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매주 한 번 서예 지도로 고향 방문하는 서예 대가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죽령 고개 경계석 글 등 고향 곳곳에 글씨 남긴 것이 영광
지도받은 분들, 서예가로 큰 성취 이뤘을 때 가장 큰 보람

영주는 선비의 고장이다. 지방자치단체 영주시의 브랜드가 ‘선비의 고장’이다.

선비의 여러 이미지 중의 하나가 글이고 그 글을 형상으로 나타낸 게 붓글씨이기도 하다.

석진원 서예가는 영주 출신의 세계적 서예 대가이다.

석진원 서예가의 호는 금헌(琴軒)이다.

그는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초대작가, 중국 섬서미술관 초대작가, (사)국민예술협회 부이사장, 한국서예협회 감사, KBS를 비롯한 TV출연,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및 대학의 서예 강사를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21년 세계유산인 동파문자로 제2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국회의장상을 수상했다.

2020한국대표단체 초대작가 초청전(6개 단체)에서 한국예술문화대상(대회장 - 전 국무총리 이수성)을 수상했다. 석진원 서예가는 국전창시자인 진도 손재향 서예가, 학남 정환섭 서예가의 서예 학맥을 잇고 있다. 그는 전서, 예서부문의 한국 1인자로 불린다. 한중수교 후 한국을 대표하는 서예가 5인에 추대되어 북경에서 전시회를 연 것을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 등 국내외에서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세계적 서예가이다.

2022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에 제576돌 한글날 기념으로 ‘인삼 세계를 품고 미래를 가다’를 가로 3m 세로 20m에 큰 붓으로 써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고향에 들린 석진원 서예가를 영주남부초등학교 뒤편의 금헌서예연구실에서 만났다.

종합예술대상 수상작-서해어룡동
종합예술대상 수상작-서해어룡동

실제의 연세보다 10년은 더 젊어 보이십니다.

별말씀을요. 매일 운동을 합니다. 서예도 건강해야 힘차게 구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백세 시대이니 저는 아직 젊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현장에 동석한 금헌연서회 이병구 전 회장이 “선생님은 운동을 많이 하고 약주를 과하게 한 다음 날에도 아침 운동을 빼시지 않는다”며 “테니스는 수준급으로 친다”고 말했다.

서예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는지요?

어렸을 때, 한학에 밝으시던 할아버지가 붓글씨 쓰시는 걸 보고 따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저의 그런 모습에 대견해하셨습니다.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한다잖아요.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붓글씨를 쓰기에 소홀하면 혼을 내시기도 한 할아버지셨습니다.

처음엔 붓글씨를 쓰고 나면 칭찬에, 학교 친구들과 선배들보다 더 잘 써서 상을 받으면 우쭐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붓글씨 쓸 때 남의 칭찬이나 평가보다 붓글씨 쓰기 자체가 좋아졌습니다.

서울특별시의회의장상 수상작-관제시죽
서울특별시의회의장상 수상작-관제시죽

할아버지가 서예 선생님이셨나요?

할아버지는 서당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치셨습니다. 한학자이셨지요. 서예가의 길을 걷던 분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옛 어른들에게 붓글씨는 생활에 일부였으니 붓글씨를 잘 쓰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서예의 길은 당시 서예가 정환섭 선생을 만나면서부터 걸었다 할 수 있습니다. 정환섭 선생은 당시 최고의 서예가셨으며 국전의 심사위원장을 역임하셨습니다. 그분의 기명 제자가 되고 나서 스스로 서예의 길을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직장생활도 하셨는 걸로 압니다.

젊은 시절, 직장생활로 10년 좀 넘게 주택공사에 근무했습니다. 현 재경영주향우회 박찬흥 회장이 직장 후배입니다. 그때에도 서예를 했습니다. 서예를 하면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도 풀렸습니다. 신기한 건 당시 서예는 제게 스트레스를 푸는 차원을 넘어서서 서예 자체가 좋았습니다.

국희의장상 수상작-동파문자로 쓴 유지자사경성
국희의장상 수상작-동파문자로 쓴 유지자사경성

그렇다면 언제부터 서예를 본격적으로 하셨는지요?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였을 겁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서예의 길에 매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내를 비롯해 가족의 반대가 있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친구들과 친척들도 걱정했다 합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고 하니 걱정이 많았을 겁니다.

가족으로서는 물론 생계 걱정도 있었겠지요. 자신도 제 앞날에 대한 걱정을 없을 수도 없었지요. 그렇지만 생계는 어떻게든 꾸려지리란 희망 속에 사표를 냈습니다.

순탄하게 서예가의 길로 매진하셨나요?

웬걸요. 서실을 열고 나니 사실 막막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만 서실을 열고 나니 속으로 걱정이 밀려왔다고 할까 그랬습니다. 잘하는 게 서예이니 서예에 더 천착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문하생이라도 오면 정성을 기울여 지도했습니다.

지난해 말에도 큰 상을 받으시는 등 연속으로 큰 상을 받으셨습니다.

2021년 제2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세계유산인 동파문자로 작품을 써서 국회의장상을 받았습니다. 동파문자는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상형문자인 중국 운남성 나씨족 문자로 세계유산에 지정됐습니다. 이 동파문자로 ‘有志者事竟成’ 여섯 자를 썼습니다. ‘사람이 하고자 하는 뜻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란 뜻으로 닭털 붓으로 썼습니다.

2020년에는 한국 대표단체 초대작가 초청전에서 ‘한국예술문화대상’을 받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말씀인 ‘서해어룡동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盟山草木知)’를 초간예서체(楚簡隸書體)로 쓴 작품이었습니다. ‘바다에 서약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뜻을 알아준다.’는 글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진해 방문 시 충무공의 이 말씀을 따라 써 유명해진 말이기도 합니다.

2021 서울특별시의회가 후원한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초대작가전에 ‘관제시죽(關帝詩竹)’을 출품하여 서울특별시의회 의장상을 받았습니다. 관제시죽은 삼국지의 관우가 조조에게 몸을 의탁할 때 유비에게 보낸 그림 편지를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작품명-축복
작품명-축복

매주 고향에 오셔서 서예를 지도하신다고요?

매주 고향에 오다가 코로나19 때문에 한동안 2주에 한 번 오고 있습니다.

영주에서 제가 처음 서실을 연 것은 영광고 동창회와 관련 있습니다. 2005년으로 기억합니다. 영광고 동창회에서 하망동 공설시장 인근에 위치한 동문회 사무실 한쪽에 서실을 열어주었습니다. 서실에서 나오는 수익은 영광고 재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됐습니다.

동석한 금헌연서회 이병구 전회장이 “금헌 선생께서 고향의 서예 발전을 위해 20년도 넘게 매주 영주에 내려오고 계신다”며 “이러한 열정은 지역의 서예 수준 발달에 큰 기여를 했다”고 덧붙였다.

영주에 남긴 작품을 몇 개 소개해주시지요.

충청북도 단양으로 넘어가는 죽령 고개에 경계석 글을 썼습니다. 큰 글자로 ‘嶺南關門竹嶺’ 작은 글자로 ‘여기까지 慶尙北道 榮州市입니다.’입니다. 소백산 연화봉에 제가 쓴 영주 연화봉 경계석이 있습니다. 영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탑, 영주중학교 60주년 기념비, 영광고등학교 50주년 기념체육관 교훈 제호 등 다수가 있습니다. 제겐 영광이지요.

소·태백산 시산제에 참여해 ‘산행 무사 안녕’ ‘경북 신나라’를 커다란 붓으로 쓰는 퍼포먼스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 3월 초인데 무척 추웠습니다. 풍기인삼축제 행사 때에도 축제의 성공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제일 보람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보람의 느낌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서예와 관련해서는 제게 지도받은 분들이 서예가의 길을 걷고 큰 성취를 이루었을 때이지요. 코로나19 이후 전시회도 많이 주춤해졌습니다만 저와 제게 지도받은 분들이 참여하는 전시회가 금헌연서회의 전시회를 비롯해 매년 여러 번 열렸습니다. 문하생들의 전시회에 저도 찬조 전시하곤 합니다.

고향의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15년 전 전 교총의 창립 60돌 행사에서 교육이 나라발전의 근본이라는 뜻이란 ‘교본’ 휘호를 쓴 게 기억납니다. 지식은 가르칠 수 있으나 각자의 정신과 가고자 하는 길은 다양하고 자신이 노력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치열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서예도 그렇습니다. 필법은 전할 수가 있으나 정신과 흥취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필법만으로는 서예 감상에 한계가 있습니다. 정신이 없으면 글씨가 비록 잘 되었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감상할 수 없고, 흥취가 없으면 글자 형태가 아름답다 해도 글씨에 생명력을 느끼기 힘듭니다.

석진원 서예가의 프로필

- (현)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 (현)사단법인 국민예술협회 부이사장
- (전)한국서예협회 감사
- (전)중국섬서미술관 초대작가
- (상)2021년 국회의장상, 2021년 서울특별시의회 의장상, 2020년 한국대표단체 초청전 한국예술문화대상(전 국무총리상)
- (서예 대중화를 위한 출연) 영화 ‘식객’ 출연, KBS조선왕조실록, 아리랑TV 출연 등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오공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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