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구장(球場)

한국 프로 야구(KBO)가 긴 휴식기를 끝내고 이번 주말(23일) 개막경기를 갖고 시즌에 돌입한다. 야구팬들에게는 열광과 환호와 탄식의 계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그들을 더욱 설레게 하는 사건이 20, 21일 양일간에 서울의 고척 스카이돔에서 펼쳐진다.

저 어마무시한 메이저 리그의 두 팀이 올 시즌의 개막전 두 경기를 서울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LA 다저스와 샌디에고 파드리스의 유명선수들이 인천 공항으로 입국하는 사진들이 연일 매체들에 보도되면서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샌디에고에서 지난해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 우리의 김하성 선수와 다저스의 투타(投打)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이고 있는 일본 선수 오타니 쇼헤이의 대결이 특히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프로 야구가 1982년에 시작되었으니 벌써 42년을 맞고 있지만 이번에 내한해 개막전을 치르는 메이저 리그는 1903년에 정식으로 출범했으니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되는 120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 리그는 한 해에 130조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거대한 쇼 엔터테인먼트라 할 것이다. 서울에서 개막 2연전을 치르게 된 이유도 그동안 몰라보게 커진 우리나라의 시장성 때문이다.

야구는 지극히 전형적으로 미국적인 경기이다. 서부 개척 시대의 땅따먹기가 필드 위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멀리 쳐내면 아웃이 아니라 야구의 꽃인 홈런이고, 루(壘, base)를 훔치면 박수를 받고, 선수들끼리 싸움이 나면 벤치에 앉아 있던 전 선수가 모두 달려나가 싸움에 가담하는 벤치 클리어링도 경기의 일부로 여겨진다.

영화
영화

오랜 시간은 전설을 낳기 마련이다. 메이저 리그를 거쳐간 수많은 전설들의 중심에 베이브 루스가 있다. “야구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교도소나 공동묘지에 있을 것이다.” 그의 말이다. 그는 714개의 홈련을 쳤다. 어떤 기자가 홈런의 비결을 물었을 때 그가 한 대답이 이랬다.

“1,390개의 스트라이크 아웃이 있었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화려한 성과에만 열광하지만 달콤한 성공의 열매를 맛보려면 그 이상의 쓰디쓴 실패가 있어야만 한다는 얘기겠다. 그래서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재키 로빈슨은 메이저 리그의 최초의 흑인 선수였다. 그가 등장한 1947년은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절이었다. 백인 투수들은 타석에 들어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일부러 위협적인 빈볼을 던졌고 일루로 달리는 그의 발을 걸거나 걷어차기가 일쑤였다.

심판들조차 그의 수난을 눈감아 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시련에도 수위타자가 되었고 메이저 리그는 그에게 경의를 표해 그의 등번호 ‘42번’을 모든 구단의 영구(永久) 결번(缺番)으로 지정했고 명예의 전당에도 올렸다. 미국 노동자의 1/4이 직장을 잃어야 했던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소용돌이 속에서 라디오의 아나운서들은 “오늘도 위대한 디마지오(Great Dimagio)가 홈런을 칠까요?”라는 말로 뉴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음울하던 IMF 시절 박찬호가 우리에게 위안을 주었듯이 말이다.

아직까지 아무도 깨트리지 못한 ‘56게임 연속 안타’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운 조 디마지오는 세기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와 결혼했던 걸로도 유명하다. 그들의 결혼은 일 년도 못 돼 파경을 맞았지만 그녀가 죽은 후 20년 동안이나 그녀의 무덤에 시들지 않은 꽃을 바친 걸로도 유명한 순정남이기도 했다. 저 위대한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도 산티아고 노인이 소년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도 당연히 양키스가 이겼을 거야. 양키스에는 위대한 디마지오가 있으니까”

미국인들에게 야구는 꿈과 추억이다. 1989년에 나온 캐빈 코스트너 주연의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은 아이오아의 한 농부가 자신의 옥수수밭을 갈아엎고 야구장을 만들어 가족애와 꿈을 실현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의 꿈은 기적처럼 실현되어 32년만인 2021년에 그 옥수수밭 경기장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뉴욕 양키스의 경기가 열렸다. 아버지들은 아이를 야구장에 데려가 경기를 보여주고 그 추억을 잊지 못하는 아이들은 아버지가 되어 다시 자신의 아이들을 야구장으로 데려가 추억을 대물림해주는 게 그들이 야구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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