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이석간의 경험의학(經驗醫學)과 식치법(食治法)

명(明)황제가 하사했다는 '이석간 고택' 일부
명(明)황제가 하사했다는 '이석간 고택' 일부

식치(食治)란 음식을 이용하여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
「이석간식치방」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한 의학관을 제시
이석간은 고향을 지키면서 인술을 베풀고 선비 기품 지닌 명의

우리가 사는 영주는 유교의 성지요 선비의 고장으로 역사를 잇고 미래를 열어가는 한국 대표 유교 도시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또한 천하명의 이석간의 고향으로 그가 남긴 경험방 덕에 마을마다 집집마다 전통 식치법 한두 가지는 다 가지고 있는 고을이기도 하다.

기자의 집에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온 식치법 몇 가지가 있다.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전해주셨고, 어머니는 또 며느리에게 손부에게 전해준 대표적인 식치(집집마다 거의 다 있는)는 된장, 청국장, 시래기(무청)이다.

명(明) 황태후 치료의 전설이 묻은 '천도쌍잔'
명(明) 황태후 치료의 전설이 묻은 '천도쌍잔'

이석간경험방과 식치법

이석간경험방 가운데 음식류(飮食類), 수양법(修養法), 기식법(忌食法) 등의 내용은 질병을 미리 예방하고 평소 건강을 기르는 것을 중요시하였음을 보여준다.

예로부터 음식을 이용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발전시켜 왔다. 이를 식치(食治)라고 한다. 여러 식치방 중 ‘이석간식치방’에서는 특이하게도 밥이나 죽의 형태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밥과 죽을 이용한 이석간의 식치방은 현대에 와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전국 최초로 건립된 지방공립의국 '제민루'
전국 최초로 건립된 지방공립의국 '제민루'

죽으로 치료한 사례

이석간경험방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죽이 사용되었다. 죽의 주 재료에 따라 멥쌀(米), 찹쌀(糯米나미), 좁쌀(粟米속미), 녹두(菉豆), 율무(薏苡仁억이인) 등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되었다. 이 외에 특수한 효능을 발휘하기 위해 밀(小麥소맥), 생동쌀(靑粱米청량미), 검은참깨(胡麻호마), 들깨(水荏子수임자), 팥(赤小豆적소두) 등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쌀을 주재료로 사용한 죽 처방의 경우에는 단독으로 사용된 예가 없으며 반드시 다른 약재들과 함께 사용되었다. 반면 여타의 잡곡을 사용한 경우에는 다른 약재들과 함께 사용된 예들도 있었지만 단독으로 사용된 예가 비교적 많았다.

주치증에 있어서도 찹쌀의 경우 임부의 요각통에 주로 사용되었고, 좁쌀은 모두 비위(脾胃) 질환에 집중되어 사용되었다. 녹두의 경우 성질이 차기 때문에 열성 질환을 목표로 하였고, 율무의 경우 경맥을 소통시키는 작용이 높이 평가되었다.

시즙(豉汁시즙)은 약 자체로 사용되기보다는 탕을 끓이거나 죽을 끓이는 데 사용되었다. 시(豉메주 시)는 약전국이라고 하여 음식으로 따지자면 지금의 된장이나 청국장과 유사한 것이다. 시즙이 탕과 죽의 재료로 많이 사용된 것은 약효를 발휘하면서도 음식의 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밥으로 치료한 사례

첫째, 가루로 만든 약재를 밥에 섞어 먹는 방법(米飯調服)이 있다.

이 방법은 멥쌀을 재료로 한 죽 식치방과 유사한 성질의 것으로 약재를 투약하기 위한 방법으로 밥이라는 형태를 선택한 것들이다.

이것은 자극성이 있는 약재들을 거부감 없이 복용하기 위한 방편이자 소화흡수를 보조하려는 의미가 담겨있다.

둘째, 잡곡을 이용하여 밥을 지어 먹는 방법이다. 잡곡에는 생동쌀, 좁쌀, 기장, 율무 등이 사용되었다.

이들은 다른 약물을 더하지 않고 밥만 지어 먹는 것이 공통적인데 곡물 자체의 약성을 응용하여 약효를 살리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순수한 식치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밥을 지어 환부에 붙이거나 문지르는 방법을 사용했다. 밥을 이용한 식치방은 끼니를 대체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음식에 대한 기본지식

이석간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한 의학관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미역의 경우 독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술은 미역의 맛이 짜고 독이 없다고 했던 기존의 견해와 다른 것이다. 또 이석간은 오리에 대해서도 성질이 따뜻하여 위(胃)를 기를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기존 의서를 보면 오리는 오히려 성질이 차갑다고 기술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임상 경험의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향약 사용 경험이 축적됨에 따라 의학적 견해가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정보로 보인다.

‘이석간경험방’ 음식류의 기재 내용에 보면, 녹두는 오장(五臟)을 조화롭게 하지만 성질이 차가우므로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 무는 기(氣)를 내리고 곡식을 소화시키고 담(痰)을 없애며, 기운이 막힌 근원을 치료한다. 무청은 기운을 가라앉히고 오장을 다스린다. -이하생략-

또 기식법(忌食法) 기재 내용에 보면, 땅에 떨어져 하룻밤 지난 것과 벌레나 개미가 먹은 것은 먹지 말아야 한다. 눈이 붉은 생선은 회로 먹지 못한다. 돼지고기를 물에 담갔을 때 뜨는 것은 먹지 말아야 한다. 붕어와 맥문동을 함께 먹으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 -이하 생략-

이석간의 경험방상-신성미의 식치방
이석간의 경험방상-신성미의 식치방

이석간경험방의 가치

신성미(외식산업학 박사) 식치원장은 유의(儒醫) 이석간(李碩幹,1509~1574) 경험방에 등장하는 약이 되는 선비 음식을 연구해 <이석간경험방상-죽과 밥을 이용한 식치방>을 출간하는 등 한국 식치 연구의 1인자다.

신 원장은 ‘영주의 기록문화유산인 이석간경험방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약과 요리는 모두 사람들의 “건강을 회복시킨다.”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500년 전 우리 영주의 민간 의서인 이석간경험방 속에도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회복시키는 약 280여 조의 약과 요리가 결합된 음식처방전인 식치방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석간식치방은 곡류나 기타 식자재를 사용해 재료를 다듬고 배합하고 계측하는 복잡한 서양 레시피와 달리 한두 가지 식자재로 증상에 대비하거나 면역력 회복에 주안점을 두는 밥과 죽 형태인 단방(간단한 처방)이 주종을 이룬다.

그 외에도 장수, 역병, 액운을 쫒는 처방은 물론 박탁(수제비류) 김치, 각종 찜, 탕, 나물, 정과 등 디저트류까지 기록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효능을 강조하되 맛도 포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조리법이 상세하게 서술된 전통조리서에 비해 민간의서의 특성상 신체의 증상과 대비되는 처방전 성격이 강하지만 동시대의 경북 북부지역 고조리서의 유사한 음식 조리법을 이해한다면 맛은 물론 건강도 지킬 수 있는 훌륭한 가치를 지닌 기록물임은 자명하다.

책 내용의 구성으로 볼 때 병이 나기 전 예방 일상식이 다수이며 어려운 관찬의서와 달리 격식을 차리지 않았고 주로 민간에서 사용하기 쉽게 고안되었으며 영주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자재가 대부분이라 경북의 색채를 강하게 띤다.

또한 사대부신분의 실존 인물이 저술했으나 언문(한글)을 혼용하여 지배계층이 아닌 일반백성들을 위한 식치방임을 알 수 있으며 이석간 이전 유사한 형태의 경험방서가 보이지 않고 이후 조선 중후기 많은 생활백과서나 민간의서에 영향을 끼쳐 지역의 소중한 기록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사의경험방(四醫經驗方)’
‘사의경험방(四醫經驗方)’

이석간의 후예들

지금도 영주에는 이석간의 의학관과 선비정신을 이어가려는 후예들이 많다.

김덕호(한의학 박사) 영주시립노인전문요양병원장은 “이석간 선생은 영주가 낳은 명의로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분”이라며 “그는 천하명의의 명성을 얻어 경주나 한양으로 진출할 수 도 있었지만 끝까지 고향을 지키고 인술을 베푼 의인(義人)이었다.

그는 또 당대 자신의 업적을 사양한 것 또한 겸양의 선비정신이었다.

유명한 ‘사의경험방(四醫經驗方)’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후학들에 의해 출간된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끝으로 그는 욕심 없는 참 선비였다. 과거를 포기한 선비였고 돈을 탐하지 않은 고명한 선비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고 말했다.

영주 우리한의원 김동선(한의학 박사) 원장은 “이석간은 당대의 명의로서 후세 한의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조선 사의(四醫) 중 한 명으로 사의경험방에 등장하는 대단한 의학자”라며 “특히 밥이나 죽을 이용한 식치방은 현대 식치의학에서도 응용되고 있어 대단한 의사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신성미(외식산업학 박사) 식치원장은 “이석간식치방은 맛은 물론 건강도 지킬 수 있는 훌륭한 가치를 지닌 기록물임이 자명하다”며 “영주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자재가 대부분이라 경북의 색채를 강하게 띤다. 또 조선 중후기 많은 생활 백과서나 민간 의서에 영향을 끼쳐 지역의 소중한 기록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기주 영주시노인회장은 “조선 최고 지방 의국인 제민루와 명의 이석간의 경험방 등을 하나로 묶어 세계유산 등재를 꿈꾸고 있다”며 “이를 위해 인천교대 김호 교수로부터 학술적 자문을 받는 한편 지역사회, 신성미 식치원장과 구 도서관 자리에 식치원 건립을 구상하고 있다. 또한 제민루와 식치원을 관광자원화해 영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제민루와 삼판서고택을 둘러보고, 식치원에서 식치 체험을 한 후 365시장으로 연결되는 관광코스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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