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 선비

채기중(蔡基中), 1873-1921

상주시 이안면 소암리에서 채헌락(蔡獻洛)과 곡부공씨(曲阜孔氏) 사이에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극오(極五), 호는 소몽(素夢)이다.

한학을 배워 76편의 한시를 짓는 등 문학적 소양이 있었고 억울한 일을 그냥 바라보지 못하는 의협심을 갖고 있었다.

1905년 을사늑약 소식을 듣고, 이듬해 풍기읍 서부리로 와서, 1913년 풍기광복단을 조직하고, 1915년 박상진이 조직한 조선국권회복단과 더불어 대한광복회를 조직하면서 경상도지부의 책임을 맡아, 회원 및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7년 ‘대구 권총 사건’으로 총사령 박상진이 체포되자, 채기중은 사실상 광복회를 이끌어갔다.

하지만 친일 부호들의 외면으로 자금 모집이 원활하지 않자, 채기중은 경상북도 관찰사를 지낸 악질 부호 장승원 처단을 주도하였다. 이때 붙잡힌 채기중은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21년 7월 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대한광복단(풍기광복단)

1913년 의병 출신 독립운동가들, 계몽운동가, 영남 지역의 유림 등 여러 계층이 참여하였던 비밀결사 조직이다. 광복단은 민족반역자 응징, 일제 관헌 습격, 친일 부호 총살 등의 항쟁도 벌였으나, 주된 일은 국내에서 군자금 및 청장년을 모집하여 만주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주요 단원으로는 채기중을 비롯하여, 유창순(庾昌淳,천안)·류장렬(柳璋烈)·한훈(韓焄,청양)·강순필(姜順必,풍기)·김병렬(金炳烈)·정만교(鄭萬敎)·김상오(金相五)·정운홍(鄭雲洪,괴산)·정진화(鄭鎭華,예천)·장두환(張斗煥,천안)·황상규(黃尙奎,밀양)·이각(李覺) 등이 있다.

대한광복단은 1915년 7월 15일 대구에서 결성된 조선국권회복단의 일부 인사와 결합하여 대한광복회로 발전하였다.

유적지 및 공연 안내

대한광복단 기념공원
․풍기읍 산법리 376번지

대한광복단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4년 영주시민들이 성금으로 건립됐으며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현충 시설이 있는 공원이다.

기념비를 세우면서 조성되었다. 공원에는 기념관과 대한광복단기념비, 추모탑, 평화통일기원탑, 무공수훈자회전공비가 있다. 기념관에는 민족 수난과 독립운동(제1전시관), 대한광복단(제2·3전시관), 영주시 독립운동사(제4전시관), 선열과 함께하는 사진 체험 공감(제5전시관)이 있다.

뮤지컬 「의열」

․최대봉/작, 연출
․일시: 2022년 6월 9일 오후 7시, 10일 오후 4시․7시
․장소: 영주예술문화회관(까치홀)

대한광복회의 결성과 투쟁을 그린 작품이다. 대한광복단의 채기중, 조선국권회복단의 박성진을 비롯해 고종, 이상룡, 안중근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40여 등장인물의 고뇌와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는 뮤지컬로 15곡의 노래와 춤을 보여주는 대작이다.

 

[미니픽션]
부끄럽지 않게, 부끄럽지 않게

”일을 꾸밈은 사람에 달려있고 이루어짐은 하늘에 있다. 나라를 구하려는 의, 열사들을 구하고 조직하고 훈련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움은 역시 금전이다. 여기에서 생각 끝에 그대들 친일 부호들에게 청하여 원조를 구하게 되었다. 이 경고를 위배하거나 불응하면 귀하의 목숨이 경각에 매달리게 될 것이니, 우리의 경고를 예사로운 강도들의 갈취와 동일시 말고, 본회 간사인(幹事人)의 지시를 따라 즉시 이행하기 바란다. 만일 반동(反動)으로 놀거나 본 회원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는 자 있으면, 즉시 결사단을 파견하여 처결할 것이니 십분 유의하기 바란다. 비밀결사 대한광복단.“

군자금 모금 통문을 보냈지만, 성과는 없었다. 일본 경찰의 검속이 심해지면서 군자금 모금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친일부호들은 군자금 모금에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피하기만 했다. 그런데다가 대구에서는 통문을 보내고 모금하러 간 단원들이 체포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풍기의 대한광복단과 대구의 조선국권회복단이 대한광복회로 힘을 합친 뒤 1년 만에 찾아온 위기였다. 채기중과 박성진은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젠 결심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몇몇을 처분해야만 나머지 놈들도 군자금을 내놓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이번엔 장승원부터 처단해야겠소. 경상도 관찰사까지 지낸 이 음흉한 자가 성금을 내겠다고 우릴 불러놓고는 왜놈들에게 밀고해서 동지들이 체포되었소. 이놈에게 겨레의 응징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지난 거사 실패로 아마 경계병이 붙어 있을 것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이번 일은 소몽께서 직접 추진해 주십시오. 반드시 처형하여 민족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보여 주십시오. 지난 4월 놈들이 달성공원에 신사를 짓고 8월쯤에 달성공원에서 큰 행사를 하려고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1916년 7월 그믐날을 거사 일로 잡았다. 박성진은 약목에 사는 손기찬에게 권총을 맡겨 두기로 했다. 채기중은 강순필에게 노좌에 사는 담력이 남다른 임봉주와 의병 활동으로 몸이 다져진 천안에서 온 유창순을 소집하라고 했다. 강순필도 이강년(李康年) 의진(義陣)에 참가했던 의병 출신이었다. 둘은 그동안 수차례 주변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으러 다녔었다. 지난 겨울엔 자금 탈취를 위하여 일본인이 운영하는 영월 중석 광산에 광부로 위장하고 잠입하기도 했었다.

1913년 풍기에서 조직된 광복단은 만주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 양성을 위한 군자금 모금과 무기 구매, 그리고 동지의 규합에 목표를 두었다. 그것은 그해 만난 한훈 때문이었다. 그는 만주의 길림(吉林)에서 활동하면서 국내를 오가며 활동하던 이였다. 그를 통해 만주의 명망가들과 소통하면서 광복단을 결성하게 되었다.

1910년 일제에 국권을 잃어버린 뒤 국내의 의병 운동 조직은 항전의 기반을 상실하자 대부분 만주로 건너가 그 곳에 새로운 항일운동의 기지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 무렵 풍기는 새로운 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북(以北)에서 십승지(十勝地)를 찾아온 정감록을 신봉하는 이도 있었지만, 소백산 전투에 참여했던 의병들도 많았다. 그래서 새로운 이들이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 위해 숨어들기가 쉬웠다.

우선 행동 강령부터 만들었다.

우리는 대한독립 광복을 위하여 우리의 생명을 희생함은 물론, 우리가 일생 목적하지 못할 때는 자자손손이 계승하여 원수 일본을 완전히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할 때까지 절대 변하지 않고, 적을 죽이기 위해 노력할 것을 천지신명에 맹세한다. 대한광복단의 투쟁방략을 다음과 같이 수립 공포한다.

하나. 부호의 의연 및 일본인이 불법 징수하는 세금을 압수하여 이로써 무장을 준비한다.
하나. 만주에 사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전사를 양성한다.
하나. 일인 고관 및 한인 반역자를 수시 수처에서 처단한다.
하나. 무력이 완비되는 대로 일본인 섬멸전을 단행한다.
하나. 본회의 군사행동·집회·왕래 등 일체의 연락기관의 본부를 상덕태상회에 두고, 한만(韓滿) 요지와 북경·상해 등에 여관 또는 광무소를 두어 연락기관으로 한다.

6월 25일 조선총독부 건물 기공식이 있었다는 보도가 신문에 났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얘기할 수 없었다. 속으로만 다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죽음으로 원수일본 몰아내리라! 우리의 대한 광복은 목숨 다 바쳐서 해야만 하는 일, 천지신명 맹세코 원수 일본 몰아내리라!’

7월 그믐, 8월 그믐 두 차례나 잠입을 시도했지만, 많은 사람의 왕래와 삼엄한 경비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10월, 초대 총리였던 데라우치가 일본 내각 총리대신에 임명되면서, 하세가와가 새 총독으로 왔다고 했다. 그리고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무조건 실시하기로 했다.

강순필과 임봉규는 마을 입구에 있는 장승원의 방앗간과 창고에 불을 질렀다. 불길이 올랐다. “불이야!” 하는 고함 소리와 함께 장승원 집의 하인들과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틈을 타서 임봉규가 먼저 장승원의 집에 뛰어들어 주변을 살피며 손짓을 했다. 채기중과 강순필, 유창순은 방으로 뛰어들었다.

“웬 놈들이고. 보초. 보초.”

강순필은 허둥지둥 방문을 나서던 장승원을 잡아 무릎을 꿇린다.

“이놈, 장승원. 왜놈들에게 알랑거리고 동포들의 고혈을 짜 얻은 재물이 오래 갈 줄 알았더냐? 우리는 대한광복단이다. 민족의 이름으로 너를 처단하러 왔다.”

“이놈들이? 여가 어딘 줄 알고. 보초! 보초!”

세 사람은 총을 꺼내 들었다. 그제야 장승원은 “살려주소. 살려주소.” 한다.

“나 경상도 관찰사를 한 사람이오. 재물은 달라는 대로 줄 테니까. 목숨만은 살려주시오. 제발.”

채기중은 경고장을 꺼내 펼쳐 보이더니, 장승원의 얼굴로 던진다.

“광복을 외치는 것은 하늘과 사람이 모두 도리에 부합하는 일. 너의 큰 죄를 꾸짖고 동포에게 경고하노라. 원수를 처단한다. 민족의 이름으로.”

강순필과 유창순도 총을 겨누며 외쳤다.

“이 버러지 같은 놈 동포의 이름으로 처단한다.”

“대한광복회의 이름으로….”

불난리로 분주하고 시끄러웠던 장승원의 집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세 발의 총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경고장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경고! 조국광복을 하자는 것은 하늘과 사람의 같은 뜻이니, 이 큰 죄를 성토하여 우리 동포를 경계하노라. 오직 우리가 광복을 외치는 것은 하늘과 인간의 도리에 부합하는 일, 너는 어찌 나라와 백성을 팔아 네 잇속만 취하는가? 이제 너의 큰 죄 꾸짖고 이로써 동포에게 경계하노니, 대한광복회가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한다. 대한광복회 만세! 만세!

글 김덕우 작가
참고: 송지향 『영주영풍향토지』, 최대봉 뮤지컬 ‘의열’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