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시조 대상-전국시낭송 대상-지하철 공모 2022·2023 당선
남기고 간 수많은 문학 작품들 봉화문협 자산으로 후세 전달

봉화문협 회원들이 '6월, 무논을 읽다'를 낭송하면서 작별을 고하고 있다.
봉화문협 회원들이 '6월, 무논을 읽다'를 낭송하면서 작별을 고하고 있다.

‘유월, 무논을 읽다’는 봉화문협 우경화 시인이 2022년 서울 지하철 시민공모에 당선되어 종로5가역 스크린도어에 게시된 시의 제목이다. 또 2023년 시민공모 당선작 ‘비탈밭’은 남대문 회현역에 게시돼 있다.

자연을 지극히도 사랑했던 우 시인이 지난달 23일 그가 즐겨 걷던 논두렁길 따라 저세상으로 떠났다. 향년 66세다.

우 시인은 봉화에서 태어나 봉화에서 살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시를 많이 써 경북 문단에 널리 알려진 시인으로, 경북 북부지역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긴 봉화문협 회원들은 지난달 25일 발인에 앞서 조촐한 영결식을 준비했다. 이날 새벽이 밝아 올 무렵 이분남 회장을 비롯한 송명숙·강현숙·김제남·김태환 전 회장, 유족, 지인들이 영정 앞에 섰다.

영결식은 김제남 전 회장이 고인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듯 이어갔다. 다함께 고인에 대한 묵념을 시작으로 헌화, 이분남 회장 인사 및 약력소개, 송명순 전 회장 조사(김제남 쓰고, 송명순 읽다), 강현숙 전 회장 작별 인사 순으로 진행됐다.

2022 시민공모 당전작 '유월의 무논을 읽다'_종로5가역
2022 시민공모 당전작 '유월의 무논을 읽다'_종로5가역
2023 시민공모 당선작 '비탈밭'_남대문 회현역
2023 시민공모 당선작 '비탈밭'_남대문 회현역

이분남 회장은 “우경화 시인은 봉화문협 창립(1956) 회원으로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참 시인이었다”면서 “일찍이 샘터 시조사 가작 수상을 시작으로 금호시조상 대상, 방송대 문학상 수상, 여성조선 시 부문 우수상, 예천 전국시낭송 대상, 서울 지하철 공모전 2022, 2023 수상 등은 참으로 빛났고 아름다웠다”고 하자 모두들 눈물을 훔쳤다.

송명순 전 회장은 조사에서 “산자락에 이슬 머금은 들풀처럼 살다 간 우경화 시인, 마음 가는 곳 손끝 닿는 곳 모두 살아서 꼼지락거리게 만드는 신의 손, 천사의 마음으로 꽃을 심고 항아리에 울타리에... -중략- 얼마 전까지도 밝은 모습으로 논두렁길 그림 그리듯 시를 쓰면서 세상과 소통했는데 이렇게 홀홀히 떠나시다니 정말 가슴이 미어지고 슬픔을 참기 어렵습니다. 우리 회원들은 그냥 떠나보내기 너무 아쉬워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남긴 시를 읽으면서 편히 보내드리고자 합니다”라며 울먹였다.

「〈유월, 무논을 읽다〉 우경화(2022 시민공모작) 유월 무논은 푸른 경전이다/바람이 읽고 가는 이유가 있다/논두렁에 숨은 풀벌레들과/개구리들도 떼를 지어/무심한 세상 귀들을 향하여/큰 소리로 경전을 읽는다/밥심으로 살아가는/이 땅 위의 어느 누군들/질퍽한 논바닥 흙과 무관하랴/농부들이 흘린 땀방울 되새기듯/맨발로 찰방거리며/종아리가 젖도록 걸어보고 싶은/해거름, 논두렁에 앉아/찬찬히 푸른 잠언을 읽는다/몇 마지기 경전을 읽는다.//」

강현숙 전 회장은 작별 인사를 준비했으나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 … 생전에 밝은 모습 한 줄기 빛으로 다시 태어나 문향 봉화를 비추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편히 가소서”라며 오열했다.

김 전 회장은 영결식을 마치면서 “우 시인이 남기고 간 수많은 문학 작품들은 봉화문협 자산으로 고이 간직해 두었다가 후학들에게 물려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날 봉화문학 회원들 조문 시에는 권명자 회원이 조시를 지어 낭송했다. “꼿꼿하고 향기롭게 곰살맞은 시심으로 살면서 따뜻한 봄이 오길 기다리시더니 그 기다림이 너무 길었나요? 시인의 집에 세들어 살던 고양이 식구들이며 올망졸망 자라고 있는 다육이들은 어찌하라고... 긴 세월 아픔과 친구했던 나날들, 이제 편히 손 놓으셨으니 꽃들 만발한 하늘나라에서 시 짓고 꽃 가꾸며 편히 사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부디 평안하십시오”라고 하자 여기 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우 시인의 장례행렬은 선영이 있는 상운면 가곡리 반송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품에 안겼다.

 

        산비탈

                   우경화 (2023 시민공모작)

 

힐링하듯 걷는 시골길

누가 씨를 뿌렸을까

나직한 산자락 알뜰히 일궈

누가 이리도 파릇파릇한

희망을 뿌렸을까

잉크 냄새를 맡으며

새로 산 시집을 읽듯이

누군가 홀로 엎드려

땀으로 쓴 시를 읽었네

상추 열무 쑥갓

이하, 아욱

이랑마다 흙내 그윽한

참 맛 당기는 시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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