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가운(gown)의 무게

의대 모집정원을 늘이겠다는 정부 당국과 그에 반발하는 의료계의 강대강(强對强) 대치가 출구가 보이지 않은 채로 벌써 4주째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 천 명 당 의사 숫자가 OECD 국가들 중 가장 적다는 이유로 정부는 2천 명을 증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고, 의료계의 의견 수렴도 없이 일방적인 증원은 의료 수준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반발로 가운을 벗어버리고 의료 현장을 떠난 수련의, 전공의들이 9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 특히 지방의 의료 사각지대는 분명히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지난 정부에서도 지방대학에 공공의대를 설립해 4천 명을 증원하겠다는 계획이 의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이런 대치가 의사 집단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고, 면허 정지나 취소를 내세워 지나치게 몰아가고 있는 정부도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의료 공백이나 붕괴를 바라보고 있는 국민들의 시선만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Life is short, art is long).’ 우리가 흔히 하는 이 말은 의대생들의 졸업식에서 하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의 원문에 등장하는데 여기에서의 ‘art’는 예술이 아니라 원래 의술(醫術)을 의미한다. 오늘날 의대생들의 졸업식에서 하는 선서는 히포크라테스의 원문이 아니라 1948년 제네바에서 현대식으로 개정된 것이다. 어쨌든 그 선서는 의술은 인술(仁術)이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 신화의 의술의 신이다. 태양의 신 아폴론은 아름다운 여신 크로니스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가 인간인 이스퀴스와 바람을 피우자 그녀를 활로 쏘아 죽여버렸는데 그때 그녀의 뱃속에 들어 있다가 태어난 아이가 아스클레피오스였다. 그는 뛰어난 의술을 지녀 죽은 사람들까지 살려내 지하 세계가 비어버리자 분노한 지하의 신 하데스에게 벼락을 맞아 죽는다.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가며 사람들을 살려낸 것이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오늘날 WHO(세계보건기구)나 우리나라 의사협회의 로고에 그려져 있는 게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다. 그 지팡이에 뱀이 감겨져 있는 건 그가 죽어 하늘의 뱀자리 별이 된 까닭이다. 서양의 의학은 아스클레피오스의 제자로 여겨졌던 ‘의술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되었다.

동양에도 전설적인 의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화타 편작이 와도 못 살린다’는 우리 속담에까지 등장한다. 편작(扁鵲)은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안색만 보고도 병을 고쳤다고 전해지고, 화타(華佗)는 『삼국지연의』에서 태연히 바둑을 두고 있는 관우의 살을 찢어 화살촉을 빼낸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65%에 달하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허준>의 주인공도 『동의보감』을 남긴 명의였고 중종실록에 등장하는 여의(女醫) 장금(長今)도 <대장금>이라는 드라마로 아시아 전역에 유명세를 떨쳤다.

우리 지역 뒷새(두서)에서 태어난 이석간은 네 사람의 의원들의 치료 경험을 모은 『사의경험방(四醫經驗方』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명의였다. 명나라 황후의 불치의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도 구전(口傳)으로 전해져온다.

영어의 ‘메디신 맨(medicine man)’은 ‘주술사(呪術師)’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병이 신의 저주 때문에 생긴다고 여겨 무당들이 병을 고쳤다는 걸 보여준다. 인간의 몸 안에서 혈액이 순환하고 있다는 게 밝혀진 게 17세기에 와서였다. 오늘날 인간의 수명이 현저하게 길어진 것이 그 이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 현대 의술로 환자 들을 치료해온 의사들 덕분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자(字)가 붙은 직업이 동경의 대상이다. 판사의 사는 ‘일 사(事)’, 검사의 사는 ‘조사할 사(査)’이지만 의사의 사는 ‘스승 사(師)’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그 사(師) 말이다. 드라마 <허준>에는 ‘심의(心醫)’라는 말이 등장한다.

환자를 마음을 다해 보살피는 의사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정부는 대화를 통해 설득에 나서고 의사들은 환자들 곁으로 돌아와 다시 흰 가운을 입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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