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등에 비췬 매화의 참모습(氷燈照賓宴)
​​​​​​​매화가지 끝에 매달린 달을 보며 읊다(月下詠梅)

전통 야매 꽃
전통 야매 꽃

조선시대 선비들의 매화 감상은 여러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는데, 지매地梅 즉 땅에 심겨진 매화로는 야매野梅가 있고 정매庭梅(뜰매)가 있으며, 분매盆梅와 밀랍매蜜蠟梅를 들 수 있다.

선비들의 탐매는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에서 부터 시작한다. 구구소한도란 매화나무 가지에 꽃봉오리나 꽃잎을 81개 그려놓고 동지 다음날부터 매일 한 개씩 붉은색을 칠해 나가다 여든한 번째 마지막 꽃잎을 칠하고 나면 매화가 핀다. 이때 선비들은 나귀를 타거나 혹은 걸어서 산야에 핀 매화를 찾아 나선다.

시동侍童은 돗자리에 먹이며 붓과 종이를 챙기고 술과 안주를 준비하여 따른다. 눈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깊은 산속에 들어가 고고呱呱히 피어있는 매화를 찾게 되면(답설심매

踏雪尋梅:눈을 밟으며 매화를 찾는다) 선비는 기뻐 시를 쓰고 술에 취하기도 한다.

이런 때에 남겨진 시가 다음과 같다.

눈 서리 흰 살결 고움을 도와..................霜雪助素艶
맑고 싸늘함이 뼈에 시리다.....................淸寒鐵人髓
너를 대해 내 맘을 씻나니........................對比洗靈臺
오늘 밤은 앙금 하나 없구나!..................今宵無點滓
                                   .....율곡栗谷 이이李珥

파교심매도
파교심매도

당시 장안의 선비들 사이에서는 매화를 심고 가꾸면서 해마다 매화에 대한 품평회를 열어서 명품 매화를 뽑기도 했는데, 수양매 품종 가운데 하나인 ‘정릉매’라든가 ‘월사매’가 조선시대 명품매화로 이름이 났다고 한다.

‘정릉매’는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가 묻혀있는 정릉 제사 옆에 있었는데 해마다 꽃이 피면 가지를 꺾어서 임금께 바치므로 이를 기이하게 여겼던 영조대왕의 성은을 입은 매화로 이름이 났으며, ‘월사매’는 조선시대 문신인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가 중국 사행사로 갔다가 웅어사熊御使와 내기 바둑을 두어 이기게 되었고 그 대가로 현황재顯皇宰(신종神宗)가 기르던 분매 하나를 얻어 귀국한 일이 있었다.

이 분매는 월사의 문인 민후건閔後騫에게 주어졌는데, 그 후 다시 황이장黃以章의 소유가 되었다가 1737년 후손 이정보李鼎輔(1693~1766)에게 돌아오게 되었던 명품매이다.

화옹원매도
화옹원매도

매화감상법에 대하여 조선후기 문신 김창협金昌協(1651∼1708)은 꽃 한 송이에서 태극의 이치를 즐기는 현인賢人, 고결하고 차가운 운치를 취하여 지취志趣가 같음을 즐기는 은사隱士, 매화의 빛깔과 향기를 즐기며 시흥을 돋우는 문사文士, 아름다운 여인과 매화를 옆에 함께 두고 귀한 술을 마시는 귀족 자제, 눈 속에서 봄을 혼자 차지한 듯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매화를 신기롭게 바라보는 속인俗人으로 구분하였다.

매화를 감상할 때는 여러 가지 상항에 따라서도 각기 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눈과 함께 감상함에 있어서는 특히 많은 매화도에 있어서 매설梅雪의 표현이 두드러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예로 (유매우설불정신有梅無雪不精神)이란 ‘눈이 없이는 매화의 도도하고 기품 있는 자태를 표현해 낼 수 없다.’ 라고 송宋나라 호매파扈梅坡(?∼?)가 갈파했으며, 역시 송대 노월盧鉞의 「매설쟁춘도梅雪争春圖」에도 눈과 매화의 깊은 기품을 나타내고 있다.

문봉선 월매도
문봉선 월매도

〈번광동설무翻光同雪舞〉란 ‘큰 눈이 날리는 것이 매화가 춤을 추는 것 같다.’ 라고 양梁나라 왕균王筠(482∼55)이 말했고, <은화란철난분악銀花亂綴難分萼〉은 ‘은빛의 눈과 꽃이 어우러져 분간하기 힘들다.’ 고 명明의 왕치등王稚登(1535∼1612)이 기록했다.

조선 초기 학자요 문신이며 생육신 가운데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은 “눈 밟고 매화를 찾아(답설심매踏雪尋梅)” 라는 제목의 시에서

한가지 두가지에 꽃소식 떨치더니   ................... 一枝二枝花信拂
세 송이 다섯 송이 벙글기 시작한다 ................   三點五點先破萼
서리 내린 달빛 아래 맑기 더욱 그지없어......... 霜前月下更淸絶
눈 밟고 찾아가 봄도 속되진 않을레라 ............... 踏雪幽尋也不俗

라고 하였다.

달 아래서 매화를 감상하는 예로는 중국의 송나라 때 시인 진여의陳與議(1090∼1138)가 “정녕 달 밝은 밤에는 그림자 비켜있는 모습을 보리라.(丁寧明月夜 記取影橫斜)”라고 하였고, 송나라 석도잠釋道潛(1043∼1106)이라는 사람은 “달빛 아래 무성한 가지가 향기롭고, 새벽이슬 맞은 꽃받침이 동그랗다(月浸繁枝香冉冉 露浮花萼曉團團)” 라고 했으며, 송나라 때 시인 두소산杜小山(?~1225)은 “여느 때처럼 창밖에 달빛은 비치는데, 매화꽃이 피어나니 정취가 남다르네(尋常一樣窓前月, 纔有梅花便不同)” 라고 했다.

김홍도 매화도
김홍도 매화도

분매는 조선 선비들 열에 아홉이 앞다투어 기를 정도로 크게 유행했던 완상의 대상이었다. 매화야 말로 선비들이 닮고 싶은 형상과 자질과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매를 감상했던 방법도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문인화가였던이윤영李胤永(1714∼1759)의 ‘빙등조빈연氷燈照賓筵’이라는 행사는 품격높은 매화 감상회로 유명하다. 그는 매화감상을 위해 사랑방에 모여든 친구들 앞에서 문갑 위에 매화분을 올려놓은 다음 물그릇에 물을 담아 마루에 내어놓아 얼게 한 후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촛불을 세우고 그 촛불이 얼음에 반사되어 은은하게 매화에 비취는 정경을 보게 하고 이를 시로 읊어 시축을 만들거나 묵매를 그리는 격조 있는 감상회를 가졌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그려진 묵매화가 유명한 이인상의 야매도夜梅圖이다.

이 밖에도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하고 있는 김농金農(1534∼1591)의 《세전서화첩世傳書畵帖》 「분매도」에 보면 일곱 명의 선비들이 괴기하게 생긴 둥치에서 새로 뻗은 가지에 곱게 핀 홍매를 감상하는 모습과 강희안姜希顏(1417∼1464)의 「절대삽병도」며, 李維新(?∼?)의 「가헌관매도可軒觀梅圖」에 보면 선비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활짝 핀 분매를 감상하면서 시작詩作을 통한 선비들의 풍류와 청덕淸德이 넘쳐나는 일상을 엿보게 한다.

조선 시대 화선畵仙이었던 김홍도金弘道(1745∼?)에게는 살림살이의 궁색窮塞함이 어쩔 도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항상 사람들 앞에서 가난과 궁핍窮乏함을 내색하지 않고 의연하게 처신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홍도를 찾아와 매화나무를 팔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거칠고 굵다란 줄기가 뒤틀리고 이끼가 나부끼며 성근 가지에 금방 필 것만 같은 하얀 꽃망울이, 아리따운 여인의 속살처럼 삐져 나올듯한 백매화였다.

단원은 그 매화가 갖고 싶었지만 당장에 살 돈이 없었다. 때마침 단원의 그림을 몹시 사랑하는 선비가 구세주救世主처럼 찾아와 단원의 그림 한 점을 청하고, 그림 값 삼천 냥을 내놓고 가는 것이 아닌가!. 뛸 듯이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한 단원은 그 돈 가운데 이천 냥을 주고 당장 매화를 사들이고, 팔백 냥으로는 술을 사서 친구들을 불러 매화를 감상하며 마셨다고 하는데 이때 친구들과 마신 술을 매화음梅花飮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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