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염색, 풍기인견에 입혀 아름다움 나누는 예술가

올해 영주문화원은 ‘풍기인견, 실향민의 절실함이 지어낸 선물’이라는 주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고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추진하는 ‘2023 디지털 생활사 아카이빙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역의 가치 있는 이야기를 주민들의 생애사를 통해 알아보고 이를 기록해 의미 있는 자료로 활용, 홍보하기 위함이다. 이에 본지는 영주문화원과 공동으로 풍기인견의 다양한 분야에서 생업과 경제활동을 하는 전현직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풍기와 풍기인견 발전에 노력하는 디자이너이자 사업가

고급스런 디자인에 제품의 가격 낮춰 소비자 부담 덜어

“작품으로만 생각했던 천연 염색을 우리 풍기인견에 접목하면 인견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인견을 천연 염색하기 시작했어요. 천연 염색을 한 인견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예술 그 자체예요”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인 인견 의류들이 매장 안에 가득하다. 그 안에서 우아함을 발하는 천연염색의 인견 옷을 입은 남옥선 소백산천연염색협회 대표가 사람들을 반긴다. 영주의 특산물인 풍기인견에 천연염색을 더해 풍기와 풍기인견 발전에 노력하는 그녀는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이다.

1963년 문수면에서 태어나 영주동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며 야간대학에 다녔다. 어린 시절부터 드러난 남다른 손재주로 꽃꽂이나 도예를 배우고 가르치기도 하면서 생계를 위해 다양한 일을 한 그녀는 디자인을 전공하게 된 딸 덕분에 천연염색에 발을 들이게 됐다.

2008년, 천연염색을 한 풍기인견 의류를 판매하는 ‘남옥선 웰빙갤러리’를 열어 본격적으로 풍기인견 디자이너가 되면서 2011년 소백산천연염색협회를 설립해 천연염색 발전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 대한민국창조문화예술대상 천연염색 부분에서 명인으로 인증을 받고, 이제는 풍기를 거대한 체험마을로 조성해 지역의 홍보와 발전을 기대하며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원이 됐다.

학창 시절부터 드러난 디자이너의 면모

영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남 대표는 어머니가 부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서 수제품에 관심이 생겼다. 손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 즐거웠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옷을 만드는 것에 푹 빠져 양장점에서 일하겠다고 떼쓰다 부모님께 혼난 기억이 디자인에 관한 욕심의 시작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즐겼다. 연극과 합창단 활동을 할 때면 늘 연출을 맡았고 손수 무대 의상과 소품을 만들었다. 그때의 영향이 지금 풍기인견으로 천연염색을 하고, 옷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고 남 대표는 회상했다. 그 외에도 요리경연대회 등에 여러 사람과 함께 참여해 진두지휘했던 학창 시절의 모습에서 지금의 사업을 이끌 수 있던 잠재력이 엿보였다.

고교 졸업 후에는 바로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취업을 먼저하고 나서야 야간대학에 들어가 행정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남 대표의 대학 생활은 중고등학교 생활과 다르지 않았다. 학보에 글을 기고하고, 축제 때면 친구와 함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외향적인 성격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렇게 모은 상금으로 불우이웃돕기도 하면서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 하고 나누는 것을 즐겼다.

학교 졸업 후, 다양한 직장생활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던 남 대표는 꽃꽂이 강의에 보조로 일을 겸했다. 그때부터 꽃꽂이에 관심이 생기고 배움에 욕심이 생겼으나 결혼을 하면서 영주를 떠나게 됐다. 이후 요식업에도 종사하고, 교육 사업에도 뛰어드는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던 그녀는 늘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다른 지역에서 고향의 특산물인 인견을 조금씩 팔다가 제대로 시작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풍기로 귀향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풍기인견 의류 판매장인 ‘남옥선 웰빙갤러리’를 열고 취미로 배우던 천연염색에 풍기인견의 장점을 접목하게 됐다. 인견이 속옷에만 한정돼 있다는 것을 알고, 인견 산업을 확장해 보고자 하는 마음에 외출복을 디자인했다.

'남옥선 웰빙갤러리' 작업실 내부
'남옥선 웰빙갤러리' 작업실 내부
천연염색 작업 중이다
천연염색 작업 중이다
'2016 풍기인삼아가씨'
'2016 풍기인삼아가씨'

풍기인견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다

첫 시작은 천연염색을 한 인견 스카프였다. 당시 대중화되지 않았던 스카프를 홍보하고 판매하기 위해 마주치는 이들의 목에 하나씩 걸어주며 인견 스카프를 알렸다. 그렇게 블라우스로 시작해 인견 디자인의 폭이 넓어졌다.

처음 천연염색을 시작할 땐 기술이 부족해 옷을 만들게 되면 봉제에서 다 찢어져 버리는 어려움이 있었다. 여러 연구 끝에 감물을 발견해 천연 염색한 원단의 단점을 보완했다.

천연염색은 자연에서 나는 재료를 색소로 만들어 끓인 후 염색하는 과정인데, 손이 많이 가고 복잡한 공정 단계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이에 남 대표는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과감하게 제품 가격을 낮춰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연염색 인견으로 입지를 다진 후에는 천연염색의 재료를 직접 재배하는 것에 관심을 쏟았다. 이미 천연염색용으로 나오는 과일이나 식물은 수확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고, 자연에서 스스로 자라고 있는 생명을 꺾는다는 것에도 불편함을 느껴 천연염색을 위한 농사를 시작했다. 사업이 커지니, 전문적으로 역할을 나눠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창업 교육과 같은 강의를 자주 열어 인재도 육성해 나갔다.

풍기인견의 고급화를 위한 노력

남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풍기인견을 고급화시켜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고자 했다. 다른 염색 의류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좀 더 많은 천연염색 재료를 찾고 또 찾았다. 풍기인견의 기능성만 보고 찾는 소비자보다는, 디자인 위주로 까다롭게 옷을 고르는 여성을 주요 소비자층으로 삼았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좀 더 힘을 쏟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제품의 가격을 낮춰 고객들의 소비 부담을 덜었다.

이 무렵부터 풍기인삼축제에서 개최하는 풍기인삼 아가씨 선발대회의 의상을 제작했다. 또 각종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중국이나 라스베이거스에서 전시회를 열고, 중국에도 대리점을 몇몇 개설했다.

남 대표는 “수출하는 인견은 국내와는 디자인이 달라야 한다”며 “수출하는 나라의 특성과 기호를 살려 국내와는 다른 제품을 내놓는다”고 말했다.

일본 후지노미야시에서 
천연염색 인견 옷을 입은 풍기인삼아가씨 단체사진
천연염색 인견 옷을 입은 풍기인삼아가씨 단체사진

풍기인견을 넘어 풍기를 디자인하다

승승장구하던 해외 활동은 급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게 됐다. 침체한 사업에 낙담하던 와중에 남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부산에서 우연히 마주친 할머니였다.

“어느 날, 부산의 할머니 한 분이 자기가 시집올 때 해왔던 삼베와 면으로 마스크를 손수 만드셔서 동사무소에 기증하시는 걸 봤어요. 그분을 보니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딱 맞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세계 최고라고 자신만만하게 자랑하던 그 못난 옷들을 들고, 전 세계를 돌던 너는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지금’ 그런 나에 대한 물음이 나오더라고요”

남 대표는 곧장 천연 염색한 인견으로 마스크를 만들었다. 사업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던 일종의 전환점이었다. 코로나19로 사업이 주춤할 때 훌쩍 떠난 일본에서 본 온천마을을 눈여겨봤던 그녀는 풍기를 하나의 체험 마을로 만들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손으로 무언가를 일구어내는 이들이 즐겁게 다양한 상품을 내놓는 단지 구성이 목표였다.

이에 풍기를 체험 마을로 만들기 위해 남 대표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귀촌인을 대상으로 창업 교실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풍기를 온천마을처럼 구성하기 위해 자신이 디자인한 것을 설명하던 그녀는 두 눈을 반짝였다. 의류를 넘어 지역을 디자인하려는 사업가의 모습으로 최종 목표는 풍기를 활성화해 홍보하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본성을 잃지 않는 남옥선 대표. 그녀는 마지막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움을 나누던 예술가는 끝까지 아름답게 초야에 묻혀 여생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조그마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천연 염색한 스카프에 손수 바느질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리 표서우 생활사기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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