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 장승조각가 김진식씨, 러시아에 '장승' 세우다

"대학 때 같이 학생 운동하던 친구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친구의 권유로 러시아 볼고그라드 '고려인축제'에 초청돼 장승을 세우고 왔습니다"

멀리 러시아 볼고그라드에서 소수민족으로 어려움 속에 살아가는 고려인들의 유일한 축제인 '고려인 축제' 가 지난 10월 14일 열렸다. 향토 장승 조각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김진식씨(38세)는 이 행사에서 장승을 만들어 세웠다.

“올해 축제가 5회째로 처음으로 추석상을 차리고 합동으로 차례를 지냈습니다. 한국에서 참석한 저희들도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이 고려인 축제에는 다른 소수민족들도 참가해 그들의 전통춤과 노래를 부르며 함께 어울리는 모습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현재 러시아 볼고그라드에는 많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지만 한인들처럼 축제를 여는 민족은 없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가리켜 고려인, 까레이스키라고 부른다. 국적도 다르고 60대 이하로는 대부분 우리말은 잊었지만 한눈에도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우리와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김씨는 행사에 초청받기는 했지만 전액이 자비여서 왕복항공료 등 300여 만원 이상의 적지 않은 경비가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장승을 세워달라는 제안에 러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에게 그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라는 생각에 일주일이라는 시간과 그에게 있어 적지 않은 경비를 과감히 투자(?)했다고 했다.

그는 장승을 만들기 위해 인천공항을 통해 9시간 반을 걸려 모스크바에 도착, 다시 4시간을 기다려 러시아 국내선 항공으로 갈아타고 1시간 30분이 걸려서 볼고그라드에 도착했다고 한다.

"장승에 쓸 러시아소나무 두 그루를 베어놓고 기다리는 까레이스키 집은 볼고그라드 시내에서 2시간 30분 차를 타고 더 가야 하는 거리라서 다음날 가서 나무를 가지고 와서 하루 종일 작업을 했습니다."

볼고그라드시의 한인 사무실은 아파트 건물 반 지하에 세들어 있고 사무실 내에 한글학교가 있다고-.

"교재들은 비교적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실이 너무 협소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는 고려인 문화센타 건립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제 업이 한옥을 짓는 일이라는 걸 알고 건물 지붕이라도 기와를 올려줄 수 있는지 물어왔습니다만 선뜻 대답하지 못한 제 처지가 안타까웠습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교사를 거쳐 현재 전통한옥을 짓는 '법고창신'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이번 행사 일정을 마치고 모스크바와 뻬째르부르그를 관광하고 돌아왔다.

"역사성은 없어 보였지만 웅장한 건물 규모에 입이 쩍 벌어지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모스크바나 뻬째르부르그에 100여개의 극장이 있고 월요일만 빼고는 매일 공연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극장, 박물관, 기념관 등에는 할머니들이 출입문 가까이에 쭉 서서 외투와 모자를 받아 주고 보관함 번호표를 건네 주는 풍경이 이채로웠습니다."

멀리 러시아 볼고그라드에서 우리 마을 입구에 세워 마을 수호신 역할과 이정표 역할을 하는 장승을 세우고 돌아온 김씨는 죽령장승보존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인삼축제 등에서 장승 및 솟대 만들기 체험의 지도와 지난 5월 8일 풍기읍 금계2리, 일명 장생이 마을에 장승을 세우는 등 우리 전통문화 보존에 앞장서고 있는 우리의 따뜻한 이웃이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