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탐방[399] 청전 전각 갤러리

서용철 작가
서용철 작가

막도장 파다가 전각 예술...작품 6천 점 소장

최단기간 최다 작품 보유 기네스북에도 올라

“전각은 칼로 돌, 나무, 옥, 상아 등을 다듬어 그 위에 문자를 새긴 다음, 인주를 묻혀 종이에 찍어내어 드러나는 인영을 감상하는 전통 예술입니다. 한자의 전서체를 새겨 조각하는 것으로 실용적인 목적의 인장과는 다르게 예술적인 목적이며 전라남도 해남에서 직접 돌을 구매해 다듬어 제작된 것들입니다”

기네스북 기록 증명서
기네스북 기록 증명서

서울 출신으로 17년 전 최단기간에 최다 전각 작품 보유로 한국 기네스북에도 기록된 청전 서용철(70) 작가는 현재 6천 점의 작품들과 전시된 모습이 담긴 사진, 신문 스크랩 등을 우리고장 단산면 단곡리 소재 자신의 갤러리에서 보관하고 있다.

2021년도에 우리고장 영주에서 전시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무산됐다. 마침 순흥에 여동생 내외가 살고 있어 원주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단곡리로 이사를 오게 돼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권투선수였던 그가 도장기술을 배운 이유

초등학교 때부터 권투를 했었다는 서 작가는 스스로 집에서 연습하다가 중학교 2학년 때 권투에 정식 입문했다. 고교 재학시절 뮌헨 올림픽 파견 3차 선발대회까지 나갔었던 실력파다. 당시 프로 전향을 제의받기도 했지만 경기에서 억울하게 졌던 마음을 다스리고자 등산을 즐겼었다고 한다.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지기 싫어하는 성향이 컸던 그는 우연히 부산역 앞에서 장사하는 분들을 두루두루 살펴봤다고 한다. 당시 성격에도 적합하고 손님과의 대화가 크게 필요 없는 도장을 만들어 살아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 길로 물어물어 70년대에 강남 잠실에서 유명했던 좌보 조하영 선생에게 도장 기술을 배운 그다.

옥돌 다듬을 때 사용하는 도구
옥돌 다듬을 때 사용하는 도구

전통 예술을 연마하기까지

“먹 갈아라. 그만 갈아라. 붓 잡아라” 하시면서 스승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시키는 대로만 묵묵히 버티면서 배웠다고 한다. 서너달 걸린 사람도 있고, 일주일 만에 나간 사람도 있었지만 당시 30만 원으로 2개월 속성으로 버텨 배웠다. 그 후 서예와 전각은 청남 전도진 선생님과 고은 지성용 두 분한테 배웠다고 한다. 그는 “전각은 붓글씨에서 칼로 이동하는 과정이기에 서예를 먼저 배우고 칼을 잡아야 예술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첫 근무지는 역전에서 즉석 막도장·불도장을 파서 주는 노점을 했다. 비오는 날 운영을 못하면 도장을 갖고 다니며 영업 위주로 들고 다닌 시절이었다. 구석구석 다 찾아다니며 요즘 말로 방문판매를 한 것이다. 삐삐시절에는 인천에서 매일 늦게까지 걸어 다니며 판매를 이어갔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자 자동차를 구입해 카폰을 갖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사업에 매진했다.

즉석에서 30초에 하나씩 파서 줬기에 1개를 위해서라도 근교 지역으로 바로 이동하는 서비스와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을 일궜다. 고생고생해서 가게(청전 인방)를 차렸는데 의외로 석 달 동안 손님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낙담할 새도 없이 불교의 기본 경전인 금강경을 새길 무렵 하루에 책 한 권은 금방 소화하고 옥돌에 새기기 시작했다는 서 작가는 희한하게도 그 후 일이 잘 풀렸다고 한다.

“40대에 인천에서 살 당시 소문이 많이 났어요. 일반도장에서 고급도장까지 판매하며 또 사주를 봐줬어요. 즉 운수 좋은 역학도장으로 부적같은 효력이 있다는 소문이 난 거죠. 일례로 매일 저희 매장에 찾아오는 기업가가 있었는데 입찰 잘되는 도장을 요구해 만들어 줬어요. 그 결과는 좋은 일이 계속 생겨 자주 소통을 하다보니 그가 천주교 신자였죠. 기독교 모태 신앙이었던 저를 천주교로 개종하게 해줬죠. 이미 불교 금강경을 작업했는데 아이러니하죠”

도장
도장
전각
전각
서 작가님의 따님 작품(18세 때)
서 작가님의 따님 작품(18세 때)

불교와 천주교를 넘나드는 예술가

그 사이에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전서체를 사용해 아름다운 효과를 나타냈다. 획과 획, 선과 선, 점과 점 등을 자유롭게 재구성해낸 문자 조형 예술이다. 한글은 여사 서체 위주며 독자적으로 개발한 청전체도 있다. 기와에 들어가는 수막새, 조선시대 국새를 모각하기도 했다. 50대에 미술관이 하고 싶어 인천을 떠났다.

횡성에서 미술관을 오픈하고 두 자녀의 대학등록금도 마련해야 했기에 강원도 원주에서 가게인방(도장가게)를 함께 운영했다. 중간에 2008년도부터 2011년까지 영월에서 폐교를 활용해 청전전각박물관 관장으로 2년 정도 운영을 맡았으나 지속 운영하기가 어려워 접기도 했다.

“저는 사진을 많이 남기지 않았어요. 대부분 남이 찍어주었죠. 석가탄신일 날 봉화 현정사에서 불교 금강경(1천207개 5천440자) 전각을 전시했죠. 불교 다음에는 천주교 성경 신약·구약·외경(230만자) 전각을 만들었습니다. 영주에 오니 유교적인 부분을 넣고 싶어 논어 구절 등 좋은 말씀을 옥돌에 새겼습니다. 불자는 아니지만 부록을 보고 해보고 싶었고 천주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원주에서 일반인도 전각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었다는 서 작가는 당시 전국에서 서예를 하다가 전각을 배우고 싶어 많은 사람이 찾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국전 제자 중에는 편지를 해마다 보내올 정도였다. 말이 편지지 하나의 작품(전각도장이 입혀진)이 담긴 글을 볼 때마다 매번 뿌듯하고 행복했다는 그다.

“전각은 1990년부터 했어요. 현재 6천 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무념무상’으로 매이며 도의 경지에 오른거나 마찬가지죠. 24년 전부터 해남에서 돌이 안나왔어요. 미리 구입해 놓은 옥돌을 잘라가며 다듬었어요. 문구가 새겨진 부분을 읽는 법은 작가가 방향을 잡아 쓰기 나름입니다”

서 작가는 “영주분들에게 많이 소개해 드리고 싶었지만 그동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며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제 딸인 서고운 미술작가와 함께 제 작품도 전시하고 싶은 바람”이라고 말했다.

“소와 선비가 어우러진 도장도 있습니다. 한자한자에 새겨진 집념의 결정체를 감상하며 생명의 혼이 담긴 전각의 미를 한번 느껴보시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랍니다”

청전 전각 갤러리

경북 영주시 단산면 단산로 569-30

☎ 010-9195-5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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