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梅 자字는 인류 문화의 정수精髓
​​​​​​​얼음 같은 맑은 혼魂과 구슬처럼 깨끗한 골격骨格

매화의 명칭에 대하여 살펴보자면, 매화의 어원은 원래 ‘梅’와 ‘花’의 합성어이며 매의 옛 글자로는 ‘某 ’와 ‘♀♀’가 있다. 이 가운데 ‘某’자는 매실이 시고 달기 때문에 ‘甘’자와 ‘木’자를 합성한 것이며, ‘♀♀’자는 매실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상주商周(BC16세기-BC221년)시대의 갑골문자에서는 매화를 “ ♀”로 표기하고 있다.

『매梅』라는 글자의 시작은 역경易經에서 비롯되었다. 매梅자는 나무에서 근거하였으므로 나무(木)가 기본이 되고 매每에 근거하여 소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매每자는 人과 母로 이루어졌다. 사람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인류문화의 기본이 된다. 따라서 木과 每를 구성해 보면 梅자의 철학적 근거를 발견할 수가 있으며, 매梅자가 인류문화의 정수精髓임을 알 수 있다.

매화를 일컫는 다른 이름으로는 중국의 진秦나라 무제武帝가 학문을 열심히 하면 매화가 피고, 게을리하면 매화가 피지 않는다고 하여 〈호문목好文木〉이라고 하였고, 송나라 증단백曾端伯은 많은 화목류 가운데 열 가지를 골라 소위 화중십우花中十友를 삼아 유난히도 사랑했는데 그 가운데 매화를 〈청우淸友와 청객淸客〉으로 불렀으며, 송경宋璟이 쓴 『매화부梅花賦』에서는〈경영瓊英〉이라 하였고, 퇴계 이황李滉(1501-1570)은 백매의 고결 담백하고 탈속한 미감이 깃들어 있음을 들어 〈옥선玉仙〉또는 〈매형梅兄〉이라고 했다.

백매화
백매화

중국 남송 때의 문인 육유陸游(1125-1210)는 매화가 냉철한 정신을 가졌다고 하여 〈빙혼氷魂〉이라 했으며, 남송시대 유명한 학자였던 양만리楊萬里(1127-1206)는 그의 매화 시에서 매화를 〈매형梅兄 또는 매선梅仙〉이라 불렀다. 그리고 추운 겨울날 눈 속에서 꽃을 피운다고 하여 〈빙기옥골氷肌玉骨 또는 빙자옥골氷姿玉骨〉이라고 하며, 모든 꽃을 신하로 거느린다고 하여 〈화괴花魁 또는 화중왕花中王〉이라 하고, 중국의 호해신문湖海新聞은 매梅자를 풀어서 〈목모木母〉라고도 했다.

소동파蘇東坡(1036-1101)는 매화를 얼음 같은 맑은 혼魂과 구슬처럼 깨끗한 골격骨格을 지녔다고 했으며, 강희안姜希顔(1417-1464)은 봄에 피는 매화를 고우古友라 하고, 섣달에 피는 매화를 기우奇友라고 불렀다.

이 밖에도 〈옥비玉妃〉〈매군梅君〉〈은일사隱逸士〉〈천향국염天香菊艶〉〈천하의 우물天下之尤物(가장 빼어난 물건)〉〈사군자의 수반 四君子 首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피는 시기에 따라 동지 이전에 피는 매화를 ‘동매’, 섣달그믐 무렵에 피는 매화를 ‘납매’ 또는 납월매, 그리고 소한과 대한 무렵에 피는 매화를 ‘한매’, 춘분을 전후하여 피는 매화를 ‘춘매’라고 한다.

매향이 가장 짙은 시기
매향이 가장 짙은 시기

매화의 학명은 Prunus mume Sieb.et Zucc. Armeniaca mume이다.

그중 Prunus mume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학명으로 독일의 식물학자 지볼트Siebold와 이태리의 식물학자 유카리니Zuccarini에 의해《일본식물지日本植物志》에 처음으로 명명하여 발표하였다.

그후 여러 저서와 간행물에서 이를 인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중국의《광주식물지廣州植物志》,《고등식물도감高等植物圖鑑》,《중국온대과수분류학中國溫帶果樹分類學》,《중국수목지中國樹木志》와《중국매화품종도지中國梅花品種圖志》등에서도 모두 이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카 뮤메Armeniaca mume는 1830년에 지볼디르크Sieboldirk가 명명하였으며, 지금은 《광주식물지廣州植物志》와《중국과수분류학中國果樹分類學》에서만 이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독일 우르츠부르그Wurzburg 출신의 식물학자였던 지볼트(Siebold, Philipp Franz Von 1796~1866)는 1826년 나가사키(長崎)로부터 배를 타고 히메지(姬路)와 무로사키(室崎)를 거쳐 육로로 에도(江戶)로 가면서 일본의 식물들을 관찰 기록하여 유럽에 소개하였다. 지볼트는 의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홀랜드 왕실의 동인도군대의 군의관으로 자카르타에 와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6년간 머물면서 서양의술을 소개하였으며, 매화의 원산지가 중국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일본에만 있는 식물로 알고 명명하였다. 그가 중국과 한국을 돌아보았더라면 매화의 명칭은 달라졌을 것이다.

매화의 향기에 대하여 중국의 송나라 때 시인 공천서孔天瑞는 ‘매화의 향기는 4경四更(밤1시부터3시 사이의 시간) 이후에 대개 달이 서쪽으로 내려가게 되면 빛이 한낮에 비해 노랗기 마련이며, 다시 어두워진다. 비단 매화만이 아니라, 무릇 향기 있는 물건치고는 다 그러하다. 낮의 오시午時(아침7시 7시) 이후는 음기가 힘을 쓰므로 꽃이 고운 빛을 거두고 향기를 감추며, 밤의 오시午時(저녁7시) 이후는 양기가 힘을 쓰므로 꽃망울이 펴지고 향기가 발산하는 법이다. 라고 하였다.

향기와 벌
향기와 벌

매향梅香을 종류별로 나타내는 문인들의 문학적 표현을 보면 중국의 절강성 출신의 당나라 때 시인 장유張維(956∼1046)는 『회문이수回文二首』의 〈한향寒香〉에서 “남은 매화 비를 머금으니 그 차가운 향기가 방안에 스며든다”고 하였고, 역시 당대 시인 라은羅隱(833∼910)도 〈매화梅花〉라는 시에서 “고요히 차가운 향을 사랑하니 술 두루미 기운다(靜愛寒香扑酒罇)”고 했으며,

냉향冷香에 대하여는 신라시대 당나라에 파견한 유학생이었던 최광유崔匡裕(? ~ ?)가 『정매 庭梅』라는 시에서 “비단처럼 곱고 서리처럼 빛나 온 사방을 비추니練艶霜輝照四隣, 싸늘한 향기는 가볍게 옥창의 먼지를 잠근다冷香輕鎖玉窓塵”. 라고 했으며,

당나라 때 시인 증공曾鞏(1019∼1083)도 “차가운 향기 그윽하고 절묘하니 누구를 향해 열리나冷香幽絶向誰開”라고 하여 역시 ’냉향‘을 읊었으며, 조선시대 대 유학자이며 이토계李退溪와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하여 7년 동안 논쟁을 벌였던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1527∼1752)은 〈청향淸香〉에 대해 “맑은 향기 온 나무에 가득하니 부질없이 설렌다淸香滿樹空相惱”고 하였고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분매답盆梅答〉이라는 시에서 “공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천향을 피우리라待公歸去發天香. 라고 하였는데, 1569년 벼슬을 그만두고 한성우사漢城寓舍에 분매를 남겨둔 채 예안禮安으로 떠나면서 “동으로 돌아감에 그대 데리고 가지 못해 마음 아프니東歸恨未携君去 , 서울이라 먼지 속에 부디 고이 보전하게京洛塵中好艶藏."라고 했을 때, 분매가 화답한 내용이며, 이러한 ’천향‘에 대하여는 청나라 시인 주자청朱自淸(1898∼1948)의 〈간화看花〉라는 시에서도

“야간 수행을 하다가............................. 大殿上正做晩課
범패소리 보내고 난 뒤......................... 送來梵唄的聲音
조화로운 매화 숲의 그윽한 향기...... 和着梅林中的暗響”

라고 읊고 있다.

이처럼 매화의 아름다운 자태와 비견할 또 하나의 매력은 그 향기에 있음을 알 수가 있으며,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 가운데 우음偶吟 이후백李後白(1520∼1578)은 《대동시선(大東詩選)》에 실린 “우연히 읊다”에서

부슬비 속에 돌아갈 길은 아득한데............ 細雨迷歸路
노새 등 십리 길에 바람마저 불어오네..
.... 騎驢十里風
들매화가 곳곳에 피어 있는데........................ 野梅隨處發
그윽한 향기에 내마음 설레이네................... 魂斷暗香中

라고 하므로 부슬비 내리는 시골길을 노새 등에 얹혀 가는데 여기저기 피어 있는 들매화에서 향기가 풍겨온다. 그 향기는 너무도 그윽하여 사람의 혼을 산란하게 한다고 하였다.

글. 안형재(한국매화연구원장)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