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百花의 우두머리, 모든 꽃을 신하로 거느린 꽃의 제왕
​​​​​​​조선시대 선비들 열에 아홉이, 반하지 않을 수 없었던 매화

한국의 전통 백매
한국의 전통 백매

 

 

안형재 원장(83세)
안형재 원장(83세)

매화는 모든 꽃들이 잠들어 있는 추운 겨울(歲寒), 눈보라와 얼음 속에서 홀로 고고히 피어나, 독립특행(獨立特行)하는 꽃으로 예부터 선비들을 비롯한 문인 묵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해 왔으며, 건축과 공예, 회화와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은 《매화문화》를 형성해 왔다.

그러므로 공자는 매화를 가리켜 「사군자 가운데 으뜸(四君子之 首也)」이라고 하였으며, “바르고 깨끗한 선비(文人,雅士)는 반드시 매화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 정신이라는 것은 곧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의 정신이다.

매화에서만이 풍기는 생기가 넘치는 기운이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는 올곧은 정신이다.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은 불사이군(不事二君,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은 것)의 정신이다.

새벽녘 은은한 향기를 모두에게 풍기는 박시제중(博施濟衆)의 정신이다.

그것은 우리가 시각적으로 느끼는 꽃의 아름다움과 색깔에서 알 수 있고 향기에서도 실감하게 된다. 매화의 맑은 향기(淸香)는 다른 모든 꽃들이 풍기는 벌과 나비를 유혹하여 저의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교태로운 향기가 아닌 것은 이미 벌과 나비가 나오기 이전에 꽃이 피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또한 꽃의 색깔을 보면 독특한 백색 바탕에 광명을 머금고 있는, 경경(耿耿)한 지성의 빛은 따사로움이 감돌고 정감이 넘치며, 옥결 같이 그윽함이 넘쳐나는 빛이다. 그래서 옛 시인들은 이러한 빛을 ‘소질명(素質明)’ 또는 ‘천연백(天然白)’ 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러한 매화의 향기와 색상에서 문득 어떠한 선언적 의미가 담긴 중대한 계시 같은 것을 느끼게도 된다. 그 유연한 백매의 빛깔은 다른 모든 색을 끌어안을 수 있는 색 이전의 색이며, 진선미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매화를 봄의 전령사로 보는 것은 일반적인 시각이지만 유가(儒家)에서는 그 청한고절(淸寒苦節)에서 선비정신을 보게 될 것이고, 은사(隱士)에게 있어서는 탈속의 진면목으로 뜻을 품은 사람에게는 지사(志士)나 열사로도 보이게 될 것이다.

눈과 매화
눈과 매화

퇴계선생이 사랑한 ‘매화’

식물생리학적으로 매화는 같은 나무 같은 품종 같은 꽃끼리는 꽃가루가 묻더라도 수정을 하지 않는, 절의와 절조(節操)를 지닌 꽃으로 선비들이 이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매화를 혹독하리만큼(酷愛) 사랑한다고도 했다.

그는 매화를 형兄이라 부르기도 하면서 이슥한 밤 도산서당에 홀로 있을 때는 술상을 가운데 놓고 매화분과 마주 앉아 형님 한 잔, 나 한 잔 주고받으며 밤새 술 항아리를 비우기도 했는가 하면, 달밤에 핀 매화가 은은한 향내를 가장 짙게 풍기는 시각인 사경(四更, 밤 1시부터 3시 사이)에 매화나무 언저리를 배회하다가 한기가 들 때면 손수 고안해 만든 매화 문양이 새겨진 도자기 의자에 숯불 화로를 넣고 온기를 느끼며 감상했다.

선비와 장원화
선비와 장원화

매화가 선비의 꽃으로 불리는 이유

매화를 가리켜 선비의 꽃이라 하는 것은 선비가 장원급제를 했을 때 내려지는 장원화가 매화이며, 수많은 과거시험을 보는 사람들 가운데서 장원급제자와 세찬 눈보라 속에서 만난의 고통을 이겨내고 백화(百花) 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피어나는 매화를 동일시 하기 때문이다.

‘매화는 죽은 듯이 말라 비틀어진 가지에서 잎도 채 나기 전에 그 굳센 생명의 화신으로 꽃망울을 터뜨리기에 운치 있는 선비의 원만한 품격으로 사랑을 받는 꽃이다.

매화에서 얻은 교훈은 그 뒤틀어진 가지와 꽃잎에서다.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뒤틀린 가지는 인생에 있어서 세파에 시달려 온 연륜이라면, 연분홍 꽃잎은 지칠 줄 모르고 쉼 없이 솟아나는 진리에 대한 열정이요 사랑이다. 매화 가지에 꽃송이가 빽빽하게 있어서도 아니 되고, 가지가 교만하게 길쭉길쭉 뻗어서도 아니 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연륜과 그 연륜에서 오는 은근한 품격을 풍겨야 하기 때문이다.

매화의 고담(枯淡)한 아름다움이 노성한 숙덕(宿德)의 한가로운 자태라고 한다면, 학문과 경륜에서의 완전한 덕을 기약하는 선비들이 즐겨 이 꽃을 아끼고 사랑하여 서안(書案)머리에 두고 완상(玩賞)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매화 가지가 비치는 달밤의 창가에서 그 그윽한 향기를 즐기는 것은 더욱 운치있는 멋이라 할 것이다.’ 라고 신경준은 예찬했다.

눈속의 백매
눈속의 백매

만물의 봄을 되돌리는 꽃 ‘매화’

매화의 꽃 빛이 곱고 이름다우며 그 향기가 맑은 것은 풍설(風雪)로 비유되는 모진 풍상에 시달려 야위면서도 신고(辛苦)스러운 수련(修鍊)을 견디어 낸 결과인 것이다.

이렇듯 매화가 추위를 견디고 한 점(點) 꽃향기로 만물의 봄을 되돌리는 것은, 선비가 어려운 현실에 처(處) 해서도 절의(節義)를 세우고 만민에게 희망찬 새 시대를 열어 가듯이 만물을 소생(蘇生)시키는 박시제중(博施濟衆)의 공능(功能)을 가진 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남송 시대 대표적 우국시인이었던 육유(陸游, 1125∼1209)는 그의 「매화절구梅花絶句」라고 하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선비는 궁하면 절의를 드러내고.......士窮見節義
나무는 말라도 스스로 향기롭다.......木枯自芬芳

그래도 만물의 봄을 되돌리나니........坐回萬物春
이 한 점 꽃향기에 의지하여.............賴此一點香.

글 안형재

안형재 원장 (83)

학력 및 경력

- 연세대학교농업개발원
- 연세대학교교육대학원
- 한국매화연구원장
- 대한민국 매화분재명인(18-502)
- 국제매화학술회의한국대표
- KBS, SBS, CBS가정원예담당 방송위원
- 대한민국예술분재문화상 수상

- 8회중국매화전 분매부문 특별상 수상

저서 및 논문

-한국의 매화』『매화보』『매화를 찾아서』『한국의 분매』『선비마을 매화피어, 매화만필』『매촌수필집』『매화동산에 올라서』『내가슴에 매화를 심고, 매화梅花うめ공저(이어령외), 내가슴에 매화 한그루 심어놓고공저(손종섭)
-한국의 매화1999. 국제매화학술회의발표. 북경임업대학 학보게재
-한국의 고매와 명매2001. 국제매화학술회의발표. 북경임업대학학보게재
-한국의 매화품종2003, 국제매화학술회의발표. 북경임업대학학보게재
-한국의 전통 분매수형2007. 국제매화학술회의발표. 북경임업대학학보게재

 

*본지는 이번 호부터 매화전문가인 안형재 한국매화연구원장의 ‘매화예찬’을 10회에 걸쳐 연재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과 호응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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