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시 안정면 단촌리

갑진 정월 초사흗날 단촌리 느티나무에 눈이 내렸다. 천연기념물 제273호
갑진 정월 초사흗날 단촌리 느티나무에 눈이 내렸다. 천연기념물 제273호

갑진년 정월대보름, “단촌리 느티나무 동신께 비나이다”
마을의 평안과 서로 화합-농축산 번창과 재앙 없는 마을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큰 나무나 바위 등의 자연물을 마을의 명물로 신성하게 여기며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주민들의 풍요와 안녕을 비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이런 성황제(城隍祭)나 동제(洞祭) 등은 전통 민속의 하나로,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마을을 지켜준다는 성황신·동신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안정면 단촌리 속칭 저술마을 동제 또한 정월 보름날인 15일 0시(子時) 마을 앞에 있는 느티나무를 동신(洞神)으로 모시고 동제를 지낸다.

마을의 역사

영주시 안정면 단촌리는 옛날 순흥부의 사마정(司馬亭)으로 대평면 단을촌(丹乙村)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순흥지(順興誌)에 전한다. 마을 앞에는 비로봉에서 발원한 홍교천이 흐르고 마을 뒤에는 비로지맥에서 뻗어 내린 두리봉이 우뚝하다.

안정면의 동북쪽에 위치한 단촌리는 아주 먼 옛날부터 풍기군(豐基郡)에 속한 마을이었다. 삼국시대 때는 기목진(基木鎭), 고려 때는 기주(基州), 조선 때는 기천현(基川縣)에 속했다. 조선 초 문종의 태(胎)를 예천 은풍 명봉산(鳴鳳山)에 묻었는데, 1450년 세종이 죽고 문종이 즉위하자 임금의 태를 묻은 보은으로 은풍의 풍(豊)자와 기천의 기(基)자를 조합하여 풍기(豐基)라 하고 군(郡)으로 승격됐다.

조선 중기 무렵 군(郡)의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풍기군 동촌면 단촌리가 되었다가 1896년(고종33) 을미개혁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풍기군 동촌면(東村面)의 단촌동(丹村洞, 백골)·회송동(檜松洞, 저술)·홍교동(虹橋洞, 홈다리)으로 분리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천군·풍기군·순흥군이 영주군으로 통폐합될 때 영주군 안정면의 단촌리, 회송동, 홍교동이 단촌리로 통폐합됐다. 1960년대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단촌동은 1리(백골+저술)와 2리(홈다리)로 분리됐다. 그 후 1980년 영주군이 시로 승격하면서 영풍군 안정면 단촌1리가 되고, 1995년 통합 영주시 안정면 단촌1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지명유래

단촌1리는 속칭 백골과 저술 두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백골은 마을 뒷산에 잣나무가 많아 잣나무 백(柏)자에 골 곡(谷)자를 써 백골(栢谷)이라 하고, 저술은 마을 주변에 전나무와 소나무가 많아 전나무 회(檜)자와 솔 송(松)자를 따 회송동(檜松洞)이라 불렀다.

이때 마을 선비들이 전나무 회(檜)자에서 ‘전’자를 따고, 솔 송(松)자에서 ‘솔’자를 따 ‘전솔’이라는 순수한 한글 이름을 지어 널리 부르게 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솔’이 ‘저솔’이 되고, ‘저솔’이 ‘저술’로 변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저술’로 굳어져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저술은 순수한 한글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마을이름이다.

영풍 단촌리 느티나무

단촌리 느티나무는 저술마을 앞 들판 가운데 있다. 이 느티나무는 1982년 천연기념물 제273호로 지정됐으며, 수령 700년이 넘는 노거수이다.

총면적은 400㎡에 이르며 나무높이 16.5m, 가슴높이 줄기 둘레 10m, 가지 퍼짐은 동쪽 10.2m, 서쪽 11.5m, 남쪽 14m, 북쪽 10.5m이다. 느티나무의 경우 그 위엄이 높이에 있지 않고 줄기의 두께에서 나온다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최고의 위엄을 지닌 나무로 인정받고 있으며 마을의 수호신이 됐다.

축관이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소지를 올리고 있다
축관이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소지를 올리고 있다

제의의 유래와 전승

저술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이 나무에 동제(洞祭)를 지낸다. 정초에 마을에서 손이 없는 세대주를 제관(祭官)으로 정하고, 도가(都家)를 정해 음식을 장만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출입을 삼가하고 경건하고 청결한 마음으로 동제(洞祭) 준비를 한다. 음력 14일 밤 제관은 목욕재계하고 의관 정제하여 15일 보름날 자시(子時, 0시)에 동제를 올리고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소지를 올린다.

저술동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김진하(81,제관) 마을 원로는 “어릴 적 할아버지(김기두)께서 제관을 하셨고, 이어 아버지(김장규)도 동제를 주관하시는 것을 봤다”면서 “당시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제시대 그 이전부터 동제를 지내왔고, 어렵게 살았던 일제강점기 때와 새마을시대 미신타파 분위기 때도 끊임없이 동제를 지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제장(祭場) 형태와 신격

저술동제의 동신(洞神)은 700년 수령의 느티나무이다. 우리나라 나무의 신(神) 중 가장 장엄하고 위엄이 넘친다는 평을 받고 있는 노거수다. 가슴 높이 줄기 둘레가 10m를 넘으니 그 위용 앞에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고 두 손이 모아 진다. 마을 사람들은 오랜 세월 이곳에 살아오면서 동신의 보살핌이 있어 풍요와 평안을 누리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제장은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다. 느티나무 남쪽편에 120×90×30cm 규격의 자연석 제단이 놓여있다. 정월 열나흗날 오후가 되면 제관집, 도가, 나무에 금줄을 두르고 잡신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하고 외인 출입을 금한다.

제의(祭儀) 준비

정월대보름 일주일 전에 마을회의에서 동제를 주관할 제관과 음식을 장만할 도가를 선정한다. 이때 부정이 없는 깨끗한 사람으로 제관을 선정한다. 갑진년 동제 제관에는 헌관 안태규, 축관 김진하로 선정하고 도가는 마을회관으로 정했다.

동제를 위한 경비는 과거에는 집집마다 나락을 거두어 기금을 마련하였으나 지금은 동비와 국비지원금으로 경비를 충당하고 있다. 제복은 마을 경비로 유복과 유건 2벌을 구비해 놓고 있으며 제기는 목기로 제복과 함께 마을회관에 보관 관리하고 있다.

도가 사람들은 정월 열나흗날 오전 목욕재계하고 장을 봐와서 오후부터 제물을 장만한다. 제물은 밥과 국, 흰떡(백설기), 소머리, 삼실과를 비롯한 과일 종류, 어물전과 적, 쇠고기와 돼지고기, 채탕 등이다. 제관은 축문을 작성하고 진행 절차를 기록한다.

저술동제 제단에 제물을 진설하고 있다
저술동제 제단에 제물을 진설하고 있다
헌작례에 이어 축관이 독축하고 있다
헌작례에 이어 축관이 독축하고 있다

제의(祭儀) 절차 및 진행

정월 열나흗날 밤 11시 30분 제관과 축관은 의관 정재한다. 제물과 제기 등을 제장(祭場)인 느티나무 아래로 이동한다. 제관은 촛불을 밝히고 헌관은 준비해간 제물을 전통 진설 방법에 따라 진설한다. 앞줄은 삼실과와 떡, 뒷줄에 소머리와 전 그리고 안쪽에 밥과 국, 잔을 놓는다. 진설이 끝나면 제관은 제단 앞에 꿇어앉는다. 축관의 창홀에 따라 헌관 삼상향-신을 맞이하는 참신례-신을 모시는 강신례-술잔을 드리는 헌작례-신과 소통하는 독축-술을 더 권하는 첨작례-밥과 국을 드리는 유식례-차를 올리는 진다례-수저를 거두는 낙시저-신을 보내는 사신례 순으로 진행됐다. 제례가 끝나면 축관이 가가호호의 이름을 부르면서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소지를 올린다.

다음은 김진하 축관이 독축한 축문이다.

「갑진년(2024) 새해 정월대보름을 맞이하여 저술동 안태규는 삼가 동지신명께 고하나이다. 저술 (느티나무) 동신께서는 이 땅에 터를 잡으신 지 수백 년이 지났나이다. 오늘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마련한 음식과 맑은 술을 동신께 올리나이다. 높으신 신령이시어 이날 이후 마을에 재앙이 없게 하시고 풍년 들녘과 융성한 삶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올 한 해도 농축산이 번창하고 이웃이 평안하며 서로 화합하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농기계와 차량들이 무사 안전 운행하게 하여 주시고, 출향인 모두에게도 만사형통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에 받들어 올리오니 마음껏 음향하시옵소서」

도가 사람들이 동제 음복연을 마치고 노고에 서로 감사하고 있다
도가 사람들이 동제 음복연을 마치고 노고에 서로 감사하고 있다

다함께 음복연(飮福宴)

동제가 끝나고 도가에서 음복연이 열린다. 음복연에는 박찬유 단촌1리 이장, 임 율 인삼마을위원장, 문화재청 조사위원, 박준익 반장, 도가 사람들이 함께 했다.

마을 사람들은 제관과 도가 사람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서로 덕담을 나눈다. 밝은 날 오전 11시 마을 사람들 모두 도가에 모여 축제 분위기 속에서 음복연을 열고 윷놀이를 한다.

박찬유 이장은 “동제 준비를 위해 여러 날 동안 수고하신 제관과 도가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면서 “이번 동제를 계기로 단촌리 느티나무가 전통 민속신앙으로 한층 더 귀한 대접을 받게 됐다. 앞으로 저술마을회관 건립과 백골-저술-홈다리를 잇는 도로 신설 등에도 많은 관심과 협력을 당부드린다. 올 한 해 재앙 없고 평안하고 건강한 단촌리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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