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인견, 천연염색으로 자연의 색을 더하다

올해 영주문화원은 ‘풍기인견, 실향민의 절실함이 지어낸 선물’이라는 주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고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추진하는 ‘2023 디지털 생활사 아카이빙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역의 가치 있는 이야기를 주민들의 생애사를 통해 알아보고 이를 기록해 의미 있는 자료로 활용, 홍보하기 위함이다. 이에 본지는 영주문화원과 공동으로 풍기인견의 다양한 분야에서 생업과 경제활동을 하는 전현직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인생을 바꾼 천연염색, 연구자로 명인까지

풍기인견 천연염색의 다변화와 홍보 이어

“누구든 눈을 뜨면 무조건 보이는 것이 색인데 이 색을 내가 만들어내고 있어요. 천연염색! 이건 중독인 것 같아요. 작업 과정은 고되고 힘들어도 결과물이 나왔을 때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환상적일 때가 많습니다. 절대 못 하겠다 하다가도 다시 작업하게 되는 것도 내가 만드는 색이 궁금하기 때문이에요”

푸르른 쪽빛, 자연의 색으로 곱게 물든 풍기인견이 바람결에 흔들리니 파란 가을 하늘보다 더 짙다. 이처럼 고운 자연의 색을 풍기인견에 담아내는 황미애 자닮갤러리 대표는 20여 년간 풍기인견 천연염색의 다변화와 홍보를 위해 꾸준히 연구자의 길을 걸어 온 천연염색의 명인이다.

1961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단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황 대표는 영주에 정착해 직장생활을 하던 중 취미생활로 시작한 천연염색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천연염색을 공부하기 위해 전국의 유명한 전문가들을 찾아다녔고, 만학도로 대구한의대와 동 대학원을 다니면서 석·박사 학위논문을 천연염색을 주제로 썼다.

2021년에는 한국예총에서 한국문화예술명인으로 인증을 받았으며, 현재 자닮(자연염색전통문화연구소) 대표로 대구 한의대학교 산림비즈니스학과 겸임교수로 재임 중이다.

학창시절, 영주로 정착

황 대표의 어릴 적 꿈은 은행원이었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광산이 있는 시골에 살면서 가장 엘리트로 생각했던 사람이 은행원이었기 때문이다. 착하고 조용한 학생이었던 황 대표는 여름 방학에 비가 오면 공부하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단양여중고에 들어갔다. 그 무렵 국무총리가 내려올 정도의 큰 수해가 있었다.

당시 학교에서 내려다 본 지붕이 떠내려가고 소와 돼지가 떠내려가는 풍경은 아직도 황대표의 기억에 남아 있다. 라면 등 여러 종류의 생필품이나 학용품을 나눠줬는데 황 대표는 새 책을 받지는 못하고 헌책을 썼다. 그해 수해로 수학여행을 못 갔던 졸업생들은 지난해 동창회를 통해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이제 비가 오고 물난리가 나면 지금도 황 대표는 그 수해가 생각이 난다.

고등학교 졸업 후 경북전문대학교 행정실과 도서관에서 10여 년간 근무하다가 1990년도 결혼하면서 퇴직해 육아에 전념했다.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졸업한 후에는 음악, 운동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겼다.

천연염색에 빠져들다

자연을 닮은 갤러리는 2008년 문을 열었다. 이는 2005년 여러 취미생활을 접하던 중 규방공예에 원단으로 천연염색의 조각을 보고 색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천연염색을 공부하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명인, 인간문화재, 유명인 등을 만났다.

황 대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한다. ‘천연염색은 중독’이라고. 그만큼 황 대표는 다양한 자연의 색과 문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천연염색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궁금한 게 있으면 전문가들을 찾아가 염색 방법에 대해 배웠다. 천연염색에는 명주, 면, 모시, 인견, 삼베가 기본인데 황대표는 이 중에서 풍기인견을 선택했다.

경북도에서 진행하는 섬유 활성화 사업 세미나에서 황 대표는 ‘고(高)부가가치로 가려면 천연염색으로 가야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때 함께 했던 참석자들은 “대량생산이 돼야 산업화가 된다”라고 말했다. 이후 동양대학교에 사업단이 생기고 사업비를 지원받은 인견 제품이 속옷에서 겉옷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천연염색이 비싼 이유는 공정이 많이 들어가는 핸드 메이드이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천연염색을 선물 받은 사람은 사람의 기(氣)를 받은 거다”라고 말한다. 이유는 인견으로 만든 흰 생지가 들어오면 잿물을 넣고 삶아 불순물을 빼주고 시간을 두고 정련해 말린다.

그 다음에 옷감에 염료를 결합시켜 발색하도록 하는 매염제를 쓴다. 예로 봉숭아 물들일 때 백반을 한 후 봉숭아를 올리는 역할과 같다. 이렇게 1시간 이상의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지금은 많은 염색인들이 시설을 갖추고 삶는 것도 기계로 삶고, 염색도 염색 장비가 사용된다.

천연염색 배우고 가르치며

황 대표는 2015년 천연염색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대구한의대 산림비즈니스 학과에서 섬유식물학, 천연 재료학 등을 배웠다. 그해 경상북도 여성사관학교 강사로 3년간 활동했고, 한국폴리텍대학 영주캠퍼스에서 2016년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풍기인견 교육과정에 염색을 강의헸으며, 2021년부터 정식으로 천연염색학과가 생기면서 초대 학과장을 역임했다.

2016년 국내 최초로 천연염색산업연구원이 영천에 들어서면서 자닮에서 위탁 교육을 진행했고, 이때 천연염색에 대한 강의를 듣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찾아왔다.

2016년 3월에는 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그랜드 마스터이자이자 한국에 하나밖에 없는 자연염색박물관의 관장인 스승으로부터 전승 조교로 임명을 받았고, 2021년엔 한국예총 한국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로 부터 문화명인 인증을 받았다.

이렇게 배움을 이어가던 황 대표는 염색과 관련한 책을 쓰고 싶어 대구한의대 한약개발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염색에 대한 배움의 갈증을 해소하는데 산림비즈니스학과 4년, 대학원 석사·박사 4년 총 8년이 걸렸다.

석사논문은 「풋감의 천연 염료 소재화 연구」이며, 박사 논문은 「국내 자생 수목 여섯 종의 친환경 천연염색 소재화 연구」이다. 대구한의대학교 산림비즈니스학과 석사를 마친 후에는 동과에서 산림, 교육, 식물 등에 대해 강의를 맡았다.

황 대표는 천연염색과 화학염색의 차이점에 대해 “제품 제작을 위해 원단을 염색해서 보내면 화학염색 옷만 매일 만들었는데 천연염색 원단으로 옷을 만드니 눈의 피로도가 다르다는 말을 듣는 다”며 “천연염색에는 화학염색이 낼 수 없는 색깔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화학염색이 천연염색을 따라오는 거 같다”고 덧붙인다.

풍기인견과 천연염색이 식물 자연과 연관이 되어 잘 맞아 들어간다고 말하는 황 대표는 인견은 여름 실크라고 했다. 일부 사람들은 실크는 드라이도하고 고급스럽게 다루면서, 인견은 그렇지 않게 다룬다며 아쉬워한다. 그러면서 인견도, 실크도 잘 구겨지는데 다려 놓고 보면 오히려 실크보다 인견이 더 실크 같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이디어 개발과 풍기인견의 미래

2017년부터 2022년까지 황 대표는 각종 한국 전통문화 자연염색 공모전을 비롯해 각종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심사를 하면서 천연염색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며 천연염색 자체가 고급이기 때문에 일상화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황대표는 덧붙였다.

“산업연구나 수련 과정에서 집중하고 고집했던 게 인견밖에 없었다”며 “풍기인견발전협의회 이사로서의 바람을 전하자면 풍기인견에 한해서는 계속 연구를 해야 되고, 어떤 게 더 나을지 끊임없이 고민도 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어 “풍기인견발전협의회에서 새로운 원단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 여름엔 안동마하고 우리 풍기인견하고 교직해서 만든 원단으로 패션쇼도 했다. 현대인들이 좋아할만한 원단들이다”며 새로운 원단을 보고 ‘어, 이거 천연염색하면 참 좋겠네’ 하는 그런 느낌도 받았다고 한다.

앞으로도 “풍기인견에서 나오는 원단으로 끊임없이 천연염색을 연구할 계획”이라는 황 대표의 표정에는 그윽한 장인 특유의 풍모가 스쳐갔다.

                                                           정리 박근택 생활사기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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