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과잉관광과 부족한 문화재 예산, 상생의 해법 찾다

밀라노 두오모 성당 뒷면 광고 전광판
밀라노 두오모 성당 뒷면 광고 전광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유산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세계유산은 15개가 등재돼 있다.

그 중에서 우리고장 영주는 우리나라 목조건축에서도 큰 족적을 남긴 부석사(산사-한국의 산지승원)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부석사와 소수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됨에 따라 영주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국내외 세계유산 활용방안을 비교해 보도함으로써 우리고장 세계유산인 부석사와 소수서원의 활용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연재 순서>

[1] 영주의 세계유산, 우리가 살려야 할 소수서원과 부석사의 가치는
[2] 국내사례-수원화성지구와 남한산성지구 : 주민참여와 협력 사례
[3] 국내사례-백제역사유적지구와 경주역사유적지구 : 주민지원과 관광프로그램
[4] 해외사례-이탈리아 세계유산 도시의 관광산업
[5] 해외사례-이탈리아 세계유산도시의 문화재 보존 관리 실태
[6] 해외사례-이탈리아 세계유산도시의 주민 참여 활동
[7] 부석사와 소수서원의 보존과 활용, 경제적 가치 창출 모색

밀라노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
밀라노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

‘과잉관광’ 베네치아 유람선 정박 금지, 관광객 입장 제한 선택
‘최후의 만찬’ 최후까지 지켜낸 주민들의 자긍심...관광객 증대
부족한 문화재 예산 확충 대기업 후원으로 해결 ‘긍정적 효과’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1978년 6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53건의 문화유산과 5건의 자연유산이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전 국토가 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드물게 국가의 문화 유산 보호 의무를 헌법(제9조)에 명시하고 있으며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곳도 여러 곳이다. 어느 곳을 가든지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성당 안이나 박물관, 미술관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긴 줄을 서야 한다.

베니치아 풍경
베니치아 풍경

고난의 세월을 견뎌낸 ‘최후의 만찬’

밀라노에는 시내 한복판에 두오모 대성당을 비롯 여러 세계적인 문화유적이 있다. 그중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과 왼편에 붙어있는 도미니코수도원은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이 남아 있는 종교 건축물이다. 1980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우리 눈에 익숙한 이 그림은 예수를 둘러싼 12명의 제자를 소재로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고 말한 직후의 순간을 묘사한 것으로 1495년~1497년에 걸쳐 제작됐다. 예수의 머리를 소실점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작품의 구조가 돋보이고 르네상스 회화의 특징인 수학적 원근법의 결정판으로 평가하고 있다.

작품의 크기는 가로 9.1m, 세로 4.2m이다.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제자 12명의 움직임과 표정을 훌륭하게 포착해 그려진 이 그림은 당시 과거를 묘사하던 전통적인 방식을 파괴한 것으로, 몇 가지 관념을 뒤흔든 것이었다.

그러나 기름이 아닌 템페라(tempera)를 사용해 습기에 약한 두 층의 회벽에 작업했기 때문에 이후 물감의 박리가 나타나면서 작품이 많이 손상됐다. 나폴레옹이 밀라노를 침공했을 때는 작품이 있던 식당이 군인들의 마구간으로 사용돼 건물과 작품이 크게 훼손되기도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공중 폭격으로 성당 주변이 초토화됐지만 그림만은 살아남았다.

그동안 그림의 보존 프로그램이 반복 시행됐으며, 최근 20년간 복원 작업이 실시됐다.

현재 그림을 직접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3개월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관람 시간도 고작 15분으로 제한돼 있다. 사람의 호흡으로 소중한 작품이 손상될 것을 우려한 특별한 조치다.

이탈리아는 중앙정부 중심의 예산 운영을 벗어나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성과 위주의 단기적 발굴에서 벗어나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것을 문화유산 관리 원칙으로 삼고 있다. 특히 문화유산 주변 지역주민들과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그곳을 찾은 관광객들을 위한 관리 방안도 함께 마련하고 있다.

티켓 오피스(입장권발매소) 관계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주민들이 직접 모래주머니를 쌓아 폭격으로 부터 지켜냈던 문화유산이어서 자긍심이 크다”며 “온라인으로 예약을 해야지만 입장할 수 있고 최근 들어서는 3개월 전부터 입장권이 매진될 정도로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관광객
관광객

베네치아의 과잉관광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 지방 사람들이 기원전 5세기경에 이민족의 침략을 피해 세운 해상 도시이다. 과거 지중해 국가들과 무역을 독점하면서 15세기까지 강력한 해상 왕국으로 군림했다. 이 당시 여러 문화가 유입된 결과 르네상스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조화를 이룬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산 마르코 광장을 비롯해 마르코 성인의 유해가 안치된 산 마르코 대성당, 틴토레토와 베로네제의 회화가 있는 두칼레 궁전 등이 대표적이다. 118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진 베네치아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배로, 주민들과 관광객들을 위한 수상 버스와 수상 택시 등이 운행된다. 이곳을 찾는 연간 관광객만 2천만 명이 넘는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과잉관광’으로 인해 자연환경과 문화재 훼손을 방치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대형 유람선 운항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대형 유람선 운항을 전면 금지했다. 대형 크루즈선 등은 본토에 있는 컨테이너항을 이용해야 한다. 선박들이 지나 다니면서 베네치아 유적들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형 유람선이 베네치아에 들어올 때마다 오지 말라는 시민들의 반대 시위에 부딪혀야 했다. 급기야 유네스코는 지나친 과잉 관광으로 인해 2017년과 2021년 이탈리아의 지역 문화유산이 망가지고 있다며 ‘위험에 처한 세계 유산’ 명단에 이를 올릴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내년부터는 베네치아에 들어오려는 당일치기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입장료를 부과한다. 입장료는 성수기, 비성수기에 따라 하루 1인당 3~10유로다. 단, 베네치아에서 숙박하는 관광객의 경우 입장료를 내지 않는다. ‘과잉 관광’을 막기 위한 베네치아 시의 조치이다.

연간 2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리면서 베네치아 경제에는 큰 도움이 됐지만 물가와 집값 모두 올라 현지인들에게는 큰 고통이다. 베네치아 인구가 1950년대 17만5천여 명이던 것이 5년 전 6만 7천명, 2021년 연말 5만 5천여 명으로 급감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국제지속가능관광위원회 Randy Durband CEO는 “베네치아 시는 수익이 생기니 정박금지를 원하지 않았지만 유네스코의 청원으로 대형 유람선 정박 금지가 최근에야 이뤄졌다”며 “유네스코는 등재를 취소하고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는 힘 밖에 없다. 취소하겠다고 하니 이탈리아 중앙정부가 개입해 정박금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관광객
관광객

문화재 보존을 위한 기업의 후원

시내 중심에 위치해 있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고 있는 밀라노 두오모 성당 건물 뒤편 외벽에는 대형 광고판 2개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이 중 하나는 대형 멀티 전광판으로 우리나라의 삼성이 설치한 것으로 삼성 광고만 송출되고 있다. 문화재 건물에 상업광고판이 버젓이 붙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이탈리아의 문화재 정책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문화재 보존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과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선 국가주도 정책과 예산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가의 후원이 있었듯이 문화유산 보존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기업들이 지원하고 있다.

기업들이 문화재 보수복원에 참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직접 후원하는 스폰서와 메세나 방식이다. 지자체와의 협약에 따라 스폰스 기업에 선정되면 후원금 규모에 따라 일정 기간 해당 문화유산을 활용해 광고할 수 있다. 메세나(Mecenat)란 문화예술·스포츠 등에 대한 원조 및 사회적·인도적 입장에서 공익사업 등에 지원하는 기업들의 지원 활동으로 기업의 기부금을 밝힐 수는 있지만 이를 이용한 광고를 할 수 없다.

2008년 금융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탈리아 정부는 2010년부터 이같은 문화재 예산 확충방안을 자구책으로 내놓았지만 오히려 기업들의 문화재 보존 참여를 활성화 시키는 긍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

2012년 패션잡화브랜드인 토즈(Tod’s)는 콜로세움 보수공사에 약 390억 원에 달하는 복원비용을, 이탈리아 명품 업체 ‘펜디(Fendi)’는 트레비 분수 보수를 위해 약 31억 원을 지원했다. 2017년 구찌(Gucci)는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인 피렌체의 보볼리 정원의 복원과 개선 작업을 위해 200만 유로를 지원했고 명품 보석업체 ‘불가리’ 역시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스페인 계단의 보수·복원비용으로 150만 유로를 부담하는 등 기업들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기업들이 문화재 복원 사업 후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일인데다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이라는 긍정적 이미지 효과를 얻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실제 세계 금융위기의 이후 문화부의 예산과 인력 감축, 문화유산보전 정책에 큰 문제가 발생했지만, 문화재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높은 시민의식과 문화재보존에 대한 기업들의 적극적인 후원이 이뤄져 단순히 예전 모습을 복원하는 것을 넘어, 그 가치를 키워가고 있다.

오공환 기자/서현제 발행인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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