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임금 친정기념 어제에 신하들 화답 시 ‘어제친정갱진첩’

‘어제친정갱진첩’은 당시 승정원 주서 유익지가 받았던 것으로
영조가 친필 어제를 내리고 신하들이 화답 시를 지어 올리다
유익지는 순흥 돌다리 출신 1762년 식년문과 갑과 제2인 급제

 

(1) 어제친정갱진첩 표지(현재 소수박물관 소장)
(1) 어제친정갱진첩 표지(현재 소수박물관 소장)

영주 순흥 돌다리(石橋里)

춘호 대감(영의정 春湖 柳永慶, 1550∼1608)이 희여골(영주시 풍기읍 白洞)의 창원황씨 황응규(문과군수 松澗 黃應奎, 1518~1598)의 딸한테 장가를 가서 과거 공부를 시작한 지 3년만인 23살에 문과에 급제했다.

이러한 연유로 이곳 희여골이 창원황씨 주요 유적지라 할 수 있다.

그 뒤 병마수군절도사(兵馬水軍節度使)로 영남을 다스릴 때 명나라장수 양경리(楊經理)와 안동의 이모두(二毛頭=斗毛嶺)에 올라 70리 밖의 순흥을 바라보면서 노후에 이쪽에 와서 살기로 생각하고 사방을 사급(賜給) 받아 작은 집을 지으니, 이곳이 태장(台庄)이라 순흥에서 5리 되는 곳이다.

그곳 지명을 망정동(忘情洞)이라 하였고, 또 한상골(漢相谷)이란 지명도 남아 있는데 그것은 한양(漢陽)의 한(漢) 자와 영상(領相 영의정)의 상(相) 자를 따서 한상골(漢相谷)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정승이 살던 집을 평장각(平章閣)이라 했는데, 류씨(버들)는 물이 있어야 한다고 지금은 이 동네를 평장계(平章溪)라고 부르고 있다. 류영경의 둘째 아들 류흔(柳忻)의 자손들이 지금까지 돌다리에 살고 있다. 여기 나오는 갱진첩을 받은 류익지는 류흔의 6세손이다.

(2) 영조 임금 어제(御製)와 어필(御筆)
(2) 영조 임금 어제(御製)와 어필(御筆)

‘어제친정갱진첩’이란

어제친정갱진첩(御製親政賡進帖)에서 어제(御製)란 ‘임금이 몸소 글을 짓는다’는 뜻이고, 친정은 영조 임금이 친정(親政)을 시작한 후 경연에서 시구를 내리는 것을 말한다. 갱진(賡進)은 임금이 지은 시가에 신하가 화답해 지은 시가를 임금에게 바친다는 뜻이다.

이 어제친정갱진첩은 조선 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친정을 기념해 지은 시에 신하들이 화답한 시를 모아 수록한 어제(御製) 친정갱진첩이다.

(3)-① 병조판서 신 원인손 갱진(화답하여 올린 시), ② 이조판서 신 박상덕 갱진(화답), ③ 이조참판 신 정존겸 갱진(화답), ④ 행승정원 도승지 신 김종정 화답(갱진)
(3)-① 병조판서 신 원인손 갱진(화답하여 올린 시), ② 이조판서 신 박상덕 갱진(화답), ③ 이조참판 신 정존겸 갱진(화답), ④ 행승정원 도승지 신 김종정 화답(갱진)

본 갱진첩은 1770년(영조46) 경연에 동석했던 세손을 비롯한 신하들에게 어제를 내리고, 참석자들에게 임금의 운(韻)에 따라 작시에 화답(갱진)한 시를 책으로 엮은 서첩으로, 영조의 친필이 있어 한시 및 서체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갱진첩은 당시 승정원 주서였던 순흥 출신 유익지(柳翼之, 1733~1786)가 받았던 것으로, 2005년 1월 7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64호로 지정돼, 충주시 문화동 소재 전주류씨(全州柳氏) 낙봉공파(駱峰公派) 종중에 소장돼 있다가 2012년 종중 대표 류대수(전릉부원군종회장)씨와 류재희(주손)‧류준희(후손,소수서원도감)‧류창수(종중,향토사학자)에 의해 유물의 고향인 순흥으로 돌아와 소수박물관에 기탁됐다.

(4)-① 병조참판 신 송문재 화답, ② 이조참의 신 김상익 화답, ③ 병조참의 신 변득양 화답, ④ 승정원좌승지 신 김치공 화답
(4)-① 병조참판 신 송문재 화답, ② 이조참의 신 김상익 화답, ③ 병조참의 신 변득양 화답, ④ 승정원좌승지 신 김치공 화답

어제친정갱진첩 개요(槪要)

이 갱진첩은 1770년(영조 46) 6월 20일(갑오일)에 왕이 친히 집경당(集慶堂)에 나아가 심관(沈鑧)·이적보(李迪輔)·이우철(李宇喆)·여선형(呂善亨)·노성중(盧聖中) 등의 도목정사(都目政事)를 행하고 “차정복금기여료(此政復今豈予料, 이 정사 다시금 회복될 줄 내 어찌 헤아렸으랴), 수단친점모년심(隨單親点暮年心, 단자마다 친히 점검하는 늙은이의 마음이로다)”라는 칠언시(七言詩)를 친제해 내리고, 입시한 여러 신하에게 화답 시를 짓게 하고 음식을 내린 내용이다.

(5)-① 병조참지 신 신경준 화답, ② 이조정랑 신 김광악 화답, ③ 병조정랑 신 송덕기 화답, ④ 병조정랑 신 조시겸 화답
(5)-① 병조참지 신 신경준 화답, ② 이조정랑 신 김광악 화답, ③ 병조정랑 신 송덕기 화답, ④ 병조정랑 신 조시겸 화답

이때 어제에 갱진한 인사로는 병조판서 원인손(元仁孫, 1721∼1774), 이조판서 박상덕(朴相德), 이조참판 정존겸(鄭存謙, 1722∼1794), 승정원 도승지 김종정(金鍾正), 병조참판 송문재(宋文載, 1711∼?), 이조참의 김상익(金相翊), 병조참의 변득양(邊得讓, 1723∼1801), 승정원 승지 김치공(金致恭), 병조참지 신경준(申景濬, 1712∼1781), 이조정랑 김광악(金光岳), 병조정랑 송덕기(宋德基), 병조정랑 조시겸(趙時謙), 이조좌랑 윤면승(尹勉升), 이조좌랑 홍빈(洪彬), 병조좌랑 이만식(李萬軾), 병조좌랑 어석령(魚錫齡), 승정원 주서 임희우(任希雨), 예문관 검열 오정원(吳鼎源), 예문관 검열 유의(柳誼), 그리고 승정원 주서 유익지 등 20인이다.

이 갱진첩은 영조가 친정에 임한 정치적 내용뿐만 아니라, 영조의 친필이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당시의 정치 상황과 인물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6)-① 이조좌랑 신 윤면승 화답, ② 이조좌랑 신 홍빈 화답, ③ 병조좌랑 이만식 화답, ④ 병조좌랑 신 어석령 화답
(6)-① 이조좌랑 신 윤면승 화답, ② 이조좌랑 신 홍빈 화답, ③ 병조좌랑 이만식 화답, ④ 병조좌랑 신 어석령 화답
(7)-① 승정원 주서 신 류익지 화답, ② 승정원 주서 신 임희우 화답, ③ 예문관검열 신 오정원 화답, 
(7)-① 승정원 주서 신 류익지 화답, ② 승정원 주서 신 임희우 화답, ③ 예문관검열 신 오정원 화답, ④ 예문관검열 신 류의 화답

임금의 어제와 신하들의 화답

사진 (1) 어제친정갱진첩 표지(현재 소수박물관 소장)
책의 크기 가로 23.5cm, 세로 33.5cm. 보존상태 양호함.

사진 (2) 영조 임금 어제와 어필
“차정복금기여료(此政復今豈予料, 이 정사 다시금 회복될 줄 내 어찌 헤아렸으랴), 수단친점모년심(隨單親点暮年心, 단자마다 친히 점검하는 늙은이의 마음이로다)”라는 칠언시(七言詩) 어제(御 製)를 내리고, 입시한 여러 신하에게 화답시를 짓게 했다.

사진 (3)-① 병조판서 신 원인손 갱진(화답하여 올린 시)
“기쁨을 다루는 비와 이슬 임금님의 덕을 적시고 부끄럽구나 감형(鑑衡) 다하여 성심(聖心)에 부응합니다.”

② 이조판서 신 박상덕 갱진(화답)
“요령(堯齡) 게으르지 않고서 병사(明四)에 응(應)하고 친비(親批) 처다봄이 즐거워 재심(在心)이 간(簡)합니다.”

③ 이조참판 신 정존겸 갱진(화답)
“다투어 쳐다보니 어묵(御墨)에는 전형(銓衡)이 비치우고 우러러 알게됨은 인천(仁天)의 우로(雨露)의 마음입니다.”

④ 행승정원 도승지 신 김종정 화답(갱진)
“군공(君工)의 즐거운 낫 임금님 묵(墨) 쳐다보고 큰 정사 편음(編音)에 성심(聖心)을 우러럽니다.”

사진 (4)-① 병조참판 신 송문재 화답
“다행히도 제신(諸臣)을 따라 말석(末席)에 참여하여 천묵(天墨)을 쳐다보게 되어 즐거운 마음 갑절입니다.”

② 이조참의 신 김상익 화답
“신공(臣工)이 우러러 사륜(絲綸)을 내리심을 체득하고 보묵(寶墨) 모두 우로심(雨露心)에 젓습니다.”

③ 병조참의 신 변득양 화답
“성상(聖上)을 받든 것이 삼무(三無)이나 선부(選部)에 신칙하고 친(親)히 편전(便殿)에 임(臨)하시니 천심(天心)을 우러럽니다.”

④ 승정원좌승지 신 김치공 화답
“대정(大政)에 근림(勤臨)하시는 성의(聖意)를 알게 되니 신륜(宸綸)을 중칙(重飭)하시니 신심(臣心)도 갑절됩니다.”

사진 (5)-① 병조참지 신 신경준 화답
“성교(聖敎)가 간절하여 가리고 가린 곳에 신공(臣工)의 누군들 천심(天心)을 채득치 않으리까.”

② 이조정랑 신 김광악 화답
“오늘 공경하며 쳐다보니 보묵(寶墨)이 새롭고 매사(每事)를 친정(親政)하시는 성심(聖心)을 우러럽니다.”

③ 병조정랑 신 송덕기 화답
“때를 밝히고 교화에 강화됨을 많은 신(臣)들의 정성이요 대정(大政)에 친림(親臨)하시니 성심(聖心)을 우러럽니다.”

④ 병조정랑 신 조시겸 화답
“다행히도 외람되게 승필(乘筆)의 앞자리에 배석하니 일월(日月) 같이 넓게 밝은 성심(聖心)을 우러럽니다.”

사진 (6)-① 이조좌랑 신 윤면승 화답
“저녁을 마치도록 외람되게 친정(親政)의 자리에 배석하니 군공(君工)들 모두가 성인(聖人)의 마음을 알겠사옵니다.”

② 이조좌랑 신 홍빈 화답
“붓을 잡고 경연에 올라 성악(聖渥)에 저젓고 요년(堯年)에도 근정(勤政)하시는 천심(天心)을 우 러럽니다.”

③ 병조좌랑 이만식 화답
“성명(聖明)이 해와 같이 사사로이 비침이 없으니 감격한 랑관(郞官)들 병필(秉筆)의 마음입니다.”

④ 병조좌랑 신 어석령 화답
“처음으로 연석(筵席)에 올라 은택(恩澤)을 입으니 이날의 신장(宸章)은 성심(聖心)을 우러럽니다.”

사진 (7)-① 승정원 주서 신 류익지 화답
“열줄 윤발(倫綍)이 군공(君工)에 우뚝 솟고 무더위에 친림(親臨)하신 성심(聖心)을 우러럽니다.”

② 승정원 주서 신 임희우 화답
“손춤 추며 보묵(寶墨)을 쳐다보니 군정(君情)이 즐겁고 성교(聖敎)가 간절하여 우로(雨露)의 마음입니다.”

③ 예문관검열 신 오정원 화답
“궁연(宮筵)에서 정사를 보시니 방금 군(君)이 축하드리고 천점(天點)으로 은혜를 펴심도 또 성심(聖心)입니다.”

④ 예문관검열 신 류의 화답
“여름 달에 친림(親臨)하시어 서정(庶政)을 신칙하시니 신공(臣工)의 공경이 솟아 신심(宸心)을 우러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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