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영화를 그리워하는 장터 사람들, 예술로 거리의 새 문화를 이끌어야
부석사와 소수서원, 소백산이 있는 우리 고장 영주는 도심에도 볼거리가 많다. 후생시장(일제시대 건물)과 중앙시장, 구성마을은 도시재생 사업이 이뤄졌고 그 주변은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역사거리로 지정됐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도시의 찐 매력에 서서히 빠져든다. 본지는 모두 알고는 있지만 무심코 지나치거나 무관심했던 원도심의 새로운 매력을 재조명한다. [편집자 주]
영주의 장터
영주원도심의 ‘장터 길’은 오래된 길이다. 중앙시장에서 골목시장, 선비골전통시장, 문화시장, 소백쇼핑몰, 대박시장을 지나 원당로에서 5일과 10일에 서는 오일장으로 연결된다. 원도심의 반이 장터이다.
여기에서 ‘골목시장’은 기독병원에서 ‘채소전’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선비골전통시장’은 옛 ‘채소전과 어물전’을, ‘문화시장’은 ‘문화의 거리’를 가리키는데, 이 세 시장을 하나로 묶어 ‘365시장’이라고 한다.
‘소백쇼핑몰’은 농협영주시지부 뒤에 있는 옛 ‘상가시장’을, ‘대박시장’은 옛 ‘신시장’이었던 ‘공설시장’을 지칭한다. 그리고 영주역 앞의 ‘신영주번개시장’과 원당로에 서는 오일장을 ‘번개시장’이라고 같이 부르고 있어서 헛갈리게 한다.
상설시장으로 자리 잡는 전통시장
현재 ‘선비골전통시장’은 6.25사변 이후에 생긴 것 같다. 1954년과 1963년 항공사진을 비교해 보면, 거리는 그대로인데 가게만 늘었다.
1955년 후생시장이 만들어질 즈음, 후생시장를 중심으로 역전통에 의류, 문방구 등 생필품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운송회사와 농업창고가 있던 주부슈퍼 부근에 어물전과 곡물가게가 형성되고, 철도 아래로 채소를 파는 난전(亂廛)이 들어섰다고 한다. 그리고 차츰 민가(民家)가 점방(店房)으로 바뀌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현재와 비교할 때 가장 큰 변화는 1973년 철도 이설과 1982년 원당천 수로 변경이다. 시장도 그 이후에 큰 변화를 맞이 한다. 역과 철둑을 들어내고 나니, 둑의 경사만큼 새로운 부지(敷地)가 만들어진다. 그 곳에 조성된 골목길에 생겨난 것이 ‘골목시장’과 ‘순대골목’이다. 두 골목이 일직선이 되지 않는 이유는 ‘골목시장’은 영주역과 대한통운 뒤편이었고, ‘순대골목’은 철도 뒤편이었기 때문이다. 두 시장은 영주 최고의 먹거리 장터이다.
그리고 채소전과 어물전은 도매시장으로 발전하면서 경북 북부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시켜 나간다. 이 무렵 영주의 대표적인 먹거리인 문어, 고등어, 소고기 전문점이 주부쇼핑 주변에 모이면서 이제는 친정 온 딸네들은 꼭 들리는 장소가 되었다.
명동거리와 문화의 거리
또 영주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은 것이 ‘명동거리’이다. 태극당에서 아디다스까지의 거리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의류 메이커들이 자리를 잡으며, 영주의 가장 번화한 거리를 만들어서 ‘명동거리’라 불렀다.
하지만 이 ‘명동거리’는 중앙고속도로를 개통하고 난 뒤부터 쇠락의 길을 걷는다. 그래서 이 길을 다시 살리려고, 거리 안에 실개천을 만들고, 멋진 소나무도 심고, 버스킹 공간도 만들면서 ‘문화의 거리’를 조성했지만 줄어드는 인구를 감당하기가 힘든 것 같다.
하지만 변화의 물꼬도 터 간다. 작년 이 거리에서 할로윈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했던 조국원(영주극단 대표)은 “코로나 시국에다가 짧은 기간에 준비를 해야 하는 부담도 있었지만, 선비의 고장에서 서양축제를 기획한다는 것이 더 큰 걱정이었다.
아무 탈 없이 마쳐서 다행이었다”고 한다. 또 “가족 단위로 참여하는 모습이 많았는데, 체험 리플렛을 받으려고 200m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며 “아이와 함께 갈 곳이 없다”는 한 어머니의 말씀에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혼수용품 특화시장, 소백쇼핑몰
농협시지부 뒤 상가시장은 1970년 준공되었다. 1층은 가게, 2층은 살림집인 주상복합의 형태였다. 큰 길가에는 양복점, 양장점, 약국이 들어섰는데, 안쪽으로는 한복집들이 자리를 잡았다. 1985년, 결혼식을 준비하며 한복을 맞추려 이 골목길에 와서 깜짝 놀랐다. 한복집도 화려하고 컸지만, 이 골목 전체가 한복집이었고, 이불 가게였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 같지가 않다. 결혼 혼수의 필수품이었던 한복과 이불이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한창 결혼을 했던 시기와 맞물려 그렇게 흥했던 것 같다. 그래도 아직은 많다. 한 집 건너 한 집이지만, 옛 자리를 지키며 장인으로서 전통을 고수한다.
그리고 이 시장이 시작되면서부터 입구에서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방가게는 명물이다. 이 가게에 들어서면 유행에 관계없이 진열된 가방은 종류별로 없는 게 없다.
공설시장
한성약국을 지나면 오르막이었다. 지금은 길이 되면서 평지가 되었지만, 예전엔 원당천 둑으로 오르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늘 복잡했다. 원당천 건너편으로 가는, 안동통로의 유일한 다리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르막길 오른편에 시장이 있었다. 신시장이다. 현재 ‘대박시장’이라 부르는 성누가병원 건너편에 있는 이 시장은 예전에 소전과 옹기전에 있던 곳이었다.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신시장’이라 불렀는데, 아마도 채소전과 어물전과 구별해서 그렇게 부른 것 같다.
이제 옹기전은 없어졌지만, 상가가 새로 지어지면서 그릇가게가 들어섰다. 한동안 영주공설시장이라 했지만 그 이전에 신시장이라고 불렀던것은 아마도 채소전 어물전이 있었던 시장과 차별하여 그렇게 부른 것 같다. 현재는 ‘대박시장’이라 이름을 지었다.
꿈을 염원하며 시작하는 365시장
365시장은 365일 문을 연다는 뜻도 있지만, 사람의 체온과 영주를 지나는 위도가 36.5°라는 의미도 있다. 365시장은 골목시장과 선비골전통시장 그리고 문화의 거리를 하나로 묶어 상승 효과를 노리고자 했는데, 따지고 보면 원래가 하나였다. 이제 여기서 새로운 시장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노소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이 여기에 다 모여 있어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11월의 마지막 날, 비가 내린다. 골목시장에서 ‘랜떡’을 지나 문화의 거리에 만든 실개천를 걷는다. 비가 내려도 상인들은 늘 자리를 지킨다.
“장사는 좀 됩니까?” “장사는요. 우리끼리 팔아주는 거 말고는 없니더”
문화의 거리 2-3층은 거의 비어있다고 한다. 거래가 없으니 가격도 없다. 세입자들의 입장에서는 몇 해째 비어 있는데 월세가 너무 비싸다고 하지만, 주인 입장에선 억울함이 왜 없을까? 모두가 변화를 갈망한다.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야 할까? 결국은 장사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닌 사람을 끌어 올 수 있는 그런 문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거리에서 소극장을 열고 싶어요.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도 꿈이지만, 이 거리를 살릴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해보고 싶어요” 조국원 대표의 이야기가 계속 머리에 남는다.
오공환 기자 / 김덕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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