 공동대표이자 우리고장 영주에 있는 주짓수 체육관의 관장으로 무예인이기도 하다.

올해 (사)풍기인견발전협의회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풍기인견의 지역 고유성을 보호하고 인견 품질의 유지 및 향상을 위해 꾸준한 노력과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9월 13일과 18일에 걸쳐 산들바람 사무실에서 이뤄진 이 대표와의 두 차례 구술면담을 통해 풍기인견 사업의 희망적인 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유년시절, 풍기인견의 추억

1979년 풍기에서 태어난 이 대표는 어렸을 때 공장에서 들려오는 실 짜는 소리를 들으며 컸다. 인견 사업의 시작은 이북이 고향인 조부모가 풍기로 이주하고 처음부터 하지는 않았지만, 주위에 인견을 짜는 사람들을 보면서 직접 목재수직기를 제작하고 토굴을 파서 족답기 1대로 인견 짜는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점차 사업이 커지면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인해 공장을 물려받아 이어가게 됐다.

“제가 어렸을 때는 인견이라는 게 상품화가 안 됐어요. 그냥 이 동네 사람들만 인견이 시원하다는 걸 알았을 때, 그때는 나염을 찍고 염색하고 하지는 않았죠. 그러니까 하얀 생지를 공장에서 가져다가 할머니가 집에 있는 재봉틀로 드르륵 드르륵 봉제를 해서 잠옷을 만들어 입었어요. 이 동네 애들은 여름에 전부 다 그 하얀색 인견생지로 만든 나시하고 파자마, 그거 맨날 입고 다녔죠”

이 대표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서 인견에 대한 편견이 없는 아이들은 여름에 인견 잠옷과 이불을 주면 그 시원한 느낌이 좋아서 다른 것은 제쳐두고 인견이불만 찾는다며 인견의 뛰어난 냉감성에 대해 설명했다.

캐나다와 중국에서의 어학연수

아버지의 큰 그림으로 대학에서 경영학부를 들어간 이 대표는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가게 됐을 때도 영어회화를 배우는 것을 넘어 경영인이 되는 과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캐나다에서 자연과 가까이 함께하면서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을 배울 수 있었죠. 또 그들의 가치관과 생각을 이해하게 되니 나중에 사업을 하면서 외국 바이어들을 상대할 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지금도 해외에 비즈니스로 사람들을 만날 때면 한국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기보다는 약간 그들의 관점으로 자연스럽게 같이 녹아서 보게 되더라고요”

이 대표는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북경으로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그때 중국의 다양한 도시의 여행과 국경을 넘나들며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을 여행하면서 삶을 이해하고 문화가 만들어지게 된 그 배경과 과정을 배웠다.

“아주 가난하고 낙후된 환경의 마을에 가도 사람들이 되게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거예요. 그런 것을 보면서 인생도 그렇고 사업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일이 잘되면 좋겠지만 만약 잘 안되더라도 그 나름대로 괜찮다, 상황이 극도로 불행해지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것을 깨달았어요. 여행을 하며 인생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준 것 같아요”

산들바람 전경
산들바람 전경
매장 안 모습
매장 안 모습

산들바람의 시작

대학을 졸업하고 코오롱 패션에서 6년을 일하고 나니 이 대표는 직장을 떠나 자신만의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비슷한 일을 하고 있던 동생도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무애’라는 이름의 주짓수 도복브랜드를 창업했다. 하지만 워낙 주짓수에 국내시장의 인지도가 낮아 사업은 미미한 정도의 매출이 있을 뿐이었다.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했고, 마침 아버지와 고향 지인들의 권유로 풍기에 내려와 아버지의 인견 사업을 물려받기로 결심했다. 당시 풍기에서는 인견 생산을 넘어 다양한 인견 제품을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산들바람이 그런 면에서 후발주자라고 했다.

“산들바람을 시작했을 때는 업계에서 후발주자였기 때문에 좋은 거래처가 없었어요. 이미 기존 업체들이 몇 년간 사업을 해오셨기 때문에 이미 차 있는 상황이었죠. 저희가 하려고 하면 새로 신규로 발굴해야 되는데 어떻게 발굴할지도 모르겠고, 정보도 없고, 맨땅에 헤딩하듯이 그렇게 업체를 하나씩 하나씩 알아갔던 거죠”

이 대표는 거래처와의 관계에서 신의를 저버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항상 가지고 있는 경영철학은 직원과 거래처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합리적으로 사업을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전해져 지금은 오랫동안 꾸준히 거래하고 있는 좋은 거래처가 많이 생겨났다.

공정과 정직이 경영철학

산들바람은 시즌과 비시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약 15명 정도의 직원이 함께 일하고 이 대표의 어머니가 제품 기획에서부터 매장 살림과 직원들 간식까지 꼼꼼히 살펴주고 있다. 이 대표의 아내도 매장에서 함께 일하며 사업의 파트너이자 인생의 동반자로서 많은 도움을 주고받으며 산들바람을 꾸려가고 있다.

“제가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갖고 있었던 기본적인 생각은 나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모두 이익을 가져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기업에 신뢰와 애정을 보여준 직원에게는 그만큼 보상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거래처와도 항상 공정하고 정직하게 대합니다”

그는 자신이 당하기 싫은 일은 상대방에게도 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라고 했다. 자신과 연관되는 사람들은 다 잘 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면 본인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 같이 잘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는 이 대표는 사람이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라면서 사업이 잘될 때도 겸손한 태도와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며, 평소 주짓수를 통해 꾸준히 심신을 단련하고 있다.

산들바람 인견 제품들
산들바람 인견 제품들

일본수출에 대한 계획

이 대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기후에 경제적 수준, 연령, 인구구조 등 유사한 부분이 많은 일본을 인견 수출의 미래 시장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 체형이 비슷하다고 해서 이미 나와 있는 디자인을 그대로 수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어요. 실루엣이라든가, 단정한 스타일이 있죠. 그래서 일본 쪽은 일본 디자인으로, 한국은 한국대로 뽑아야 합니다. 그중에 조금 겹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프린트부터 시작해서 모든 과정을 다 일본에 맞춰서 합니다”

아직은 수출 물량에 비해 제품생산이나 개발비가 더 많이 들지만, 미래를 위해서 이 대표는 투자를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그는 끊임없는 노력에 서서히 일본에서 좋은 반응이 오고 있다며 풍기인견의 밝은 미래를 예견했다.

“제가 생각하는 인견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이에요. 우리는 인견이라는 것의 가능성을 100% 다 개발하지 못한 거죠. 나머지를 개발하려면 더 고민하고 노력하면서 시행착오와 투자도 계속해야 시장이 더 확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견을 본 적 없던 해외 바이어들에게 소개하면 그냥 소재만 가지고 인견이 좋은 걸 확실히 느껴요. 이것은 인견이란 자체가 좋은 소재라는 것이 이미 검증됐다는 이야기죠”

풍기인견발전협의회의 역할

풍기인견발전협의회(이하 협의회)에서 10년 동안 활동해 온 이 대표는 올해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협의회의 설립 목적은 풍기인견의 명품화이다. 이를 위해 풍기인견의 상품 가치를 지키고, 상표의 가치가 훼손되거나 품질이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에 과거에는 다른 인견 사업체에서도 풍기인견의 이름을 가져다 쓰는 일이 빈번했으나, 협의회의 꾸준한 법적 대응으로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반대로 홈쇼핑에서 풍기인견이 맞는지 문의해 올 정도로 상황이 변했다.

“협의회에서는 풍기인견의 품질 유지를 위해서 해외 봉제를 할 수 없다는 규칙도 있어요. 또 제품의 풍기인견 비율이라든가, 상당히 까다로운 기준에 부합하는 제품들만 풍기인견 태그를 받을 수 있죠. 이는 협의회에서 공정한 심사로 합격한 제품들만 받을 수 있고, 회원사 업체에서도 서류를 냈다가 기준이 맞지 않으면 통과를 못해 태그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협의회와 풍기인견 업체는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업체가 개인적으로 시도하지 못하는 규모의 일은 협의회에서 맡아 협력하며 함께 발전해 가고 있다.

이형근 대표는 “협의회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인견으로 여러 가지 실험과 개발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를 앞장서서 이끌고 있다”며 “협의회는 풍기인견의 방향성을 설정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풍기인견이 업그레이드되면 그 수혜를 산들바람도 입을 수 있고, 거꾸로 산들바람이 해외 시장을 개척할 경우 풍기인견 전체에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도 있다. 상호적으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발전하는 관계”라고 말했다.

                        정리 김도레미 생활사기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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