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맛을 찾을 수 있는 곳
영주맛을 지켜가는 원도심 먹거리

 

①숯불구이거리 ②군청골목 ③나무전 ④역전 ⑤순대골목
①숯불구이거리 ②군청골목 ③나무전 ④역전 ⑤순대골목

부석사와 소수서원, 소백산이 있는 우리 고장 영주는 도심에도 볼거리가 많다. 후생시장(일제시대 건물)과 중앙시장, 구성마을은 도시재생 사업이 이뤄졌고 그 주변은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역사거리로 지정됐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도시의 찐 매력에 서서히 빠져든다. 본지는 모두 알고는 있지만 무심코 지나치거나 무관심했던 원도심의 새로운 매력을 재조명한다. [편집자 주]

2021년 군청골목(영주로 231번길)
2021년 군청골목(영주로 231번길)

어릴 적의 기억

엄마의 손맛은 늘 그립다. 된장찌개는 물론이고, 조물조물 묻혀서 내놓으시던 나물도 늘 그립다. 그중에 특별한 것은 고추장을 바른 돼지고기 주물럭이다. 그리고 닭을 잡을 때, 창자를 소금에 씻어 구워주시는 구이도 별미였다. 우리 집뿐일까? 집집마다 엄마의 손맛은 특별했을 것이다.

가끔 동네에서 잔치가 벌어지면 마을 사람들이 다 모였다. 그날은 외식하는 날이었다. 부침이나 잡채는 이때나 맛보는 특별식이었지만, 이날 최고의 이벤트는 돼지를 잡는 것이었다.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날 때쯤 어른들은 흉한 모습을 볼까, 아이들을 몰아내었지만 우리는 멀리서 그 모습을 거의 다 지켜봤다.

목에서 쏟아지는 피를 담는 모습과 창자를 푹푹 치대고는 그 피에 밥과 채소를 버무려 넣는 광경을 볼 때쯤이면 우리는 다시 모여들었다. 조금 뒤에 가마솥에서 나오는 순대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1970년대까지 우리는 거의 모든 먹거리는 집에서 마련했고, 특별한 경우에는 마을공동체에서 모두 해결하였다. 그때까지 식당이란 곳은 어른들이나 가는 술 파는 가게였다.

1960년대 군청골목
1960년대 군청골목

특별한 사람이나 가던 식당

1955년 영동선이 개통된 이후, 탄광들이 활기를 띠고, 탄광을 드나드는 외지 사람들이 영주를 거치면서 역전을 중심으로 식당, 술집, 다방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역전에는 기차를 타고 내리는 뜨내기손님들을 상대로 백반 정식을 파는 식당들이 주를 이루었고, 고추전(후생시장)이나 나무전(석류모텔 주변, 영주로247번길) 소전거리(우시장. 지금의 경북전문대학 부근)에서는 국수를 말아 내거나 국밥을 파는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무렵 가장 인기 있는 식당은 중국집이었다. 고추전 골목의 영성루를 필두로 동화장, 홍성루, 송죽루 등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집들도 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30원 하던 자장면은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에게까지 환상의 먹을 거리였다. 화교들은 중화요리 집과 함께 포목점과 지물포를 주로 운영하였는데, 1980년대 들어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대만과의 관계가 악화되며 하나, 둘 보따리를 싸버려 자취를 감추었다.

2021년 인생고깃길(번영로 173번길)
2021년 인생고깃길(번영로 173번길)

돈가스를 파는 경양식 집들은 8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60년대에 역전부근 송죽루 자리에 ‘중앙 그릴’이라는 최초의 경양식 집이 생겼다. 어쩌면 당시에 돈가스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패밀리 레스토랑이 대세이고 가족 외식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그 당시의 가족 내에서의 아이들의 존재감이란 그렇게 미미할 뿐이었다. 1980년대 영주의 경양식집은 영남예식장 옆의 에메랄드와 가톨릭병원 앞의 아테네였다. 아테네는 아직 영업하고 있는데, 그 골목 건너편에 새로 연 까르비소와 함께 성업 중이다.

그리고 영주에서만의 특별한 곳은 냉면집이었다. 십승지를 찾아 풍기에 온 이북사람들이 영주에 냉면집을 냈기 때문이었다. 옛 중앙통에 부영옥이란 냉면집(현 핸즈커피)이 있었다. 어릴 적 그 집에서 먹었던 냉면 맛 때문에, 아직도 달고 새콤한 요즘 냉면에 선뜻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는 최대봉(69세)은 그 집 한쪽에서 주인 영감님이 디딜방아로 직접 메밀을 반죽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한다.

그 후 등산용품 판매점인 네파 뒤편에 함흥냉면이 문을 열었고, 현재 그 자리는 함흥면옥으로 맥을 이어가고 있다. 옛 부영옥의 맛이 그리운 사람들은 풍기 서부냉면(풍기역 앞 골목)을 찾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냉면집도 2대째, 평양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인생고깃길
1970년대 인생고깃길

시대에 적응하는 숯불 거리

‘88올림픽’도 큰 역할을 하였겠지만, 1980년대에 중반을 넘어서면서 외식산업이 기지개를 켜면서 숯불구이 거리는 특화된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다. 영주초등학교에서 가톨릭병원에 이르면 오른쪽 골목으로 인생고깃길이라는 아치가 보이는데 이 길이 바로 숯불구이 거리이다.

이 거리에 들어서면 ‘SINCE 1967, 추억을 굽는 인생고깃길’이라는 세움 간판이 있다. 축산식육식당이다. 이 식당이 이곳에서 개업한 것은 아니었다. 번영로 건너편 ‘동궁’이란 한정식 자리에서 시작하였는데, 1967년이란 연도는 그 시기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1984년대에 이 식당이 여기에 이전을 하는데, 이 무렵 맞은편에도 ‘암소갈빗집’이 시작을 한다.

인생고깃길 입구(2021년)
인생고깃길 입구(2021년)

암소갈빗집은 ‘동남풍’으로 계속 이어가고 있고, 이 외에도 ‘동동숯불’ ‘마당숯불갈비’ ‘분수대숯불갈비’ ‘영주한우사랑’ ‘육림숯불촌’ ‘참나무생고기숯불구이’ 등 가게가 저마다의 솜씨를 자랑하며 손님을 맞이하면서 숯불구이 거리가 자리 잡게 된다. 이 거리의 장점은 사육, 도축, 가공, 판매의 고기 이력추적 시스템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 갈빗살을 주로 굽지만, 주문만 하면 부위별 맛을 다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소 한 마리’ ‘돼지 한 마리’를 먹었다는 말도 자주 듣게 된다.

그리고 후생시장을 지나 남서울예식장 쪽으로 이어져 있는 조그만 식당들이 있다. 예식장을 지나 작은 언덕을 오르면 또 몇 집…. 깨어져 금이 간 유리창을 얼기설기 한지로 붙여 놓은 데다가 붉은 페인트로 ‘왕대포’라고 써놓은 글씨가 있는 집, 그 출입문을 밀고 들어서면 일부러 우그러뜨린 양은 주전자 몇 개가 담배 연기로 그을린 벽에 걸려 있고, 그 옆에 ‘안주일절’이나 ‘외상사절’이란 큼지막한 글씨가 있던 선술집들이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질 무렵부터 그 집들은 붐비기 시작했다. 가끔은 젓가락 장단에 구성진 가락이 흘러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것도 옛이야기이다. 지금은 몇 집 겨우 명맥만 유지한다..

축산식당 이전개업(1984년)
축산식당 이전개업(1984년)

방위들은 응답하라! 순대골목

“7〜80년대 영주 방위들을 응답하라. 순대골목이 그대들을 부른다.”

작년이었던가? 순대골목에 이런 현수막이 결렸다.

순대골목 홍보 현수막
순대골목 홍보 현수막

예전 ‘이산대대’에 근무했던 방위들이 퇴근할 때, 이곳에서 배를 채우며, 저희끼리 군기를 잡았던 이야기는 아직 술자리에서 이야기가 되고 있기에 상인들이 꾀를 낸 것 같다. 이 현수막을 내걸며 상인들은 이곳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동판을 만들어서 골목길 바닥에 붙이기도 했다.

“순대 묵〜자. 영주순대골목 since 1971”이란 내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없다. 상인들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길을 새로 정비하면서 없앤 것 같다고 상인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잊어버린 순대골목 동판
잊어버린 순대골목 동판

2016년 이 골목에서 드라마를 촬영했었다. 최민수와 한은정, 김희정이 주연한 ‘영주‘라는 드라마였다.

경상북도 문화콘텐츠진흥원이 공모한 극 영화 시나리오 부분 대상작이었다.

̒영주̓라는 드라마가 ̒영주̓에서 촬영했는데, 극중 인물 ̒영주(김희정 분)̓가 등장했었다.

이 스틸사진이 이 드라마의 주 무대였던 ’동화식당‘에 가면 볼 수 있다.

1980년의 순대골목을 떠 올릴 때, 그 당시 30대나 40대는 이 길과 인접한 골목길을 생각한다. 바로 옆 골목 지하에 살롱이라 불리는 고급 술집도 많았지만, 악단의 연주는 물론 쇼까지 하는 대형 주점도 몇 군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술집엔 인근 안동, 예천, 봉화의 술꾼들이 택시를 타고 몰려왔었다.

순대골목(2020년)
순대골목(2020년)

옛 영화를 지켜가는 맛집들

순대골목에서 태극당 쪽으로 가다 보면 이 길이 ‘그렇게 흥청거렸던 곳일까?’ 하는 의문이 절로 든다. 자정이 넘도록 불을 밝히던 모습은 간데없다.

유흥업소는 사라졌지만, 3~40년 한 자리를 지키는 업소는 대단하다. 랜드로바 양화점 앞에 있는 ‘랜떡’, 네파 옆에서 현대증권 뒤로 자리를 옮겨 영업을 계속하는 ‘명동감자탕’은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으로 명성이 있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중앙로엔 오랜 세월 지키면서 지역 사람이 아끼고 찾는 맛집이 있다.

드라마 '영주' 촬영 장면
드라마 '영주' 촬영 장면
영주대홍수(1961호)
영주대홍수(1961호)

하망동우체국 뒤에 있는 영주시 향토음식점 1호점인 ‘풍기삼계탕’, 동산정형외과 앞에 있는 쫄면집 ‘중앙분식’, 서울치과 옆에서 세월의 향기를 느끼게 하는 ‘중앙식육식당’, 영남백화점 주차장 입구에서 30년을 지키고 있는 백년가게 ‘나드리’는 그 대표적인 곳이다.

타지 사람들을 손님맞이를 하며, 이 식당들을 들를 때마다 좋다는 말을 들을 때, 괜히 기분이 좋다. 그리고 이제 영주 음식점들의 맛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꿀릴 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모두옛날 어머니의 손맛을 맛볼 수 있는 집들이기 때문이다.

김덕우작가/오공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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