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가 직접 편차·교정한 제자 황준량의 문집 「금계집」
퇴계 “금계는 총명하고 뛰어나 어떤 일도 잘 할 수 있다”

금계 황준량선생추모비(풍기 금계리 금선정 인근)
금계 황준량선생추모비(풍기 금계리 금선정 인근)

1556년 퇴계는 봉정사에서 제자 금계의 문집을 교정하다
금계가 남긴 1천여 수의 시 중 대표적인 시는 ‘거관사잠’
거관사잠은 청렴하게, 어진마음, 공정과 상식, 부지런하라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과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1517〜1563년)은 열일곱 살 차이의 사제지간이다.

퇴계가 금계의 능력에 대해 “‘총명(聰明)하고 뛰어나며 어떤 일을 맡겨도 잘 할 수 있는 능력(能力)이 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황준량의 타계(他界) 소식에 실성(失性)하여 길게 부르짖으며 물을 짜내듯이 눈물을 흘렸다. “하늘이 이 사람을 빼앗음이 어찌 이다지도 빠른가? 참인가 꿈인가? 놀랍고 아득하여 목이 메는구나”라며 통곡했다는 사실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금계가 타계한 뒤 퇴계는 제문(祭文)과 만사(輓詞)를 짓고 비석에 ‘금계황공지묘(錦溪黃公之墓)’라 쓰고, 명정(銘旌)에 ‘오호망우금계황선생(嗚呼亡友錦溪黃先生 슬프다! 돌아간 벗, 금계 황선생이여!)’라고 직접 썼을 정도로 안타까워하고 그의 학문을 높이 평가했다. 스승이 제자에게 곧바로 ‘선생’이라 일컬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며, 임금에게 보고한 기록(승정원일기) 또한 전한다.

퇴계가 친필로 작성한 금계에 대한 제문(祭文)
퇴계가 친필로 작성한 금계에 대한 제문(祭文)

퇴계 초옥에 금계 내방

금계가 퇴계를 방문하였을 때 퇴계가 지은 시 하나를 소개한다.
제목은 ‘退溪草屋黃錦溪來訪(퇴계초옥황금계내방)’ ‘퇴계의 초가집을 찾은 금계’이다.

溪上逢君叩所疑(계상봉군고소의) 냇가서 그대 만나 궁금한 점 토의하며,
醪聊復爲君持(탁료료부위군지) 다시 그대 위해 차린 막걸리를 함께하네.
天公卻恨梅花晩(천공각한매화만) 매화꽃 늦게 필까 하늘이 걱정하는가,
故遣斯須雪滿枝(고견사수설만지) 잠깐 눈 내려 가지마다 활짝 핀 눈꽃이네.

‘궁금한 점을 토의했다’는 말이 첫 구절에 나온다. 두 사람은 만나면 성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금계 황준량의 친필 시, 삼락정차도산운(三樂亭次陶山韻)
금계 황준량의 친필 시, 삼락정차도산운(三樂亭次陶山韻)

퇴계가 금계집을 교정하다

1556년 1월 퇴계는 조정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가던 중 병으로 사직소를 올리고 광흥사(학가산), 봉정사(안동)에 머물며 강학을 했다. 봉정사에 머무는 동안 퇴계는 제자 금계 황준량의 문집 「금계집」을 교정하고 봉정사 ‘서루’에서 ‘명옥대’와 같은 시를 남겼다.

此地經遊五十年(차지경유오십년) 이곳에서 노닌 지 오십년
顔春醉百花前(소안춘취백화전) 젊었을 적 봄날에는 온갖 꽃 앞에서 취했었지
只今攜手人何處(지금휴수인하처) 함께 한 사람들 지금은 어디 있는가
依舊蒼巖白水懸(의구창암백수현) 푸른 바위, 맑은 폭포는 예전 그대로인데
白水蒼巖境益奇(백수창암경익기) 맑은 물, 푸른 바위 경치는 더욱 기이한데
無人來賞澗林悲(무인래상간림비) 완상하러 오는 사람 없어 계곡과 숲은 슬퍼하네
年好事如相問(타년호사여상문) 훗날 호사가가 묻는다면
爲報溪翁坐詠時(위보계옹좌영시) 퇴계 늙은이 앉아 시 읊던 때라 대답해주오.

퇴계는 제자 금계가 남긴 시문과 저작을 수년 동안 일일이 넘기며 편차를 정하고 교정했다. 이는 황준량의 「금계집」 초판본이 1566년 사후 3년 만에 일찌감치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금계집과 목판(소수박물관 소장)
금계집과 목판(소수박물관 소장)

금계 황준량의 거관사잠

「금계집」에는 그가 남긴 시가 1천여 수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황재천 금계종손께 “금계 선생의 시 중 대표적인 시?”에 대해 여쭈었다. 황 종손은 “‘금계황준량선생추모비’에 새겨진 ‘거관사잠(居官四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해 줬다.

금선정 북편 30m 지점에 ‘금계선생추모비’가 있다. 정면에 ‘금계황준량선생추모비’라 쓰고, 그 우측 남쪽 면에 ‘거관사잠’이 새겨져 있다. “거관사잠이 뭐냐?”고 여쭈니, “관직에 있으면서 지켜야 할 네 가지 잠언(箴言)”이라고 설명했다.


1잠 持己以廉(지기이렴)

제1잠은 持己以廉(지기이렴)으로 ‘자신을 청렴하게 유지해야 한다.’이다.

女汚不潔(여오불결) 네가 오염되면 깨끗하지 못하나니
染未白(사염미백) 실도 한번 물들면 희게 되지 않네
名節難持(명절난지) 명예와 절개는 유지하기 어렵지만
神明可欺(신명가기) 천지신명을 속일 수가 있겠는가?
省事寡慾(성사과욕) 일을 덜어내고 욕심을 적게 가지며
頤神養德(이신양덕) 정신을 기르고 덕을 길러야 한다네
四知一琴(사지일금) 양진의 사지와 조변의 일금일학을 가지면
淸風古今(청풍고금) 고금에 맑은 바람처럼 청렴해 지리라


2잠 臨民以仁(임민이인)

제2잠은 臨民以仁(임민이인)으로 ‘백성을 인자하게 대하여야 한다.’이다.

大德曰生(대덕왈생) 하늘과 땅의 큰 덕을 생이라 하니
心茁萌(인심줄맹) 어진 마음이 여기에서 싹이 튼다네
親親愛民(친친애민) 어버이를 친애하고 백성을 사랑하여야
與物爲春(여물위춘) 사물로 더불어 봄처럼 살린다네
飢溺猶已(기약유이) 굶주리거나 물에 빠진 백성을 자기같이 여기고
痛痒一視(통양일시) 아프거나 가려움도 내 몸처럼 보아야 하네
胡忍不忍(호인불인) 어찌 차마하지 못할짓을 참지 못하여
瘠民肥身(척민비신) 백성을 야위게 하고 자신만 살찌울까?


3잠 存心以公(존심이공)

제3잠은 存心以公(존심이공)으로 ‘마음을 공정하게 지녀야 한다.’이다.

公聽斯明(공청사명) 공평하게 들어야 이에 분명해 지고
偏信闇生(편신암생) 한쪽만 믿으면 어둠이 생겨나네
平心虛己(평심허기) 마음을 공평하게 하고 나를 비우면
衆善攸止(중선유지) 많은 착한 것이 머무를 수가 있고
用智徇私(용지순사) 지혜를 쓰고 사사로움을 주창하면
邪侫抵巇(사녕저희) 사악과 아첨이 틈새를 파고든다네
本地日月(本地日月) 본래 해와 달처럼 공평한 마음을
毋爲慾蝕(무위욕식) 욕망이 갉가먹게 하지 말지어다

 

4잠 莅事以勤(이사이근)

제4잠은 莅事以勤(이사이근)으로 ‘부지런히 일에 임해야 한다.’이다.

分憂百里(분우백리) 사방 백리의 땅에 군수가 되었다고
食豐衣侈(식풍의치) 음식을 풍성하게 하고 의복 사치하게 하라?
縷絲顆粒(누사과립) 옷을 짜는 실과 밥으로 먹는 알곡식은
盡出民力(진출민력) 모두가 백성들 힘에서 나온 것이라네
怠事曠官(태사광관) 일을 게을리하고 직분을 다하지 않으면
宜剌素餐(의랄소찬) 마땅히 시위소찬을 한다고 풍자하리라
警枕汗背(경침한배) 잠 깨우는 베개로 두렵게 느껴야 할 것이니
莅事敢懈(리사감해) 공무에 임하여 감히 게으르게 하겠는가?

 

금계선생 추모비에 새겨진 '거관사잠'(居官四箴)
금계선생 추모비에 새겨진 '거관사잠'(居官四箴)

현대인이 보는 거관사잠

옛 성인들이 강조한 관리의 4가지 마음이 ‘거관사잠’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아침 저녁 뉴스를 보면서 “금계 황준량 선생께서 어쩜 이렇게 딱 필요한 말씀을 하셨을까?”라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하늘나라에 계신 금계 선생께서 공직자들에게 “청렴하게 살라, 어진 마음으로 살라, 공정과 상식에 맞게 살라, 부지런히 맡은 일에 충실하라”고 하시는 말씀이 들리는 듯하다.

강구율(동양대) 교수는 ‘금계선생탄신500주년 기념학술논문’에서 “금계는 거관사잠(居官四箴)을 통해 공직자가 가져야 할 덕목을 제시하고 있다”면서 “이 사잠(四箴)은 조선시대 관리에게 해당되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공직자들에게도 여전히 귀감이 되고,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규범과 덕목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허권수(경상대) 명예교수는 ‘한자로 보는 세상’에서 “퇴계 이황 선생의 훌륭한 제자인 금계 황준량 선생이 지은 「거관사잠(居官四箴)」이란 글이 있다. 관직에 있으면서 지켜야 할 네 가지 경계해야 할 교훈이다. 4자로 된 8구가 한 수인데, 모두 4수이다.

첫째 수는 ‘청렴함으로써 자신을 유지하라.〈持己以廉〉’, 둘째 수는 ‘어짐으로써 백성들에게 다가가라.〈臨民以仁〉’, 셋째 수는 ‘공정함으로써 마음을 간직하라.〈存心以公〉’, 넷째 수는 ‘부지런함으로써 일을 맡아라〈事以勤〉’이다. 이 네 가지만 잘 지켜도 어떤 자리를 끝낼 때 성공적으로 물러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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