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정씨 후손들이 현조(顯祖) 선양 위해 발간한 책들

모우재에 전시된 현조(顯祖) 선양을 위해 발간한 문집
모우재에 전시된 현조(顯祖) 선양을 위해 발간한 문집

월헌공은 나주정씨 중시조, 부(賦) 시(詩) 등 700여 수 글 실려
우담 정시한은 모우재 건립한 정범진이 우러러 숭모하는 현조

해좌공은 풍기군수, 개성유수, 형조판서, 홍문관의 제학 등 역임
연민 이가원이 외재에게 글 배울 때 줄포 검암정사에서 공부

영주 줄포에 건립된 모우재(慕愚齋) 내 가승관(家乘館)에는 나주정씨 후손들이 현조(顯祖) 선양사업으로 발간한 책들이 전시돼 있다. 정해창 희현당 주손의 안내로 가승관에 전시해 둔 국역 문집과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원본 문집들을 열람했다.

기자는 원본 한문본은 구경만하고, 국역 문집만 한 아름 안고 집으로 왔다. 가지고 온 책은 금성세고(金城世稿), 월헌집(月軒集), 우담전집(愚潭全集), 해좌집(海左集), 왜재(畏齋) 정태진(丁泰鎭)의 생애와 학문 등이다. 며칠 동안 밑줄을 그어가며 탐독했다. 보면 볼수록 참으로 ‘방대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우재를 설립한 정범진 박사는 늘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지식을 얻어 견문을 넓히고, 많은 학우를 사귀어 즐거움을 누리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기자는 시(詩) 소(疏) 서(書) 기(記) 비명(碑銘) 갈명(碣銘) 지명(誌銘) 지문(誌文) 제문(祭文) 축문(祝文) 애사(哀辭) 행장(行狀) 제발(題跋) 등을 공부하는 후학들이 이 책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 내용을 짧게나마 소개하려고 한다.

신편신역 금성세고(金城世稿)
신편신역 금성세고(金城世稿)

금성세고(金城世稿)

경상북도 영주의 줄포(茁浦)라는 동네는 400년 이래 나주정씨 집성촌으로, 그곳에는 대사헌공의 자제 중 맏형 참봉공파의 검암공(儉巖公) 후손들과 셋째 사성공파의 우담공(愚潭公) 후손들이 후사(後嗣)를 주고받으면서 종파를 초월하여 온 동네가 한집안처럼 화목하고 평화롭게 모여 사는 곳이다.

그곳에서 1939년〜1960년 사이 집안 어르신들이 모여 ‘금성세고’를 간행하기로 결의하고 집안 어른들이 직접 실무를 맡아 진행한 끝에 마침내 ‘금성세고’를 이 세상에 내놓았다.

그 후 2008년 정범진(丁範鎭) 근역(謹譯)으로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국역 ‘금성세고’를 상재(上梓)하게 됐다.

‘금성세고’는 나주정씨 여러 조상들의 문장을 묶어서 편찬한 합동 문집으로 1)서령공(署令公, 諱子伋) 유고(遺稿), 2)교리공(校理公, 諱壽崑) 유집, 3)공안공(恭安公, 諱玉亨) 유집, 4)충정공(忠靖公, 諱應斗) 유집, 5)전첨공(典籤公, 諱胤祚) 유고, 6)고암공(顧庵公, 諱胤禧) 유고, 7)초암공(草庵公, 諱胤祐) 유고, 8)도헌공(都憲公, 諱胤福) 유고, 9)동원공(東園公, 諱好善) 유집 등이 실려 있다.

신역(新譯) 월헌집(月軒集)
신역(新譯) 월헌집(月軒集)

신역(新譯) 월헌집(月軒集)

신역 월헌집은 2005년 월헌 선생의 16대손 정범진 박사가 감수하고, 정상홍 동양대 교수·이성호 성균관대 연구교수가 번역하여 출판했다.

월헌공(月軒公, 丁壽崗, 1454〜1527)은 파란 많던 연산군·중종 시대를 살았던 나주정씨 중시조이다. 월헌공은 1474년(성종5) 진사시에 합격하고, 1477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전교서(典校署)에 소속됐다. 이후 정언·병조좌랑·대사성·대사헌·병조참판·동지중추부사를 역임했다.

신간 월헌집에는 18대손 정명식의 간행사, 16대손 정범진이 적은 간행 경위, 동양대 정상홍 교수의 ‘월헌 정수강의 사상과 문학’ ‘영조 대왕의 어제 어필’에 이어 월헌집 권1에 부(賦) 10수, 시(詩) 150수를 비롯하여 2,3,4권에는 500여 수의 글이 실려 있다.

국역 우담전집(愚潭全集)
국역 우담전집(愚潭全集)

국역 우담전집(愚潭全集)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 선생은 모우재를 건립한 정범진 박사가 우러러 숭모하는 현조이다. 그래서 서재 이름을 모우재(慕愚齋)라고 지었다 한다.

우담은 인조3(1625)년에 서울 회현방(會賢坊)에서 태어나 숙종33(1707)년 원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부친 정언황(丁彦璜, 1597〜1672, 소수서원 수학:1627입원)은 관찰사를 지냈듯 대대로 벼슬하여 서울의 양반가 중 명문이었다. 그는 부친의 권유로 여러 차례 벼슬길로 나갈 기회가 주어졌으나 모두 사양하고 학문에만 매진했다. 그의 〈사칠변증(四七辨證)〉은 한국 철학사상사에서 상당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국역 우담집은 정범진(성균관대 총장 역임)·이민홍(성균관대 대학원장 역임)이 감수하고, 번역은 김동석(성균관대 연구교수) 외 11명이 참가해 2007년 나주정씨 월헌공파 종회에서 펴냈다. 우담집 Ⅰ책 권1에는 간행사, 해제(解題), ‘우담 선생의 인간상과 성리학 사상(윤사순 고려대 교수)’ 논문이 실리고, 이어서 시(詩) 4수, 소(疏) 14수, 권2에 소 5수, 권3에 소 4수, 편지 41수, 권5에 편지 14수, 권6에 15수, 권7에 잡서3, 권8에 사칠변증(四七辨證), 권9에 잡서8편, 제문7, 묘비1, 권10에 보고들은 언행 외 5편이 실려 있다.

우담집 Ⅱ책 권11에는 연보(年譜), 권12에는 만사(輓詞) 20편, 제문 19편 권13에 이상(貳相) 강신의 일기 외 16편, 권14에 정곡공의 무고를 밝히는 기록 9편, 권15에 산중일기(山中日記) 상(上), 권16에 산중일기 하(下)와 정범진의 발(拔, 발문)이 실려 있다. 발문(跋文)이란 책의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이나 간행과 관련된 사항 등을 짧게 적은 글을 말한다.

우담의 10세손 정범진 박사는 발문에서 “1911년 영주군 영주읍 상줄리 송오대(松梧臺)에서 선생의 7세손 현감공(諱大稙)에 의해서 목판본(12권 6책)을 간행했다”면서 “이번 국역본 우담전집은 한글로 번역해서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하였으니 그 의의는 대단히 크다”고 적었다.

국역 우담집Ⅲ에는 영인(影印) 우담전집(愚潭全集)으로 ‘우담선생문집 목판본(木版本)’을 실었다.

국역 해좌집(海左集)
국역 해좌집(海左集)

정범조 찬 해좌집(海左集)

국역 해좌집은 정범진 감수, 이성호 이채문 남종진 공역으로 2014년 발간했다.

해좌공(海左公, 諱範祖, 1723〜1801)은 조선왕조 영·정조 시대를 걸쳐 생존했던 나주정씨 현조(顯祖)로 자는 법정(法正) 호는 해좌,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1759년 (영조35)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63년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해 사직서직장(社稷署直長)이 됐다. 그 후 공조참의, 풍기군수, 개성유수, 형조판서, 예문관·홍문관의 제학을 지냈다. 정범진 당시 월헌공파 종회장은 “해좌집은 공께서 65세에 이르렀을 때, 그동안 열심히 지었던 문장들을 잘 정리해서 상자에 넣어 두면서 문집이 상제(上梓)될 훗날을 기약하고 있었다. 그 후 문집은 곧 간행되지 못했고, 선생이 돌아가신 뒤에도 바로 상재하지 못하고 있다가 공이 서세(逝世)하신지 66년 뒤인 1867년에 공의 증손(曾孫, 정대식 황주목사)에 의해서 비로소 간행하게 됐다”고 썼다.

이때 발행된 해좌집은 총 39권 10책으로 해좌공의 ‘자서(自敍)’와 이명적(李明迪, 형조판서)의 서(序)가 있다. 1권에서 16권까지는 시(詩)이며, 권17에서 권39는 문(文)이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국역 해좌집에는 1권에 정범진 회장 발간사, 해좌집 해제에 이어 1,2,3,4권에 시(詩) 소(疏) 서(書) 기(記) 등 수많은 시문을 담고 있다.

연민이 외재에게 글을 배운 검암정사(儉巖精舍)
연민이 외재에게 글을 배운 검암정사(儉巖精舍)

정태진의 생애와 학문

이 책은 2022년 4월에 나온 책이다. 연민학회 ‘연구총서1’로 출판되었는데 우리나라 한문학계 권위자 여러분들이 참여했고, 특히 동양대 이정화 교수도 참여한 책이다.

연민학회 회장 허권수는 “한문학계 태두(泰斗)인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은 학문을 이루는 과정에서 가장 오래 모시고 배웠던 대표적인 스승이 외재(畏齋) 정태진(丁泰鎭) 선생”이라며 “주로 경학과 시문창작을 배웠다”고 말했다.

외재의 족후제 정범진 박사는 축사에서 “외재 선생은 구한말에 84년간 재세(在世, 1876-1959)하셨던 큰 학자요 독립운동가이며 재야의 올곧은 선비였다”며 “선생의 대책(對策)이나 논설(論說) 그리고 문학창작 등에 나타난 중심사상은 우국충정과 더불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사상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썼다.

외재 정진태의 생애와 학문
외재 정진태의 생애와 학문

책장을 넘기면 허권수의 축시 다섯 수가 나오고, 제1부 나주정씨 줄포문중과 외재 정태진[허권수], 제2부 외재 정태진의 시문학[심경호], 외재의 선유구곡시에 나타난 산수인식[이정화], 제3부 외재 정태진의 개혁의식과 독립운동[김문식], 정태진의 선택과 독립운동사에서 가지는 위치[김희곤], 제4부 외재 정태진과 연민 이가원의 사제관계[함영대] 등이 실려 있다.

줄포마을에 검암정사(儉巖精舍)가 있다. 옛날 다산 정약용이 다녀가기도 했고, 연민 이가원이 외재 정태진에게 글을 배울 때 이 정사에서 공부했다. 검암 정언숙이 원주 치악산 아래 세웠던 검암정사가 쇠퇴해지자 외재가 1925년에 줄포로 옮겨 세웠으며 이곳에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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