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팔년도 좌절을 떨쳐낸 희망의 터, 미래 계획하는 청소년들의 놀이터

①후생주차장 ②근대역사체험관 ③고향사진관 ④후생예울마루 ⑤소백여관, 문화아지트 ⑥청주집 ⑦오백빵집 ⑧베트남국수 ⑨이가네숯불구이 ⑩갤러리 즈음 ⑪한채정 ⑫수닭갈비 ⑬옛날떡집
①후생주차장 ②근대역사체험관 ③고향사진관 ④후생예울마루 ⑤소백여관, 문화아지트 ⑥청주집 ⑦오백빵집 ⑧베트남국수 ⑨이가네숯불구이 ⑩갤러리 즈음 ⑪한채정 ⑫수닭갈비 ⑬옛날떡집

부석사와 소수서원, 소백산이 있는 우리고장 영주는 도심에도 볼거리가 많다. 후생시장(일제시대 건물)과 중앙시장, 구성마을은 도시재생 사업이 이뤄졌고 그 주변은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역사거리로 지정됐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도시의 찐 매력에 서서히 빠져든다. 본지는 모두 알고는 있지만 무심코 지나치거나 무관심했던 원도심의 새로운 매력을 재조명한다. [편집자 주]

후생시장 신축현장(1955년)
후생시장 신축현장(1955년)

후생시장과 역전통로

후생시장은 역전통로에 있었다. 1942년 개업한 영주역을 따라 만들어진 역전통에 근대화시장으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후생약국’이 있는 고추시장으로 생각을 했었다. 왜냐하면 역전통 큰길 가에 상가가 지어지면서, 후생시장 안쪽은 1960~70년대부터 고추전 골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1973년 영주역(현 중앙시장 자리)이 휴천동으로 이전 후, 역전통로가 구역통로로 바뀌면서 쇠락의 길을 걷다가, 2008년에는 고추전마저 옮기면서 그나마의 시장 기능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후생시장 권역의 점포들은 거의 80년 가까운 세월을 지탱해온 노후도가 심각한 건물들이었다. 또한 상가에서는 고용인이 없는 1인 운영 점포가 대부분이며 하루 방문객 수 또한 5명 미만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2014년 도시재생선도사업을 통해 노후한 후생시장 일대를 정비하면서 새롭게 태어났다.

삼각지(현 분수대)와 앞거리(1980년대 초)
삼각지(현 분수대)와 앞거리(1980년대 초)

이 한 장의 사진

20C 말, 영주시에서 ‘사진으로 보는 영주백년사’를 만들면서 귀한 사진을 실었다. “영주중앙시장 신축건설원일동 4288.7.12.”이란 사진이었다. 뼈대가 올라가는 상가 2층 문틀에 앉아서 포즈를 취하는 인부들의 사진이었다. 4288년은 서기로 1955년이지만, 흔히 말하는 쌍팔년, 바로 그해였다.

1988년이 지나면서 쌍팔년을 혼동해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구식’이라거나 ‘부정적’이라는 의미로 생각할 때, 한국전쟁 직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4288년을 이르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이 말은 군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제의 잔재로 남은 병영 내 폭력과 군수물자를 빼돌리기로 병사들이 전쟁터가 아닌 후방에서 굶어 죽기도 했던, 배고프고, 춥고, 고달프던, 그 시절의 군대를 푸념하면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후생시장(1980년대 초)
후생시장(1980년대 초)
후생시장(1980년대 초)
후생시장(1980년대 초)

쌍팔년 8월 8일은 한국증권거래소가 문을 연 날이기도 했는데, 더 주목을 받은 것은 민주당의 창당이었다.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집권당과 민주주의를 해보려는 야당 간의 투쟁의 역사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그 계기도 그 전해에 있었던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 때문이었다. 중임제(重任制)였던 기존의 법을 개헌하기 위해서는 투표 당시 203명의 의원 중에서 2/3 찬성인 135.333..명, 136명 이상이 나와야했다. 그런데 사사오입해서 135명으로 새 법을 통과시킨 것이었다.

나라는 더 혼란에 빠졌지만, 영주는 새나라 건설에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후생시장이 만들어지던 그해에 영암선(이후 영동선)을 개통한다. 정부 수립과정의 혼란한 상황과 6.25 등으로 착공과 중단이 반복되다가 1954년 10월이 되어서 겨우 공사가 다시 시작된다.

조흥은행이 보이는 영주로(1980년대 초)
조흥은행이 보이는 영주로(1980년대 초)

그리고 1955년 2월 1일, 영주에서 봉화군 봉성까지의 일부 구간을 개통한다. 당시 개통식에 교통부 차관과 유엔군 후방기지사령부 수송감, 국회의원 7명 등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것으로 보아 당시 이 철도가 가지는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해 말에 영주에서 철암까지 개통한다. 그래서 영암선이라 했다.

지금도 ‘승부역’에 가면 그때 세운 기념비가 있다. 한국전쟁 시기, 험난한 산악지형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우리 손으로 건설했다는 감격을 비문에 적고 있는데, ‘영암선개통기념’이란 글씨는 이승만대통령의 친필이다.

영암선의 개통은 당시 국가 발전에도 주요한 계기가 되었지만, 영주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 중심은 구역통로(현 영주로)였다. 탄광촌에 필요한 모든 물자도 영주에서 들어갔지만, 탄광으로 가는 사람들도 영주를 거쳤다.

또 영동선으로 들어오는 동해의 어물들은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했다. 영주문어, 영주간고등어는 그때 그렇게 만들어졌다. 후생시장에 가면 “황금시대 방송국”이 있는데, “황금이 굴러다니는 길”이란 이야기를 만들어낸 그 시절을 그리며 지은 이름이다.

삼각지(현 분수대)에서 본 역전통로(1966년)
삼각지(현 분수대)에서 본 역전통로(1966년)

도시재생과 후생시장

후생시장을 ‘생활문화 놀이터’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여럿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곳이 ‘황금시대방송국’, ‘영주근대역사체험관’, ‘빨간인형극장’, ‘게스트하우스 소백여관’이다.

‘황금시대방송국̓의 원래 이름은 ‘영주FM 방송국(89.1 MHz)’이다. 영주 시가지에서만 청취할 수 있는 저주파 방송이지만, 매일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운영한다. 편성 내용은 음악, 영주의 생생한 소식, 생활 지혜, 지역 예술 문화 등 영주사람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직접 제작하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쉬고 있지만, 청소년들의 일상, 후생시장 상인과의 대담 등 다양한 소재를 학생들의 목소리로 다루는 프로그램을 매주 토요일에 방송했었다.

‘근대역사체험관’은 지역의 역사와 마을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시청각 자료를 설비한 곳이다. 특히 옛날 교복을 입고, 옛 영주역 창틀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는 사진 찍기는 인기 체험 상품이다.

분수대에서 본 역전통로(1980년)
분수대에서 본 역전통로(1980년)
분수대에서 본 역전통로(2021년)
분수대에서 본 역전통로(2021년)

‘빨간인형극장’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연극을 전공한 배우들이 직접 창작한 인형극은 지역 학교에서도 돌아가며 예약을 할 정도였다. ‘소백여관’은 옛 여인숙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고 있다.

객실은 작지만, 옛날의 정감을 느낄 수 있어서 인터넷 예약을 하지 않으면 묵기 힘들 정도이다. 그리고 소백여관에 딸려 있는 이색문화공간이 있는데, 바로 ‘응답하라! 1955’라는 문화아지트이다. 연극을 하는 주인이 직접 모은 옛 물건들은 아직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깨끗하지만, 5〜60년을 바로 거슬러가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근대역사체험관
근대역사체험관
후생 예울마루
후생 예울마루

아직 그대로인 옛 풍경

1980년대 사진을 보며 깜짝 놀랐다. 40여 년의 세월이 멈춘 것 같다. 구(舊) 역전통로(영주로)는 딱 한 곳을 제외하고는 변한 게 없다. 변한 곳은 분수대가 된 삼각지 하나뿐이다. 이 삼각지에는 그 당시 영주 최고급품을 팔던 가게들이 있었다.

그리고 후생시장은 외부 공사를 해서 말끔해졌지만, 다른 곳은 상호만 바뀌었지 건물은 그대로이다. 후생약방, 실로암안경원, 양지양행, 나래의상실, 오복무선사, 희망다방, 모정다방, 취미양복점…. 이름만 보아도 정겹다. 아! 여왕의상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없어졌다. 거리를 지나가는 차들만 바뀌었지 건물은 그대로이다.

갤러리 즈음
갤러리 즈음
황금시대방송국 방송장면
황금시대방송국 방송장면

주변의 먹거리는 참 다양하다. 돼지숯불구이를 해주는 ‘청주집’은 터줏대감이다. 꼬들살이 기가 막힌 ‘이가네숯불구이’, 현지인이 직접하는 ‘베트남국수’, 아침마다 맛있는 냄새로 유혹하는 ‘오백빵집’, 오백빵집 길건너 편에 있는 ‘수닭갈비집’과 ‘옛날떡집’ 그리고 근대역사체험관 건너편에 있는 한정식을 하는 ‘한채정’과 해바라기 씨를 뿌려주는 ‘호떡집’…. 기호대로 선택만 하면 된다.

그리고 새로 생긴 이색공간이 있다. ‘갤러리 즈음’이다. 영주 중견화가가 직접 문을 연 이곳은 영주화단 미술가들의 초대전을 끊임없이 한다. 그리고 커피가 맛있는 ‘후생예울마루’는 영주여행자 센터를 겸한다. 이곳을 운영하는 쥔은 후생시장협동조합의 총무 일도 한다.

빨간 인형극장의 어린이 초청 인형극 시연
빨간 인형극장의 어린이 초청 인형극 시연
문화아지트 '응답하라! 1955'
문화아지트 '응답하라! 1955'

 

오공환 기자 / 김덕우 작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 기사는 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