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예술문화의 중심지 구학공원, 영주에서 정도전의 흔적 찾기

영주 서천 주변... 우로부터 구성산성, 구학공원, 구수산
영주 서천 주변... 우로부터 구성산성, 구학공원, 구수산

부석사와 수소서원, 소백산이 있는 우리고장 영주는 도심에도 볼거리가 많다. 후생시장(일제시대 건물)과 중앙시장, 구성마을은 도시재생 사업이 이뤄졌고 그 주변은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역사거리로 지정됐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도시의 찐 매력에 서서히 빠져든다. 본지는 모두 알고는 있지만 무심코 지나치거나 무관심했던 원도심의 새로운 매력을 재조명한다. [편집자 주]

서천 경관 폭포
서천 경관 폭포

정도전은 ‘영주사람’ … 삼판서고택 스토리
시민 많이 찾는 서천둔치길 접근성 좋아 ‘각광’

구학공원(龜鶴公園)은 구성공원과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영주의 명소로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구학공원 내에는 1500년 전 신라 소지왕(炤智王)이 날이군(옛 영주)에 순행했을 때 국색(國色) 벽화(碧花)를 만난 사건의 무대가 된 서구대(西龜臺)를 비롯하여, 삼봉 정도전의 생가인 삼판서고택이 자리 잡았고, 조선시대 의료기관인 제민루(濟民樓)가 우뚝 서 있는 등 전망 좋고 유서 깊은 곳이다.

‘구학공원’은 이 봉우리의 남동쪽, 현 대순진리회와 서구대 옆에 ‘구학정(龜鶴亭)’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이 구학정은 “구산(龜山)에서 학가산(鶴駕山)을 본다”라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구학정의 주인은 임진왜란 때, 경상도 의병을 진두지휘했던 경상안찰사(慶尙按察使) 백암(柏巖) 김륵(金玏)이다. 1990년에 구학정은 봉화통로 삽재 너머 ‘쇠자골’로 옮겨지고, 이제 구학봉의 주인은 삼판서고택(三判書古宅)과 제민루(濟民樓)가 됐다.

서천 공연
서천 공연

영주 문화의 중심지, 구학봉

구학봉(龜鶴峰)은 영주예술문화회관이 있는 구수산(龜首山)과 서천(西川)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구수산, 구학봉, 구성(龜城)은 원래 하나의 산줄기였다. 구학봉과 구성은 용(龍)이 잘라 동구대(東龜臺)와 서구대(西龜臺)가 물 건너에서 서로 마주 보게 만들었고, 구수산과 구학봉은 1961년 영주 수해 때, 산줄기를 폭파해 직강(直江)을 만들면서 동구대와 서구대 사이로 흐르던 물길을 이쪽으로 돌렸다.

그때 산줄기가 있던 자리가 폭포가 되었다. 현재 잠수교를 놓아 사람들이 편하게 건너다니고 있지만, 20세기만 하여도 거친 암반 사이로 물이 떨어져 사람들은 이곳을 폭포라고 불렀다. 현재 삼판서고택 아래 조성된 것은 인공 폭포이다.

구학봉에 오르면 삼판서고택과 함께 제민루(濟民褸)가 있다. 고택과 정자는 원래 구산성 남쪽에 있었지만 옮겨 지은 것이다. 1961년 ‘영주대홍수’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살았었지만, 수해로 집 전체가 물에 잠기어 명(命)을 다하였다고 한다.

현재 표시석(標示石) 만 남아있다. 그때도 제민루는 삼판서고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옛 물길 옆에 있었는데, 고택보다 먼저 이곳으로 옮겨지었다. 고택은 정도전의 생가이고, 정자는 고려말 영주군수를 하던 하륜(河崙)이 만든 것이라 한다.

서천폭포와 삼판서 고택
서천폭포와 삼판서 고택

그리고 폭포의 서쪽 구수산 아래에 ‘영주문화예술회관’이 있다. 이곳엔 공연장인 ‘까치홀’과 전시장인 ‘철쭉갤러리’ 그리고 ‘영주문화원’이 있다. 구학봉 동쪽에 있는 영주시민회관과 함께 연중 공연과 전시가 계속되는 영주 예술문화의 허브이다. 최근에 만들어진 ‘영주시립도서관 북카페’는 차를 한잔하면서 서천의 물길과 서천 경관폭포, 삼판서고택, 제민루를 함께 조망할 수 있어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삼판서 고택
삼판서 고택

삼판서고택은 정도전 생가

삼판서고택(三判書古宅)은 정도전의 생가이다. 이 고택은 세 분의 판서가 살았다고 하여 그렇게 불리어 온다. 그 세 분은 정운경, 황유정, 김담이다. 황유정은 정운경의 사위이고, 김담은 황유정의 외손자이다. 딸들이 집을 상속받았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딸에게 물려준 특별한 까닭이 있었을까? 정도전은 1342년 이 고택에서 정운경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1366년 부친상과 모친상을 연거푸 당한다. 영주 이산면 신암리에서 3년 동안 시묘(侍墓)살이를 한 후 재산을 분배하며, 모든 재산은 아우와 누이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늙은 하인만 데리고 삼각산(三角山)으로 갔다고 한다. 그때 이 집을 누이동생에게 준다. 이때부터 딸에게 계속 상속을 하게 된다.

몇 해 전만 해도 이 고택 아래에서 뮤지컬로 만든 ‘정도전’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수천 명이 관람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공연마저 없어져 안타까웠다. 그런데 오는 10월 22일(금)에 영주시민회관에서 「길을 묻는 그대에게」란 뮤지컬이 공연된다고 한다. 정도전 만의 연극은 아니지만, 그 속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혜   민 삼봉 선생님, 선생님은 이곳 영주에서 태어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왜 호가 도담 삼봉이 되셨습니까?

정도전 허허허허 내 호는 도담 삼봉과는 관계가 없다네. 내가 오랜 유랑 끝에 서울의 옛집 터에 움막을 짓고 살 때 ‘등삼봉억경도고구(登三峯憶京都故舊)’라는 시를 지은 적이 있지. 삼봉에 올라 경도의 옛 친구를 추억함이라는 뜻이지. 그걸 보고 벗인 이숭인이 삼봉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네. 북한산의 인수봉, 만경대, 백운대 세 봉우리를 이르는 말이지.

세간에 잘못 알려진 정도전의 호인 ‘삼봉’의 유래를 밝히는 장면이다. 이 사실은 이미 학계(學界)에서도 정설로 굳어진 것인데, 아직 일부 집단에서 개별적 이익을 위해 ‘도담 삼봉’으로 활용하는 이들이 있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도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1994년 서울을 조선의 도읍으로 정한지 600년이 되면서부터이다. 우리에게 가장 밝히고 싶었던 것은 ‘정도전은 영주사람이다.’라는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런데 단양에서는 도담 삼봉 앞에 ‘정도전상’ 까지 만들어 세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도전 생가가 영주에 있나요?”라고 한다. 답답할 노릇이다.

서천 벚꽃길
서천 벚꽃길

새로운 명소 ‘서천둔치길’

삼판서고택에서 서천을 따라 이어지는 ‘서천 둔치길’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이다. 영주시가지 어디에서든지 접근하기 쉬운 접근성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가장 안전한 산책길이기 때문이 아닐까? 크게 네 구간으로 특징 지울 수 있다.

‘서천교-영주교’ 구간은 소나무 숲이 좋고, ‘영주교-폭포’ 구간은 장미 터널과 야간 불빛이 아름답다. 그리고 ‘폭포-가흥교’ 구간은 황톳길이 만들어져 있고, 제2가흥교-한정교 구간은 한적한 강바람이 좋다. 또 100m마다 거리를 표시해 두고 있어 자신에게 적절한 거리를 선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동호인들끼리 건강달리기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해마다 서천에서는 축제도 열리고, 크고 작은 공연도 있어서 영주사람들의 최고 쉼터이다. 그리고 또 다른 매력은 ‘버스킹’이다. 삼판서고택 아래에 무대가 있지만, 음악동호인들은 서천 둔치길 곳곳에서 연주를 한다.

그리고 삼판서고택 앞, 전 도립도서관 자리에는 송상도책비와 영주동석조여래입상, 오층석탑이 있다. 송상도책비는 특별하다. 일제에 항거한 지사 233분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송상도 지사가 직접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은 이 기록은 국가보훈처의 최고 자료라고 하니 더 대단하다.

서천 자전거 행렬
서천 자전거 행렬

주변의 먹거리

이 주변의 먹거리는 구학봉과 구성 사이에 있는 ‘선비로’와 서천 둑 아래의 ‘원당로 1번길’에 있다.

선비로에는 영주시민회관과 영주경찰서 서부지구대 주변에 있는데, 대표적인 곳은 보쌈과 스모노(돼지고기 초무침)을 즐길 수 있는 ‘이리오너라’, 감자탕 전문 업소인 ‘토속촌’, 한정식을 주로 하는 ‘소산돌솥’이 있다.

그리고 원당로 1번길에는 영주시탁구전용구장 앞에서부터 ‘뚝방손칼국수’, ‘큰손한식’, ‘돼지식육식당’이 있는데, 모두 하나의 음식으로 전문화된 가게들이다.

오공환 기자 / 김덕우 작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서천 둑방길
서천 둑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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