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실 강양군 이정의 절명시
​​​​​​​작매부와 정 다산의 애절양

일화(一花) 이개성(二開性) 희귀종 태각(台閣) 백매
일화(一花) 이개성(二開性) 희귀종 태각(台閣) 백매

매림지갈梅林止渴

중국 고전소설의 걸작《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작가인 나관중의 「매림지갈梅林止渴」에 대한 이야기는 조조가 장수를 정벌하기 위해 행군했을 때 물이 떨어져 병사들이 고통을 겪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 조조가 병사들에게 ‘저 언덕을 넘으면 광활한 매실나무 숲이 있다.

그 매실은 아주 시고도 달아 너희들이 목을 축이기에 충분할 것이니 어서 힘을 내어 전진하도록 하라는 말을 들은 병사들이 매실의 신맛을 생각하며 입 안에 침이 고이므로 갈증을 이겨내고 전진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일화(一花) 이개성(二開性) 희귀종 태각(台閣) 홍매
일화(一花) 이개성(二開性) 희귀종 태각(台閣) 홍매

이정李定의 절명시 매화

조선 전기 종실宗室 가운데 강양군江陽君 이정李定(?∼?)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화를 얼마나 사랑하였던지 일생동안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이정이 죽음을 당하여 분매盆梅의 가지를 꺾어 코에 가까이 대고 향내를 맡으면서 매화 시 한 수를 짓고 싶었지만, 도저히 글씨를 쓸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옆에서 임종을 지켜보던 사위에게 절명시絶命詩를 받아쓰게 하였다.

이제 겨우 쉰 살이 되려는데 병이 드니 年將知命病相催
지붕 모퉁이 아득하고 마음은 아리고 서글프구나 屋角悠悠楚些哀
매화는 사람에게 병고가 생긴 것도 알지 못하고 梅蘂不知人事變
한 가지에 먼저 꽃을 피워 향기를 보내오네. 一枝失發送香來

이 시를 다 받아쓰고 난 뒤 그는 숨을 거두었다.

일생동안 가까이 두고 사랑하며 길러왔던 분매가 주인의 죽음을 바라보며 우선 가지 하나에 몇 송이의 꽃을 피워 청향淸香을 선사하고 있지만, 생의 마지막을 맞고 있는 이정에게 있어서는 ‘매화가 사람에게 변고가 생겨 죽게 된 것을 알지 못한다.’는 하소연을 하면서도, 결코 자신을 모른 체하지 않고 그의 죽음 앞에 꽃을 피워 향기를 보내주는 아름다운 보은報恩의 정을 느끼게 하는 시다.

이정은 매화를 좋아했을 뿐만아니라 거문고와 술을 좋아했으며,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가 죽을 때에 이정은 이 세 가지 물건을 함께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거문고와 《자치통감》, 술 항아리 하나를 묻어 주었다고 한다.

매실 열매
매실 열매

어무적魚無迹과 『청강시화淸江詩話』

조선조 연산군 때의 시인 어무적魚無迹(?∼?)에 대하여 조선중기 문장가였던 청강淸江 이제신李濟臣(1536∼1584)의 『청강시화淸江詩話』에 보면, 어렸을 때 어무적의 뛰어난 재주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어무적이 아버지를 따라 이른 새벽 절간을 지나갈 때, 산봉우리에 구름이 덮여 있는 것을 보고 시를 지어 보도록 했더니,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청산은 객이 오시매 예절을 차리어 靑山敬客至
백운白雲의 갓을 머리에 썼도다. 頭戴白雲官

그가 연산군의 폭정이 극에 달했을 때, 수 차례 상소를 올렸으나 허사였고 탐관오리들은 사복을 채우려고 가혹한 수탈을 서슴치 않았으며, 끝내는 매화나무의 열매인 매실을 강제징수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농부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매화이며, 사대부들이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고 좋아하던 매화를 무참히도 도끼로 찍어 버리는 절박한 현실을 지켜본 어무적은 매화를 쪼개는 노래 즉 〈작매부斫梅賦〉라는 장시를 지었다.

매화를 쪼개는 노래 斫梅賦

어무적魚無迹

세상에는 훌륭한 군자가 없고 世乏馨香之君子
시대는 뱀과 호랑이 같은 가혹한 법이 힘쓴다 時勢蛇虎之苛法
참혹한 정경은 숨은 꿩(숨어사는 백성)에게도 이르렀고 慘己到於伏雌
정치는 또 뿔 없는 양(힘없는 백성)에게 가혹하다 政又酷於童羔 -중략-
어찌하랴, 무지한 시골 농부의 奈何田夫無知,
도끼날에 욕까지 보게 된 것을 見辱斧斤.-생략-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보면, 남자의 생식기를 자르는 비극적 사건을 슬퍼하는 내용의〈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가 있다.

*「애절양」은 쓸데없는 전쟁을 일으켜 백성을 사지로 모는 당나라 지배층을 비판하고 군역을 면하기 위해 자신의 팔을 스스로 자른 비극을 「절비옹折臂翁」이란 작품을 통해 비판한 현실주의적 시 세계를 보여준 백거이白居易의 시 정신과 맥락이 닿아 있는 시이다.

애절양哀絶陽

정약용丁若鏞

갈밭마을 젊은 아낙 곡소리 길어라 蘆田少婦哭聲長,
관아 문앞에서 곡하며 푸른 하늘 향해 호소하네 哭向縣門號穹蒼。
지아비가 출정하여 돌아오지 못할 수는 있어도 夫征不復尙可有,
자고로 사내가 자기 양근 자른 것은 듣지 못했네 自古未聞男絶陽。 -이하생략-

매화꽃
매화꽃

정약용이 1803년(순조 3)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군정軍政의 횡포에 저항하여 장정이 자신의 양근을 자른 일을 듣고 슬퍼하며 지은 시로 《목민심서》에 수록되었다.

그때 갈밭마을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3일 만에 그 아이가 군보軍保에 올라 이정里正이 군포 대신 소를 빼앗아 가자 남편이 칼을 뽑아 자신의 남근을 잘라 버리면서 “나는 이 물건 때문에 이런 곤욕을 받는구나.” 하였다. 그 아내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근을 가지고 관가에 가서 울면서 호소하였으나 문지기가 막아 버렸다. “내가 이를 듣고 이 시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꽃가지
꽃가지

그 당시 군적軍籍에 기록된 사람에 대하여는 병역兵役을 수행하는 대신 군포軍布를 바치는 제도가 있었는데, 「백골징포白骨徵布」라 하여 죽은 사람을 군적軍籍에 실어 놓고 징세徵稅했던 일과 같이, 황구첨정黃口簽丁이란 이른바 갓난아이의 이름을 군적에 올려놓고 무자비하게 세금을 거둬들이는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세금을 바치기 힘들었던 사람이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식기를 손수 잘라 버리는 비극적인 참상을 읊은 시다. 지아비의 잘린 생식기를 들고 피를 흘린 채 관가에 나아가 울부짖는 아내의 처참한 모습이다.

당시의 암울했던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사례이며, 〈작매부〉와 함께 탐학 무도한 정치 상황을 고발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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