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천 물길을 돌리고 만든 원당로
번개처럼 섰다가 가는 영주 오일장

 

영주 오일장 장터-원당로(2021.11.10)
영주 오일장 장터-원당로(2021.11.10)

부석사와 소수서원, 소백산이 있는 우리고장 영주는 도심에도 볼거리가 많다. 후생시장(일제시대 건물)과 중앙시장, 구성마을은 도시재생 사업이 이뤄졌고 그 주변은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역사거리로 지정됐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도시의 찐 매력에 서서히 빠져든다. 본지는 모두 알고는 있지만 무심코 지나치거나 무관심했던 원도심의 새로운 매력을 재조명한다. [편집자 주]

 

중앙통 오일장(1950년대)
중앙통 오일장(1950년대)

원당로에 서는 영주오일장

11월 10일 영주장날 원당로를 걸어 본다. 8시 30분인데 장꾼들은 장사할 준비가 다 된 것 같다. 가지런히 쌓아놓은 배추더미가 김장철을 알게 해 준다.

광복로와 원당로가 만나는 삼거리에서 구 안동통로와 만나는 광시당 앞 사거리까지 원당로의 동편 길은 배추와 무로 가득하다. 사거리 건너편 광시당 앞에 마늘을 실은 트럭이 보인다. 아마도 늦어서 사거리 너머에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원당로 서편은 원래 오일장이 서던 자리이다. 여기엔 양념 장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고추, 마늘, 젓갈…, 영주축산농협에서 원마트까지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양념 장수 사이사이로 잡화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중앙통 오일장(1950년대)
중앙통 오일장(1950년대)
중앙통 오일장(1950년대)
중앙통 오일장(1950년대)

오일장에서 없어서는 섭섭한 것들이다. 칼이나 각종 공구를 파는 곳이다. 겨울이 왔다는 것을 알리듯 두툼한 옷과 덧버선을 진열해 놓은 곳도 있다. 발바리청과와 원마트 사잇길엔 고추장수들이 진을 치고 있다. 봄 한 철, 이곳은 묘목이나 각종 모종 장수들이 자리를 잡는 곳인데, 오늘은 고추가 주종이다.

영남빌라와 하나로축산 사잇길로 돌아 들어가 본다. 앞길에 비해 한적하다. 큰 길 가에 자리를 잡지 못한 젓갈 장사가 전을 펴고 있는 그 옆으로 빗자루 장사가 눈에 띈다. 직접 만든 것 같다. 뒷골목은 할머니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앞쪽이 장돌뱅이의 몫이라면, 뒷길은 집에서 가지고 나온 곡물을 파는 할머니들의 자리이다.

옷을 이불처럼 입고, 머리는 칭칭 두르고 있어 나이를 분간 할 수 없다. 평상시에도 이곳은 할머니들의 자리였다. 평상시에 이곳은 주차장이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도 대단하다. 5일마다 주차장을 비워주기 때문이다.

동산교회가 보이는 원당천(1981년)
동산교회가 보이는 원당천(1981년)

원당천 수로 변경

오일장, 영주사람들은 ‘번개시장’이라고도 부른다. 5일과 10일, 하루를 번개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장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이 선 것은 1982년 원당천 수로를 동쪽 산 너머로 돌리고, 길을 만들면서 부터이다. 길 이름이 원당로인 것은 이곳이 원당천이었기 때문이다. 새 길이 생기고 벌래고개 주변에 코오롱, 청구하이츠빌라, 화성라온빌, 세영첼시빌 등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원당로가 5일마다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시내가 길이 된 원당로(2021년)
시내가 길이 된 원당로(2021년)

원당천의 수로변경은 영주시의 최대 역사(役事)였다. 사단법인 영주문화연구회 “20세기 영주 10대 뉴스”로 원당천의 수로변경을 선정하기도 했다.

<1982. 원당천 수로 변경 / 지금의 원당로 자리는 예전엔 원당천이었다. 원당천은 시가지 복판을 관통하여 수해의 염려도 있었지만 도시를 두 동강이를 내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시 승격 후 첫 번째 대역사(大役事)를 실시하였다. 이산고개를 끊고 4.26㎞의 물길을 뚫어 원당천을 산 너머 외곽으로 돌렸다.

이로 인해 수해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렸을 뿐만 아니라 양분되었던 시가지의 연결, 남북을 가로지르는 큰 길(원당로)과 택지조성, 새로 낸 원당천 둑을 안동-봉화의 외곽도로로 만들어 교통 혼잡을 해소 하는 등 일석사조(一石四鳥)의 효과를 올렸다.>- 계간 영주문화, 22호(1999년 겨울호, 199년 12월 31일)

벌래고개에서 내려다 본 원당천과 원대이다리(1981년)
벌래고개에서 내려다 본 원당천과 원대이다리(1981년)

영주 오일장의 변천

영주의 오일장은 중앙시장과 후생시장 사이, 역전통로에 섰다고 한다. 1942년 영주역(현 중앙시장 자리)이 들어서면서, 중앙로로 옮기게 된다. 1940년에 만들어진 ‘영주읍개황도’에 중앙통(중앙로)이 다른 길에 비해 유난히 넓은 것은 난전(亂廛)을 할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1950년대 사진을 보면 굉장히 많은 인파를 볼 수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일장은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리였다. 제사에 쓸 제물도 사야겠지만, 자식이나 손주들에게 학용품 값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은 장날뿐이었다. 집에서 쌀이나 곡물을 가지고 나와 여기서 거래를 했다.

아파트촌이 된 벌래고개(2020년)
아파트촌이 된 벌래고개(2020년)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자리였다. 제물을 마련한다는 핑계로 장에 와서 오랜만에 이웃동네 친구와 만나 막걸리 한 잔 걸친 할아버지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했고, 나물 보따리를 시장 한 모퉁이에서 펼쳐놓고 풀어내는 것은 물건보따리보다 이야기보따리였다.

그래서 오일장은 중앙통으로는 부족했다. 시의회에서 태극당 사이의 골목길과 중앙약국과 돈돼지식당 사이의 영주로까지 장꾼들이 난전을 펼쳤다. 그리고 70년대가 되면서 이 오일장은 현 365시장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기시장은 거리마다 들어서는 가게가 늘어나면서 상설시장이 되었고, 면소재지마다 들어서는 농협마트나 골짜기마다 운행하는 장사 차량은 면소재지의 장날마저 없어지게 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원당로 번개시장이 오일장으로 발전했다.

오일장-김장 대목장
오일장-김장 대목장
오일장-튀밥장수
오일장-튀밥장수

추억의 원당천

원당천은 이제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아무게하고 원당천을 걸었다’며 자랑하던 중고생들의 연애 장소가 되었던 원당천, 원당천 주변에 살았던 최대봉은 마을 앞을 흐르던 원당천이 없었다면 내 어린 시절의 좋았던 기억의 팔 할은 원인무효가 될 것이라며 『계간 영주문화 56호』(2011년 여름호)에 이렇게 적었다.

<맑은 물이 흐르던 곳은 봄이면 무리지어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오르는 소사리떼들로 물살이 느려지기도 했고, 여름이면 서툰 우리의 반두질에도 붕어며 버들치, 꾸구리, 텅가리들이 묵직하게 건져 올려졌다.

밤 고기 잡는다고 솜뭉치에 불을 붙여 동네 형들을 따라 나서면 어두운 상류쪽에서 들리던 목물하는 여인네들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후덥지근한 밤공기를 불온하게 흔들어 놓곤 했었다.

꽤 넓은 모래밭은 우리들의 놀이터이기도 했지만 검투장으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해내었다. 같이 놀다가 수가 틀리는 일이 생긴다거나 다툼이 있을 때는 “천방에 갈래?”라는 말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곤 했었는데, 그 말은 요즘 아이들의 ‘맞장 뜰래?’라는 말과 같은 의미의 그 시절의 우리 식의 언어였다.>

오일장-겨울 준비
오일장-겨울 준비
오일장-골목길 할머니
오일장-골목길 할머니

새로운 활력을 찾아가는 원당로

삶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변화를 어떻게 자리매김하는 것은 그 변화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원당로에 찾아온 오일장은 이제 영주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몫이 되었다.

이곳에 처음 자리를 잡았던 시골 할멈들은 뒷골목으로 밀려나고, 큰길은 어느새 외지 상인들이 차지하는 장터가 되었지만 그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언젠가 외지 상인들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 물리적인 힘은 먹혀들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 먹거리도 다양하다. 하나로 축산 뒷골목에 있는 ‘종가콩나물국밥집’, 원마트에서 중앙초등학교 사이에 있는 ‘전통묵집’, 하망동성당 뒤편에 있는 선술집인 ‘끝순네’ 로얄맨션 뒷골목에 있는 회를 잘하는 ‘청상어’와 돼지갈비가 맛있는 ‘잔디밭숯불’ 그리고 영주축산농협 뒤편에 있는 꼬들살과 야채가 좋은 ̒K2주먹고기 ̓는 영주에서 아는 사람만이 일부러 찾아가는 곳이다.

밤이 되면 이 길은 불빛이 번뜩인다. 원당로와 영동선 철길 사이에 숲을 조성하고 ‘원당로 불빛거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일장-난로
오일장-난로
오일장-빵집
오일장-빵집

 

오공환 기자 / 김덕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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