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강국 독일의 성공이유 ‘끊임없는 혁신의 결과’
쾌적한 근무 환경, 행복할 수 있는 문화․교육이 먼저

김택환 국가전략·독일전문가 (경북도청 기획자문관)
김택환 국가전략·독일전문가 (경북도청 기획자문관)

청룡의 해가 솟아올랐다. 선비의 고장 경북 영주시가 지난해 국토부로부터 승인을 받아 ‘기계산업의 쌀’로 평가받는 첨단베어링 국가산단 조성에 들어갔다. 대한민국 최대 위기요인 인구소멸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에서 첨단베어링산업 특구 개발은 영주시가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계기이다.

베어링은 전자, 항공, 우주, 정밀기계산업 등 향후 첨단산업의 주도권을 판가름할 핵심 산업이다. 베어링 산업은 2025년 전 세계 시장 규모가 약 177조원, 연평균 5.7% 성장이 기대되는 차세대 신산업이다.

하지만 현재 독일, 스웨덴, 일본 등 소수 글로벌 기업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갑진년 신년을 맞아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단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나 방향을 4차 산업혁명 선도나라이자 베어링 강국 독일의 사례를 통해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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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러시아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2023년 독일은 특별한 한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에 따르면 일본 국내총생산(GDP)은 2024년 –0.2% 감소(4조2300억달러)하는 반면 독일 GDP는 8.5%나 증가(4조4200억달러)할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이 일본을 제치고 미국, 중국에 이어 다시 세계 3위로 등극한 것이다.

미·중 패권 전쟁 등 어려운 국제 환경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독일 GDP가 세계 3위로 부상할 수 있었는가?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독일이 제조강국으로 끊임없는 혁신의 결과”라고 분석한다.

혁신의 핵심 키워드로 3가지, 즉 국가제조 소프트웨어의 쌍두마차 ‘인더스트리 4.0’ 및 ‘혁신클러스트’와 하드웨어인 ‘국가 첨단산업단지’ 건설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영주 첨단 국가산단 성공을 위해 시사점을 얻을 수도 있다.

먼저 ‘인더스트리 4.0’은 2011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발표한 국가발전 그랜드플랜이다. 당시 대한민국과 중국 등이 뒤따라오고, 저출산·고령화에다가 노동고도화가 요구되는 시점이었다. 오늘날 우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은 제조업과 정보통신(ICT)의 융합인 ‘인더스트리 4.0’, 즉 스마트제조업을 선언했다.

이어 2016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마케팅 전략으로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가 됐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 대신 ‘디지털혁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어 독일 혁신클러스터는 기존의 핵심 산업을 업그레이드하는 전략으로 제품개발에서부터 생산, 물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원스톱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한 제품은 24시간 안에 최종이용자(end-user)에 전달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는 국가산단으로 이곳에 입주하는 기업들은 별도 건물과 인프라를 새롭게 투자할 필요가 없다. 이곳 기업들은 원재료와 생산설비·시설, 소각장, 폐수처리, 운송(철도, 배) 수단을 공유해 시너지효과를 거두고 있다.

독일의 디지털 혁신

대표적인 독일 국가산단으로 프랑크푸르트 근처 훽스트(Hoechst) 산업단지를 들 수 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 바이엘과 바스프, 아벤티스 등 80여개의 기업들이 입주해 생명공학과 화학분야 특화단지로 성장하고 있다. 수천명의 연구원들이 노력해 창출한 성과물은 ‘스케일 업’(제품화)으로 이어져 성공역사를 쓰고 있다. 또한 촘촘한 산학연 네트워크 형성이 이곳 산업단지의 또 하나의 강점이다.

독일경제산업청, 독일상공회의소 등 연방·주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과 인근 대학들과의 긴밀한 산학연 협력은 이곳 산업단지를 유럽 최고의 산업단지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래 독일은 국가산업단지 조성에 앞서간 나라다. 영국보다 산업혁명에 늦은 독일은 국가산단을 통해 영국을 따라잡고 제조 강국으로 우뚝 섰다. 대표 지역이 우리에게 익숙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루르단지’이다.

또 다른 독일 국가산단 성공모델로 1990년 통일 후 건설된 작센 주 드레스덴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실리콘 작센’을 들 수 있다. 독일 대표 반도체기업 인피니언을 비롯해 글로벌파운드리, 보쉬, 엑스팹 등 글로벌 반도체 대기업 4개사가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20년 만에 급성장해 현재 고용 인원 7만 명에 2천500개 기업이 입주해 연매출이 23조 원에 이른다.

성공에는 작센 주정부도 기여했다. 처음 투자하는 기업에 고용 인원, 급여 상한 등의 요건을 갖출 경우 인건비 절반을 5년간 지원했고, 설비 투자비용 25∼30%를 지원했다. 또한 독일의 산학협력 인력양성의 모델인 ‘아우스빌둥’(Ausbildung), 즉 공부와 실습을 동시에 하는 이원적 교육이 산단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이곳 국가산단에 있는 ‘드레스덴 칩 아카데미’는 입주기업의 공동교육 플랫폼으로 운영된다. 교육비를 내면 아카데미가 해당 업체 직원들을 교육하고 입사 전 대학 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실무를 배울 수 있는 산학연 연대이다.

주 정부의 지원과 산학 협력, 그리고 행복하게 일 할 수 있는 조건

독일은 국가산단이 성공하기 위해 미래기술 분야와의 융복합 및 연계를 강조하고 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반도체, 디지털 등 신기술과의 융복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첨단장비·스마트제조·자동차·신에너지·바이오의약 분야 등 신산업분야와의 폭넓은 협력의 장도 강조하고 투자한다. 나아가 최강국의 최고 일류기업들 유치도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국가산단이 성공하기 위해 공장 등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요소는 문화·교육·교통 인프라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청년들 꿈이 여무는 환경 조성으로 문화 공연장을 비롯해 어린이집 및 학교 그리고 사통팔달의 교통망 구축이 중요하다.

독일 뮌헨이나 도르트문트의 산업단지에 가보면 녹지가 풍부한 공원 속에 생산시설 연구기관 및 지원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그 만큼 근무 환경이 쾌적하다는 뜻이다. 선진국의 국가산단은 주거단지와 친환경 연구시설, 좋은 문화·교육환경이 뒤받침하고 있다.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고 행복할 수 있는 문화 및 교육 조건을 말한다.

독일에서 이것이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도 ‘전국이 골고루 잘 사는 사회적 연방국가’라는 헌법 조항에 기반하고 있다. 독일 지방정부(광역단체)는 예산·인사·법률권을 갖고 있으며 교육·문화·치안 등은 지방정부의 권한이다. 나아가 국가 권력기관이 전국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연방의회는 베를린에 있지만 대법원·헌법재판소는 칼수르에, 두 공영방송인 ARD는 함부르크, ZDF는 마인츠에 본사가 있다. 우리와 비교하면 KBS는 목포에, MBC는 안동에 있는 셈이다. 또한 독일 대기업 본사들이 전국에 골고루 분포해 있다.

4차 산업혁명 선도기업인 지멘스는 뮌헨, 명품차인 벤츠는 슈튜트가르트, 글로벌 제약회사 바이엘은 레버쿠젠에 있다. 독일은 국가 권력기관 및 대기업 본사들이 전국에 골고루 분포하면서 지방정부와 함께 최고 교육·문화·생활환경을 조성해 성공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서울공화국인 대한민국과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독일은 유럽에서 스웨덴과 함께 베어링제조 강국이다. 독일이 스웨덴과 함께 세계 시장의 50%를 차지할 정도다. 독일에서 베어링 7대 기업으로 FAG, INA, 새플러(Schaeffler), 카시마(Kashima), 부르크(Burg), KFB, 롤스베어링(Rolls Bearing) 등을 들 수 있다.

세계 3대 베어링제조회사로는 스웨덴의 SKF, 일본의 NSK, 독일의 FAG 등을 꼽고 있다. 스웨덴 SKF는 세계 최대 공기업으로 4만 4천명이 근무하고 108개국에 진출, 수출하고 있다.

베어링 산단의 6가지 성공 조건

지난해 영주시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가 국토교통부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영주 국가산단은 적서동과 문수면 권선리 일원에 118만㎡(36만평) 규모이며 유치 업종은 베어링(전·후방 포함), 기계, 경량 소재 등 16개 업종이다.

영주시는 지난해부터 토지보상계획 공고와 감정평가 등 보상을 위한 절차 이행을 시작해 올해 착공, 2027년 준공이 목표다. 첨단 국가산단이 들어서면 직‧간접 고용 4천700여 명 등 1만 300여 명의 인구증가 효과와 영주시 관내에 연간 760억 원의 경제 유발 효과를 얻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럼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단이 성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성공요인을 크게 6가지로 도출할 수 있다. 이는 성공한 독일 국가산단이 주는 시사점에 기반한 것이다.

먼저 첨단베어링 분야의 국내외 최고 기업 유치다. 박남서 영주시장은 “이미 베어링아트를 비롯한 앵커기업 유치, 하이테크베어링 시험평가센터 및 경량소재 융복합기술센터를 건립했다”면서 “이제 ‘유망기업 유치’라는 막중한 과제를 맡았다”고 각오를 밝혔다.

둘째, 친환경에너지 기업단지 조성 및 디지털 전환인 최적 인프라 및 소프트웨어로 무장하는 것이다. 최첨단 시설은 물론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 미래첨단 기술 활용 가능한 산업단지를 말한다. 넷 제로 빌딩 등 친환경산업단지 조성을 말한다.

셋째, ‘산학연 혁신클러스터’ 조성이다. 산학협력 활성화와 특성화고 육성 등 안정적 인력공급 체계 구축이다. 고급인력 양성 및 확보가 성공에 필수적이다. 자체 인력 양성을 위해 영주시가 노력하는 것이다. 좋은 기회를 맞고 있는데 현 정부가 추진하는 글로컬 대학으로 안동대학과 포스텍이 선정되었다. 경북도청과 협력해 2개 대학에 산학연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첨단베어링 인재육성 및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넷째, 경북도청과 영주시가 협력해 최고 주거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최고 주택단지 조성에다가 어린이집, 문화공연, 최고 교통인프라 조성을 말한다. 60년대 포항에 포항제철이 만들어질 때 창업자인 박태준 회장은 공장을 짓기도 전에 먼저 사원 주택을 지었고, 이어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포스텍 대학 및 대학원을 설립해 어느 도시보다 좋은 교육 환경을 조성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영주의 첨단베어링 국가산단 역시 최고 주거단지·교육환경·문화단지, 교통망 연결을 통해 성공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다섯째, 경상북도 및 영주시 역할이 중요하다. 국가산단이 성공하기 위해 최고인력 유치에 재정 지원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첨단산업 관련 국가공공기관 유치도 나서야 한다. 또한 영주시민들이 유치에 크게 기여했지만 이후 성공을 위해 더욱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첨단베어링 엑스포나 산업박람회를 영주에서 개최하는 것이다. 글로벌 트렌드 파악과 더불어 세계 일류 기업들의 참가를 통해 영주가 더욱 발전하는 것이다.

영주가 첨단베어링 국가산단을 계기로 글로벌 경쟁력있는 멋진 도시로 도약하길 새해 청룡의 기운으로 기대해본다.

김택환 국가전략·독일전문가 (경북도청 기획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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