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간은 조선 사의(四醫) 중 한 명, 대단한 의학자였다

삼의경험방 (이석간, 채득기, 박렴)
삼의경험방 (이석간, 채득기, 박렴)

이석간은 조선 대표 명의 4인에 이름 올린 영주사람
이석간경험방은 임상 처방을 근거로 만든 의방서
석간의 아들, 임진 때 정견 원종공신·정헌 순국 충렬사 배향

이석간(李碩幹:1509∼1574)은 조선 성리학의 인간관(人間觀) 즉 마음의 수양(修養)을 강조하는 철학을 ‘몸’의 수련으로 확장해 적용한 명의(名醫)였다. 그는 조선 유교의 정치 이념과 도덕의 준수를 심신 수양의 기초로 삼은 유의(儒醫)이기도 했다.

유의는 의원이지만 유학(儒學)에 밝은 사람이며, 유학자이면서 의학(醫學)에 밝은 사람이다. 즉 성리학과 의학에 모두 해박한 지식을 골고루 갖춘 이를 말한다. 유의 이석간의 의학적 업적은 그의 각종 경험방으로 잘 나타나 있다. 그 경험방은 『이석간 경험방』, 『삼의경함방』, 『사의경험방』 등이 대표적이다.

의술을 가르치는 제민루 재현(2012년)
의술을 가르치는 제민루 재현(2012년)

조선의 사의(四醫) 이석간

영주 우리한의원 김동선(한의학 박사, 대구한의대·보건대·영남이공대 외래교수) 원장은 “이석간은 당대의 명의로서 관련된 전기가 충분히 전해지진 않지만 후세 한의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며 “조선 사의(四醫)의 한 명으로서 당시의 본초서, 동의보감, 동의문견방등 여러 서적을 인용하여 만든 사의경험방(四醫經驗方)에 등장하고 있는 대단한 의학자였다”고 했다.

또한 “특히 현대 한의학계에서도 인용될 만큼 유용한 이석간경험방(李碩幹經驗方)에서는 일반적인 경험 처방뿐 아니라 특이하게도 우리 선조들의 식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는 밥이나 죽을 이용한 식치방(食治方)을 이용한 치료 방법들을 제시함으로써 현대의 식치의학(食治醫學)이 이미 당시에도 응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대단한 의사였다”며 “당시 고가였을 것으로 사료되는 한약재 구입은 경제적으로 궁핍했을 일반 서민들은 힘들 것으로 여겨지는바, 이러한 식치를 통한 치료 방법의 제시는 가히 놀랄만한 성과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제민루, 가장 오래된 공립지방의원
제민루, 가장 오래된 공립지방의원

이석간경험방

『이석간경험방(李石澗經驗方)』은 석간이 저술한 경험의방서(經驗醫方書)이다. 서명에 보이는 ‘석간(石澗)’은 이석간(李碩幹)이 의업(醫業)을 위해 사용하던 이름으로 보고 있다. 그는 유학(儒學) 지식을 바탕으로 의학을 익힌 유의(儒醫)로서 퇴계 이황과 그의 문인들과 교류했으며 퇴계 선생 임종 시 곁에서 시료(施療)를 펼치기도 했다. 그와 관련된 의서로는 『이석간방(李碩幹方)』, 『삼의일험방(三意一驗方)』, 『사의경험방(四醫經驗方)』 등이 알려져 있어 질병 치료에 있어서 그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하였는지 가늠케 한다.

이 책은 구성이나 내용에 있어서 일반 경험방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치료 방법에 있어서는 특징적으로 식치방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밥이나 죽을 사용한 치료 방법은 우리 선조들의 식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밖에도 본서에서는 조선 초 식치 전문의방서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식료찬요(食療纂要)』에 수록된 처방과 유사하거나 같은 처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식치의학이 저자 이석간의 의학사상 가운데 한 축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의경험방 1면
사의경험방 1면

사의경험방(四醫經驗方)

조선의 명의 이석간(李碩幹)·채득기(蔡得己)·박렴(朴濂)·허임(許任) 등의 경험 처방을 한곳에 모아 병증별로 분류한 사의경험방(四醫經驗方)은 필사본 단책(單冊)으로 전반적 얼룩 외 내용은 온전하다. 크기는 16.5×25.8cm 이다.

사의경험방은 조선 인조 말에서 효종 때에 걸쳐 명의로 이름을 날린 이석간·채득기·박렴·허임 등이 남긴 임상에서의 경험 처방을 한곳에 모아 병증별로 분류해 편한 것으로 <본초서(本草書)>, <동의보감>, <문견방(聞見方)> 등의 서적을 인용해 편집했다. 책머리의 언해부(諺解付)에는 먼저 약물명을 14항목으로 나눠 300여 종류의 생약(生藥)을 나열했고, 그 아래에는 알기 쉽게 한글로 약명(藥名)을 부기했다.

조(條)에 해당하는 부분은 두부(頭部)·이부(耳部)·목부(目部)·비부(鼻部) 등의 각 부분을 실었고, 일상 경험의 모든 병에 대한 간단한 처방을 기재했다. 이 책은 《경험방》 《본초서》 등의 출전을 밝혀 내용을 충실히 하였고, 증목(症目)을 한글로 해석해 경험방의 고증과 그 지식의 대중화에 공헌했다. 또한 300여 종류의 생약은 그 당시의 약에 대한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사의경험방(四醫經驗方)은 조선 인조 22년(1644) 출간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가 평생 경험한 임상 처방을 근거로 만든 의방서(醫方書)이며, 일명 석방(石方) 또는 석간방(石幹方)이라고 한다.

사의경험방 표지
사의경험방 표지

사의경험방, 한글로 읽는다

경험 의학이란 한의사가 임상에서 경험을 통해 취득한 다양한 형태의 질병 치료 기술을 뜻하며, 한의학은 서양의학과는 달리 수천 년 동안 인체에 적용하면서 축적된 임상 기술을 바탕으로 인체를 치료하는 경험 의학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국역하여 펴낸 책 가운데 대표적인 책 『사의경험방』은 조선 인조 말에서 효종 때에 걸쳐 명의로 이름을 날린 이석간, 채득기, 박염, 허임 등 4명이 남긴 임상에서의 경험 처방을 한곳에 모아 병증별로 분류해 재편한 것이다. 사람에게 병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이를 극복하고 치료하려는 노력 또한 끊임없이 계속돼 왔는데 이 『사의경험방』은 민중들의 생활 속에서 이러한 노력이 어떠한 결실을 보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사의경험방』에 실려 있는 치료법들이 17세기 것들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경험이 생기고 검증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을 터이다. 또 여러 의가, 여러 서적의 경험들을 한데 모아놓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책의 치료법들은 조선의 경험 의학을 대변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목차를 갖추고 치료법 출처를 밝힌 점은 펴내는 과정에서 많은 노력이 기울여졌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대표적인 인물이 영주의 명의 ‘이석간’이라 하니 더욱 자랑스럽다.

영주의 의원들

영주는 역사적으로 안향, 정도전, 이황 등 당대 명가인 유학자들의 고향으로 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하였고, 천하명의로 이름을 날린 이석간의 학술을 비롯한 의료 활동 또한 활발했던 곳이다.

실제로 영주 서천 언덕에는 1433년(세종 15년)에 창건되어 의술을 베풀고 학문을 펼쳤던 ‘제민루(濟民樓)’가 남아있어 의료 업무를 담당하고 제민 사업을 펼쳐온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석간 이후 영주에는 명의들이 많이 배출돼 제민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으며, 석간의 후손 중에도 의료인들이 여럿 태어났고 또 태어날 준비(의대재학)를 하고 있다 한다.

또한 영주 인애가한방병원 김덕호(한의학박사) 원장은 이석간 관련 여러 편의 글이 남아있다. 그중 2015년 영주시가 주관한 스토리델링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 『유의 이석간』을 소개한다.

~전략~ 석간이 명나라 황태후 병을 치료하고 귀국하여 뒷새 집에 도착해보니 자신의 초가집은 간데없고 대궐 같은 아흔아홉칸 집이 있지 않은가? 놀란 그가 부인에게 “우리집도 아닌데 어찌 여기 있오”하자 “황제가 하사하신 집”이라고 했다. 훗날 이석간은 선비의 고장인 향리에 남아 선비정신을 몸소 실천하면서 평생 의원의 길을 갔다. 이석간 사후 20여 년 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서둘러 파병한 것도 당시 보은의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경상도 산중 고을 영천(옛 영주)에서 태어난 선비의원 이석간이 조선 의술 세계화를 위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의원의 사명을 다하면서도 당대 자신의 저술 업적을 사양한 것 또한 겸양의 선비정신이었다.

세월이 흘러 인조 22년(1644)에 가서야 후학들이 석간의 방을 수집하여 사의경험방으로 출간하였다. 이석간의 선비정신이 깃든 아름다운 삶의 현장이 바로 영주시 영주1동 두서길에 있는 아흔아홉칸 집이다.

이 집에서 자란 두 아들은 임진왜란 전장에서 정견(庭堅)은 기장현감(창의장)으로 원종이등공신, 정헌(庭憲)은 부산진을 사수하다 순국하여 부산 동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配享)되었다. 허준보다 30여 년 일찍 살다간 이석간의 영주집은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전의였던 귀운(龜雲) 서병효(徐丙孝)가 살던 집이기에 더욱 유서 깊다

명의 이석간(1509~1574)은 허준(1539~1615)보다 더 앞선 시기를 살다간 유의(儒醫)로서 평소 퇴계 이황 선생과 그의 문인들과도 교분이 두터웠고, 봉화 닭실마을의 충재(沖齋) 권벌(權橃) 선생의 생질(甥姪)이기도 하다. 소고 박승임· 백암 김륵·눌은 이광정·병산 김난상·송암 권호문 문집 등에 그의 활인 행적과 두 아들의 진충보국한 사실이 기술되어 있다.

이석간은 경험방에서 “오리는 성질이 따뜻하여 위를 튼튼하게 한다. 녹두죽은 오장을 조화롭게 하지만 성질이 차가우므로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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