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명나라와의 외교를 통해 국가 안보와 평화를 유지함은 물론 왕조 교체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대(事大) 외교를 선택했다. 그러나 명나라는 조선을 길들이기 위해 기회만 있으면 조선을 괴롭혔다. 주원장은 조선의 정탐 행위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의심했고 지나치게 많은 공물을 요구하는가 하면 외교 문서의 내용을 문제 삼아 시비를 걸며 조선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럼에도 정도전은 사대 외교를 포기하지 않았다. 정도전의 사대 외교 노선은 “오직 지혜로운 자만이 작은 나라로서 대국을 섬길 수 있으며, 오직 어진 자만이 대국으로서 소국을 섬길 수 있다”는 『맹자』의 말에서 연유한 봉건시대의 평화공존론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조선이 선택한 사대 외교는 국왕이 황제에게 신하의 예를 취하고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며 조공을 바치는 대신, 중국은 조선을 침략하지 않고, 외적의 공격에 공동 방어의 책임을 지며, 조공에 대한 답례 형식으로 무역을 하는 쌍무적인 관계였다.

이와 같은 정도전의 사대 외교는 “국가의 안녕을 보전하기 위한 선택이므로, 오랑캐라도 세력이 강대하다면 일시적으로 머리를 숙일 수 있다”며 사대 외교의 목적을 ‘백성과 나라의 평안’에 두었다.

정도전이 선택한 사대 외교는 대국에 의지해 국체(國體)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며, 상국의 지나친 간섭으로 자국의 질서가 흔들리는 것을 수용한 것도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정도전은 『맹자』를 탐독하고 책장이 헤어지도록 정독했다 한다. 오늘날 외교에서도 대국(大國)과 소국(小國)의 관계를 논한 『맹자(孟子)』를 떠올려볼 때가 많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대(事大)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소(事小)를 언급하고 있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사전에는 ‘사소(事小)’라는 단어는 아예 없다.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국제관계에서 사대와 동시에 사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맹자의 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대할 때 (힘을 앞세우지 말고) 인자함으로 섬겨야 한다. 그래야 세계평화가 이루어 진다(保天下). 또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대할 때 (경거망동하지 말고) 지혜로움으로 섬겨야 한다. 그래야 국가 안보를 지킬 수 있다(保其國).’ 국가 안보 없이 세계평화 없고 세계평화 없이 국가 안보가 있을 수 없기에 대국과 소국은 결국 공동운명체인 것이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거대국가를 이웃으로 두고 있는 나라들은 너나없이 많은 아픔을 겪었다. 대국과의 관계에서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도 국토를 짓밟힌 역사가 비일비재하다. ‘큰 나무 덕은 봐도 큰 나라 덕은 못 본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다고 한다. 중국과 주변국들의 아름답지 못한 관계는 과거에 그치지 않았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정도전의 외교정책은 그 시대를 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 다시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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